컨텐츠 바로가기

11.14 (목)

윤 대통령은 눈치를 안 보나 못 보나 [권태호 칼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윤석열 대통령이) 눈치 좀 봤으면 좋겠다.”(김용태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자, 15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직후인 지난 9일,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한 특검을 거부하면서 “검찰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잘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민정수석 부활이 사정기관 장악용 아니냐’는 의문엔 “민심을 잘 듣기 위해서”라며 부인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4일 뒤인 13일, 김건희 여사 사건 수사지휘부를 전원 교체하는 검사장급 인사가 실시됐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자회견 때 윤 대통령이 말한 ‘공정하고 엄정하게 잘할’ 검찰은 13일 이전 검찰인가, 13일 이후 검찰인가.



국민의힘 이상민 의원은 15일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지금 김 여사 사건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하느니 안 하느니, 이목이 집중되는 초미의 상황에서 왜 검사장 (인사를) 해서 오히려 논란을 더 증폭시키는 일을 했을까”라고 말했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도 ‘김 여사 수사 지휘라인 전격 교체, 꼭 지금 했어야 했나’였다.



내용은 다르지만, 총선 직전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을 때와 복사판이다. 그때도 보수층과 국민의힘 내부에서 ‘총선 앞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의혹 살 일을 왜 사서 하느냐’는 안타까운 지적이 많았다. 왜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토한 것을 다시 먹을까?



한겨레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월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호주로 출국하고 있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윤 대통령은 왜 눈치를 안 볼까? 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교수 아들에, 공부 잘하고, 덩치도 크니 구김살 없는 유년을 보냈을 것이다. 커서는 비록 9수의 아픔을 겪긴 했으나, 서울 법대 졸업한 검사로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정치 입문 1년이 안 돼 대통령이 됐다. 우리 역사에 이런 인물은 없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당 당대표 이준석을 몰아내고, 전당대회 방식을 ‘당심 100%’로 바꿔 원하는 사람을 당대표에 앉혔다. 그리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선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을 직전에 사면해 후보로 내보냈고, 엑스포 유치에 올인하며 되는 줄로 착각했다. 모두 상궤를 벗어나는 판단이고, 눈치 없는 행동들이다. 그런데 당내에선 통하는데, 당을 벗어나니 큰 낭패로 되돌아온다.



한겨레

김건희 여사 사건 수사지휘부가 전원교체되는 검찰 간부 인사 다음날인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검찰 로고가 붙어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눈치도 경험해야 늘고, 훈련해야 쌓인다. 평생 눈치 봐 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공감 능력이 커져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눈치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식적으로 예측하지 않더라도, 반사적으로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대개 소신 없는 비겁한 태도의 동의어로 쓰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배려와 공감은 ‘눈치’가 첫걸음이다. 강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에선 지도자에게 종종 ‘뚝심’이란 말을 긍정적으로 붙여 쓴다. 그러나 뚝심이란 ‘누가 뭐라 하든 말든 하고 싶은 대로’라는 말과 동의어가 될 때가 많다. 더는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 눈치의 다음 단계가 자기 객관화다. 자기 객관화와 수치심은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다. 눈치 없는 사람은 자기 객관화 능력도 떨어진다. 그 결과 ‘남의 말을 못 받아들이고’, ‘내로남불’로 흐르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눈치가 없었다. 역시 눈치 볼 일 없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눈치가 없으면, 남들이 다 ‘위기’라 하는데도 혼자 ‘위기’인 줄 모른다. 2016년 4월 총선 참패 이후에도 아무런 국정기조 변화가 없었다. 하던 대로 계속했다. 5월27일 ‘상시 청문회법’이라 불렸던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8월에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직권남용, 탈세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러자 감찰 내용 유출 의혹을 이유로 오히려 특별감찰관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결국 8월29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미르재단 기부금 종용 혐의 등을 내사한 게 사직에 이른 원인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려졌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했는데, 그때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이었다. 지난 4월 총선에선 비례정당을 포함해 국민의힘 108석, 민주당 175석이다.



일반 회사에서도 상사가 눈치가 없으면 처음엔 어렵게 ‘말’하지만,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포기’한다. 더 이상 기대를 않는 것이다. 지난 기자회견을 앞두고 많은 국민이 “별반 기대가 없다.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들의 관계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눈치 보는 사람은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 이후론 부인이라 말한다. 보통 남편들도 다 부인 눈치를 본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 눈치를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한겨레 서포터즈 벗 3주년 굿즈이벤트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