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가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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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구 건물 옥상에서 20대 남성이 전 연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잇따른 교제살인·폭력 소식에 여성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공포감을 호소하면서 이번 사건이 ‘의대생 살인’으로만 이름 붙여져 확산하는 것을 우려했다.
10일 경향신문이 만난 여성들은 나흘 전 ‘강남 교제살인 사건’ 보도를 보며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2년 전 교제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A씨(26)는 “(사건을 접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며 “요즘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런 뉴스가 나오는데 늘 남 일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를 겪은 이후 지금까지도 병원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송모씨(25)도 “최근 (교제살인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고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성 연인을 만날 때 폭력 성향이 있는 사람인지 미리 알기 어려우니 여성이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며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집단 대부분이 ‘남초’인데 주변에 이 사건을 얘기하면 나만큼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불안은 막연한 공포심이 아니다. 경찰청의 ‘주요 젠더폭력범죄 현황’을 보면 2022년 교제폭력 경찰 신고가 7만790건이 기록됐다. 국가 차원에서 교제폭력에 따른 사망자를 집계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피해자 규모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인이나 배우자 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311명이었다. 언론 보도를 집계한 통계다. 보도된 사례만 봐도 최소 사흘에 한 명 이상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되고 있는 셈이다.
여성들은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피의자 신상이 화제되는 점을 두고서도 “교제살인 사건이라는 본질이 가려졌다”고 지적했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B씨는 “가해자가 의대생이든 의사이든 무슨 상관이냐”며 “(가해자가) 잘 배운 엘리트든 아니든, 여성들은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C씨도 “‘의대생 살인’이라는 점이 주목받지 않았으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다른 교제폭력 사건처럼 묻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며 “가해자가 모범생으로 살면서 느꼈을 부담감이나 통제·강박 등을 분석하는 기사들을 보며 피로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연이어 발생하는 교제살인·폭력 사건에 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봤다. A씨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교제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며 “형량이라도 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C씨는 “처벌을 넘어 시민들 전체가 ‘관계 맺기’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다”며 “다만 여성 폭력 대책 관련해서 빈약한 상상력을 보여준 정부가 이런 교육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교제폭력 관련 법안들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돼 있으나 통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가정폭력방지법의 대상을 교제폭력 피해자까지 확대하는 ‘가정폭력방지법 일부 개정안’과 교제폭력을 별도의 영역으로 두고 처벌하는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다. 모두 상임위원회 심사 문턱도 넘지 못해 이번 국회 회기가 끝나면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 친밀한 사이·익숙한 공간, 되풀이되는 ‘교제폭력의 공식’ 반복…대응책 없나?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509163601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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