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살인범 평소 생활까지 알아야돼?”… 과도한 신상털기, 피해자까지 마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강남 살인 사건에 피의자·피해자 모두 신상 유출

과도한 신상 유포…자제 필요

서울 강남역 인근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보도되자 피의자인 20대 남성에 대한 신상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해당 남성에 대한 구체적인 과거 행적이 유포되는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신상까지 유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살인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도망할 염려’를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최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쯤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옥상에서 남성이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최씨를 끌어냈는데, 이후 약이 든 가방 등을 두고 왔다는 그의 말에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진 피해자를 발견하고 최씨를 긴급체포했다.

세계일보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20대 의대생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피의자 사생활·가족사까지 유포…2차 피해까지

최씨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서울 명문대 의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는 그에 대한 신상정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비롯해 과거 활동 인터뷰 등이 퍼지고 있다. 최씨의 범행 사실이 보도되자 그가 과거 진행한 인터뷰를 근거로 얼굴, 출신 지역, 학교, 가족사 등이 온라인에 유포되고 있다. 최씨가 다니는 대학의 커뮤니티에는 최씨의 평소 행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심지어 피해 여성의 신상까지 함께 퍼지며 2차 피해도 발생했다. 최씨의 SNS 계정을 통해 피해 여성의 계정도 특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피해자의 언니라고 밝힌 B씨가 “제 동생이 억울하게 최씨에게 살해당했다. 어느 날 동생이 최씨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는데 갑자기 죽고 싶다고 하면서 옥상에 여러 차례 뛰어내리려 했다”며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 계정을 삭제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오류가 걸려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부디 동생에 관한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는 댓글을 달았다.

무분별한 신상털기가 지속될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1년 서울의 한 의대 재학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에서는 사건 당사자가 아닌 의대생의 신상이 온라인에 퍼졌다. 피의자로 오인돼 신상털기 피해를 당한 학생은 신상을 유포한 누리꾼들을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적제재, 명예훼손 가능성도 있지만…사법체계 붕괴 위험도

법조계에 따르면 살인 사건 피의자 신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명예훼손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글이 작성된 경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명예훼손은 문구 하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한다”며 “사건 당사자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실 적시 명예훼손 자체는 처벌이 굉장히 약하고 형사 사건 피의자의 경우 당사자가 고소할 여력이 현실적으로 없어서 실제 누리꾼이 처벌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신상 유포로 인한 법적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이러한 ‘사적 제재’의 위험성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죄를 지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는 “국가가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처벌을 가해자에게 내리지 않아 온 결과”라며 “사적 형벌이 횡행하면 사회와 사법체계가 무너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