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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배신 당한 네이버]④ 틱톡은 美 정부에 소송… 네이버는 日 정부에 대응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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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기업 최초의 글로벌 성공 사례 ‘라인’을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라인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10년 넘게 공들인 글로벌 메신저로 일본 내 이용자 수가 9600만명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몽니를 부리면서 네이버는 라인을 일본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라인야후 사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의 계략과 한국 정부와 네이버의 대응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

“미국 의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 플랫폼을 영구적이고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미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합니다.”(2024년 5월 7일,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가 미 워싱턴DC 법원에 제출한 소장)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는 이례적입니다. (행정지도를) 따를지 말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분 매각은) 회사의 중장기 사업 전략에 기반해 검토할 문제입니다.”(2024년 5월 3일, 최수연 네이버 사장)

미국 정부·의회가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퇴출을 추진하자, 바이트댄스는 지난 7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서명한 ‘틱톡 금지법’이 헌법에 반한다”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한국 네이버가 갖고 있는 라인야후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매각하라고 압박 중이다.

두 사례는 얼핏보면 해외 플랫폼 옥죄기로 유사해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달리 미국과 중국의 사이는 ‘적성국(직접 교전하진 않지만 적으로 여기는 나라)’이라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한다. 일본 정부의 네이버에 대한 압박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보완책 요구를 넘어선 지나친 개입이라는 이야기다.

조선비즈

일러스트=챗GPT 달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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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정부·의회, 틱톡 미국 사업 매각만 요구… 日 정부는 노골적 ‘기업 빼앗기’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상대국 기업에 대해 동일한 무역과 투자 조건을 보장하는 ‘상호주의’로 대했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경우 틱톡처럼 알고리즘 조작이 가능한 서비스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회가 틱톡에 ‘미국 사업’ 매각을 요구하는 반면, 일본 정부는 네이버에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통째로 넘기라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넘길 경우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라인야후가 지분 100%를 보유한 Z인터미디어트(옛 라인코퍼레이션)는 한국법인 라인플러스를 완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라인플러스는 미국, 태국, 중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 사업체를 두고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라인플러스는 네이버의 또 다른 사업 부문인 스노우와 연결되며, Z인터미디어트는 라인게임즈, 네이버제트, IPX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라인야후가 일본 정부 주도 하에 네이버에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틱톡에 미국 사업 매각을 요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 차원의 ‘기업 빼앗기’”라며 “네이버가 개별 기업으로 목소리를 내도 좋지만, 한국 정부와 힘을 합쳐 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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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테라스기오이타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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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야후 사태 예견 못했다면 네이버 실책… 해외사업에서 위기 관리 필수”

네이버가 해외 기업과의 합작사 설립·운영에 대해 좀 더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접근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라인야후 사태는 글로벌 합작사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최수연 사장을 포함한 네이버 경영진이 이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부실 경영이자 큰 실책”이라며 “해외사업을 하면서 위기 관리를 전혀 안한 모습”이라고 했다.

특히 라인이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로 자리를 잡은 후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았지만 정작 라인야후 이사회에 한국인은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 1명뿐이었다. 합작사의 사명이 ‘야후라인’이 아닌 ‘라인야후’인 점만 봐도 합작사에서 라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할 정도로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는 “합작사를 설립할 때는 지분율에 따라 사내이사 수를 맞추고 회사 경영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1주의 주식이라도 더 가져가려는 게 통상의 관행”이라며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라인야후에 한국인 이사가 1명뿐이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지분율이 대등하지만, 소프트뱅크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별도의 합의사항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했다.

박 교수는 “네이버가 업력 부족 탓인지 일본에서 사업 확장을 원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네이버가 양보를 많이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도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라인야후의 지주사인 A홀딩스 지분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대5인데 이사 구성 등을 볼 때 라인야후의 경영권은 이미 2019년부터 사실상 소프트뱅크 컨트롤 하에 있었다”고 했다.

◇ 라인야후·소프트뱅크가 지분 매각 협상 알리자 네이버도 입장 발표

최수연 네이버 사장은 이달 3일 올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라인야후 사태에 대해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 지분 매각과 관련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했고,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CEO도 지난 9일 “네이버와 A홀딩스 지분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의 불합리한 조치와 합작 파트너인 소프트뱅크의 태도에 대해 네이버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의견도 나온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네이버가 해외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아무런 안전장치를 해놓지 않았던 것인가” “최수연 사장은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고 국내 유명 로펌 변호사 출신인데 일본 정부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한 것인가”와 같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0일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소프트뱅크와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라인야후의 한국법인 라인플러스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 직원 대상 설명회를 오는 14일 개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네이버가 한동안 일본에서 압박이 크겠지만, A홀딩스 지분을 무기로 버티면서 소프트뱅크를 설득하거나 한국 정부를 활용해 기업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안상희 기자(hu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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