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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외국 대리인 법안’이 뭐길래… 조지아, ‘러시아 반대’ 시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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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5만 명 항의 집회… “소련으로 회귀 안 돼”
친러 정부, 입법 재시도→“시민사회 통제” 반발
“EU 가입 열망하는 조지아의 민주주의 시험대”
한국일보

흑해 동부 국가인 조지아 시민들이 11일 수도 트빌리시에서 조지아 국기(흰색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깃발)와 유럽연합 깃발(파란색 배경에 노란색 별들이 새겨진 기)을 들고 '외국 대리인 법안'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트빌리시=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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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법, 러시아식 독재에 반대한다.”

11일(현지 시간) 흑해 동부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중심부의 유럽광장.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곳에 모인 시민 5만 명은 조지아 국기, 유럽연합(EU) 깃발을 흔들며 이같이 외쳤다. 친(親)러시아 성향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른바 ‘외국 대리인 법안’에 대한 항의 집회였다.

예산 20% 해외서 지원받으면 '외국의 대리인'?


AFP통신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구소련 시절 ‘그루지야 공화국’이었던 조지아에서 외국 대리인 법안 반대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식 권위주의의 산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교사 렐라 치클라우리(38)는 “우리는 소련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안리 파피제(21)도 “러시아 제국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의 법안은 언론·시민단체가 전체 예산의 20% 이상을 해외에서 지원받으면 ‘외국 이익 추구 기관’으로 등록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집권당인 조지아드림당은 “해외 자금 조달의 투명성 증진이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언론·시민단체 통제를 노린 것”이라며 맞서 왔다.

지난해 3월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입법이 철회됐으나, 올해 초 정부·여당의 법안 재발의와 함께 논란이 다시 점화했다. 그럼에도 최근 의회의 2차 심의(독회)를 통과했고, 이달 중순쯤 최종 확정 여부를 좌우할 3차 심의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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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11일 수도 트빌리시에서 정부의 '외국 대리인 법안' 입법 시도를 비판하며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트빌리시=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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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총선 앞두고 '러시아식 법' 도입 저의는?


시민사회의 반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2012년 러시아가 ‘반정부 세력 입막음’을 위해 제정한 법률과 너무 흡사하다는 비판이 많다. 또 오는 10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정부 의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탈(脫)러시아’와 ‘EU 합류’를 기원하는 조지아 국민들의 기류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실제 조지아는 지난해 12월 EU 가입 후보국 지위도 부여받았다. 대학생 아누키(22)는 “유럽의 일부가 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서방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북유럽 국가 외무장관들은 최근 조지아 정부에 ‘재고’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지난주 “조지아는 교차로에 있다. 유럽으로 향하는 길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엑스(X)에 적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해당 법안을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민주적 가치에 반하는 크렘린(러시아 정부) 스타일”이라고 규정하며 우려를 표했다.

이번 사태는 조지아의 EU 가입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AFP는 “EU 합류를 열망하는 구소련 공화국의 민주주의가 결정적 시험대에 올랐다”고 짚었다. 미국 CNN방송은 “조지아의 정치적 위기가 촉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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