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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신도시 이모저모

“이미 빚더미, 더 버티라니” 기약 없는 3기 신도시 시흥·광명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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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택지구 지정 뒤 재산권 행사 제한
보상계획마저 1년 이상 늦어지며 피해 커져
LH "보상 앞당기려 최선… 규모 커 어려움 많아"
한국일보

3기 신도시로 개발될 경기 광명시 학온동과 시흥시 과림동 일대. 보상 일정이 늦어지면서 언제 착공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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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시 가학동에서 전기차부품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최모(60)씨는 요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2021년 2월 공장 터가 3기 신도시 광명·시흥 공공주택지구에 포함되면서 숙원이던 공장 증축계획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비좁은 1층 공장을 3층으로 증축하려 건축설계까지 맡겼는데, 3기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건축행위는 물론 토지거래까지 막혔다”며 “이후 빈 공장을 얻어 쓰면서 연간 2,000만~3,000만 원의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고, 안정적 제품 생산 기반마저 잃어 사업을 중단해야 할 정도”라고 탄식했다. 최씨는 “보상만 기다리며 3년을 버텼는데, 1~2년 더 늦어진다고 하니 요즘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2월 3기 신도시 공공주택지구로 발표한 광명·시흥 공공주택지구(1,271만㎡·7만 가구 입주)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신도시 지정 이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된 데다 최근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당초 2024년 말보다 늦은 2026년에야 보상에 나설 것이란 계획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LH의 재정건전성 악화 등으로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광명시 학온동, 시흥시 과림동 일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최대 규모의 3기 신도시', '서남부권 거점 도시'라는 개발 기대감은 온데간데없고, 곳곳에 '주민 다 죽는다', '헐값 보상 반대' 같은 격앙된 구호가 적힌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한국일보

3기 신도시로 개발될 경기 광명시 학온동 내 한 제조공장(원 안). 2021년 공공택지지구로 지정된 뒤 공장 증축이 안 돼 사업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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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지금도 빚에 허덕이는데, 2년 가까이 더 기다리다간 거리로 나앉게 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징후들도 보였다. 시흥시 과림동에서 의류수출업을 하는 최모(50)씨는 3년 전 사업상 어려움으로 팔려던 공장과 토지가 3기 신도시로 지정돼 처분이 어렵게 되자 연간 3억 원이 넘는 대출 이자를 갚느라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그는 “30억 원대 부채가 지금은 45억 원으로 늘었다”며 “보상이 더 늦어지면 사업을 접을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창고, 사무실 등을 임대하는 임대생활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축사와 주택을 임대해온 신모(80)씨는 “임차인들이 언제 쫓겨날지 몰라 임차를 꺼리면서 2년 넘게 수입이 끊겼다”며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일대 창고, 상가, 사무실 공실률은 30~40%에 달한다.

김세정(67) 시흥·광명 신도시대책위원장은 “토지 등을 가진 주민 5,800여 명이 부동산을 팔지도, 사지도 못하는 상황이 3년 넘게 이어지면서 높아진 대출 이자를 내며, 부동산 공실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보상마저 늦어진다면 주민들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승원 광명시장과 임병택 시흥시장도 지구지정(2019년 10월) 뒤 2년 내 보상이 개시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등 다른 선행 3기 신도시와의 형평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신도시와 달리 광명·시흥의 경우 보상 지연으로, 지구지정부터 보상까지 5년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며 “원주민의 재산상 손실과 정신적 피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LH는 지장물 조사 인력을 늘리는 등 조속한 사업추진을 위해 힘을 쏟고는 있으나, 보상 지연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LH는 본보에 입장문을 통해 "조속한 보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보상전담조직을 강화하는 등 노력 중이지만 3기 신도시 중 면적이 가장 넓어 조사 기간이 길고 재정 투입 규모도 커 어려움이 많다”며 “현재 지장물 기본 조사 중으로, 내년 6월까지는 완료해 보상계획 공고를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장물 평가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보상은 2026년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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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로 개발될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지장물 조사 거부', '지구지정 철회' 등의 구호가 적힌 주민대책위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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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광명·시흥 공공주택지구 주요 추진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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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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