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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숙성 삼겹살에 4종 나물 지글지글…“다른 삼겹살 못 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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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전 서구 탄방동의 실내포차 ‘알딸딸’의 시그니처 메뉴인 삼겹살. 고기와 각종 나물을 함께 구워 먹어야 한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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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예린아, 엄마 지금 대전 간다.”



따사로운 봄볕에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던 4월 어느 오후, 기사를 마감하다 들려온 ‘친정엄마 강림’ 소식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찾아온 ‘엄마 찬스’이던가. 급하게 그녀에게 카톡을 날렸다.



“언니, 저녁 번개 콜?”



“그려. 콜!”



“워디 갈까?”



“간만에 알딸딸?”



“좋쥬ㅋㅋ”



7살 어린이를 외할머니에게 내팽개쳐(?) 놓고 달려간 동네포차엔 그녀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귀남. 현 갈마2동행정복지센터 행정팀장이자 전 대전 서구청 언론홍보팀장이다. 그녀는 내가 아이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순댓국’을 사 들고 면회를 왔는데, 그 뒤 인연이 쌓여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됐다. 송일한 서구청 언론홍보팀장도 귀남 언니 옆에서 “기자님, 오랜만!” 하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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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딸딸에서 1인분에 1만3천원인 삼겹살을 주문하면 나오는 기본 상차림.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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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일단 삼겹살 4인분이요!”



언니는 “알딸딸 삼겹살은 진리”라며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알딸딸은 대전 서구 탄방동 산호아파트 상가에 있는 실내포차다. 김치찌개, 계란말이, 어묵탕 같은 기본 안주에 홍어회·꼬막·오징어숙회·돼지머리고기, 민물새우탕·두부두루치기까지 여러 음식을 팔지만,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삼겹살이다. 몇해 전까진 시청·서구청 공무원들 사이 숨은 맛집 정도였는데,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예약이 필수인 집이 됐다. 이제는 40∼50대뿐 아니라 20∼30대 단골도 늘었다.



“구청 홍보팀에서 일할 때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 우리는 안주를 거의 못 먹고 술을 마셨어. 만찬이 끝나고 허기지고 쓰린 배를 달래려 2차나 3차로 알딸딸에 오면 다른 기관이나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도 비슷한 이유로 와 있었더라고. 그럼 거기서 다시 홍보 담당자끼리 술판을 시작하며 대동단결하곤 했지.”



‘소맥’을 제조하며 전임 홍보팀장이 후임 홍보팀장에게 ‘라떼 시절’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놨다. 소맥을 두 잔쯤 들이켰을 때 사장님이 주방에 서서 하얀 플라스틱 접시에 무심하게 담아낸 고기 더미를 툭 건넸다. 1인분에 1만3천원. 알딸딸이 처음인 송 팀장이 “고물가 시대 보기 드문 착한 가격”이라며 달아오른 철판 위에 삼겹살을 얹었다. 예쁜 선홍빛에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삼겹살들이 ‘지글지글’ 소리 내며 익어갔다. “이 집 삼겹살 한번 맛보면 다른 삼겹살은 못 묵지~.” 귀남 언니가 으스대며 고기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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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딸딸 김성순 사장이 매일 만드는 나물과 파절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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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알딸딸 자리는 ‘정육점’이었다. 알딸딸을 운영하는 김성순(65)·한상하(66)씨 부부가 1985년부터 22년 동안 정육점을 했다. 2007년 업종을 바꿔 같은 자리에 실내포차를 차렸다. 김씨가 직원 없이 식당 주방을 도맡았고, 한씨는 개인택시를 모는 틈틈이 식당 일을 도왔다. 김성순씨가 삼겹살 맛의 비결을 귀띔했다. “20년 넘게 정육점을 했으니 고기 보는 눈이 있지. 옛날부터 거래하는 데가 있는데 우리 고기는 따로 빼놔. 나는 고기 상태 안 좋으면 아예 안 가져오거든.” 알딸딸 삼겹살의 특징인 살과 비계의 적절한 비율도 오랜 정육 ‘짬바’에서 나온 노하우다.



고기 맛도 맛이지만, 알딸딸 삼겹살을 더 빛내는 건 각종 나물 반찬이다. 둥근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 고사리·시래기·콩나물·김치 4종 반찬을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데, 돼지기름을 머금고 적당히 구워진 나물은 삼겹살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삼겹살에 나물을 같이 구워 곁들이는 건 부부가 집에서 어린 자녀들을 해서 먹이던 방식이란다. 산처럼 쌓여 나오는 파절임도 이 집 삼겹살 맛의 ‘킥’이다. 부추를 섞어 고춧가루, 식초, 간장을 넣고 막 짠 들기름을 듬뿍 둘러 무친 파절임은 돼지고기의 기름진 뒷맛을 상큼하게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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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딸딸 김성순 사장이 영업 전 고사리 나물을 지지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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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조금 남겨놓은 고기와 나물·파절임·들기름·쌈장 등을 모조리 들이붓고 가위로 잘게 자른 뒤 김가루를 듬뿍 뿌려 볶아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곁들어지는 시골식 된장찌개는 투박하지만 담백한 맛으로 먹는 이의 옛 추억을 소환하는데, 이 된장찌개를 먹기 위해 알딸딸에 온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위장에 남은 공간이 있다면 라면으로 입가심해도 좋다. 이 라면에 해장술을 먹겠다며 밤 10시가 넘어 참새방앗간처럼 알딸딸을 찾아오는 이도 적지 않다.



작은 동네식당이지만, 음식과 손님에 대한 김성순씨의 애정은 특별하다. 삼겹살은 미리 부탁해 숙성해둔 것을 이틀마다 사오고, 된장과 고추장, 간장은 사장 부부가 시골 지인에게 부탁해 만들어 쓴다. 참기름·들기름은 방앗간에서 직접 짜 와 쓰고, 배추김치는 매년 가을에 400포기 이상 담가 시골집에 묻어두었다가 가져오는데 점점 손님이 늘어나 봄이면 김치가 동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여름부턴 산 김치를 낸다. ‘워낙 손이 커서 남는 게 별로 없을 것 같다’고 하니, 김성순씨는 담담하게 “우리 가게라 집세 부담 없이 장사하니 괜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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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남 갈마2동행정복지센터 행정팀장(왼쪽·전 대전 서구청 홍보팀장)이 삼겹살을 구운 철판에 볶음밥을 만들고 있다. 김귀남 팀장의 후임인 송일한 서구청 홍보팀장이 옆에서 “잘 좀 볶으라”고 잔소리 중이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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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마밥 먹고 싶을 때 알딸딸에 오지.”



상추쌈을 입에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귀남 언니에게 내가 말했다. 알딸딸 삼겹살을 먹으며 어릴 때 엄마가 구워주던 그 맛을 떠올린 이가 나뿐일까? 삼겹살에 앞서 내어오는 계란부침도 정겨움을 배가한다.



계란부침부터 먹고 시작하는 건 알딸딸의 ‘국룰(국민룰)’인데, 굳이 왜 계란부침을 주는 걸까 늘 궁금했다. 김성순씨는 “우리 애들이 20대일 때 술 마시고 들어오면 위장 상하지 말라고 늘 계란을 부쳐주곤 했다. 젊은 손님들을 보면 우리 아들·딸 생각이 나 빈속에 술 마시지 말고 계란부침부터 먹으라며 내주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당연히 주는 게 되어버렸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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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딸딸을 운영하는 김성순(왼쪽)·한상하씨 부부.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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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라면 국물에 남은 술을 동내고 있을 즈음 김성순씨가 말했다.



“40년 가까이 고기 썰고, 음식 만들다 보니 이제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아파. 수술한 무릎도 늘 말썽이라 아침마다 1시간 동안 목욕탕 물속에서 걷지 않으면 밤까지 서서 장사를 할 수 없거든. 음식 만들어 손님들 먹이는 게 행복해서 계속하고 싶은데, 몸이 얼마나 버텨줄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하는 동안은 인심 잃지 않게 좋은 마음으로 할 거야.”



알딸딸 오른 취기에 ‘엄마 삼겹살’로 채운 배를 두드리고 나오는데, 김성순 사장의 굵은 손마디가 눈에 밟혔다. 앗, 집에 울 엄마 와 계시지. 얼른 가서 손마디 주물러드리며 어릴 때처럼 어리광이라도 부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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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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