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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시진핑 이어 리창·왕이… ‘美 포위망 뚫기’ 中 고위층 총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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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프랑스 방문 마치고 세르비아로

15일엔 새로 취임 푸틴도 中서 만나

조선일보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영접 나온 알렉산다르 부치치(오른쪽) 세르비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의 세르비아 방문은 8년 만이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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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오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유럽 3국 순방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 친중(親中) 국가인 세르비아를 방문하며 현지 일간지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폭격 사건 당시 유고슬라비아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는 현재 세르비아의 수도다. 8일 나토 전투기 폭격을 받았던 중국 대사관 옛 터에 세워진 중국문화원 건물에는 ‘대만은 중국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건물 앞 추모비 비문에는 “세르비아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 지지와 우정을 보여준 중국에 감사하고, 희생한 열사를 추모한다”고 적혀 있다. 1999년 5월 7일 미군이 이끄는 나토 공군의 스텔스기는 유고슬라비아 전역을 폭격하는 과정에서 중국 대사관을 오폭(誤爆)해 그곳에 있던 신화통신, 광명일보 등 소속 중국 기자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코노미스트는 6일 “세르비아의 인구는 베이징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시진핑에게는 유럽에서 보기 드문 친한 친구”라며 “시진핑이 중국 대사관 폭격 날짜에 맞춰 방문한 것은 ‘서방이 이끄는 세계 질서가 나쁘고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중국 압박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진핑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운신 폭을 넓히기 위해 ‘5월 정상 외교’에 전념하고 있다. 중국의 일인자 시진핑은 미·중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추인 유럽을 챙기고, 이인자인 리창 국무원 총리는 아시아에서 미국과 급격히 가까워지는 한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맡은 모양새다. 오는 20일 대만의 독립 성향 라이칭더의 총통 취임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중이 충돌을 피하는 ‘고상한 경쟁(high-minded contest)’을 펼치는 상황에서 중국이 최고위급 외교를 통한 공세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해외 방문을 극도로 꺼렸던 시진핑은 지난 5일부터 코로나 이후 첫 유럽 순방에 나섰다. ‘유럽 자율성’을 주장하며 중국에 우호적인 프랑스를 시작으로 동유럽의 세르비아를 거쳐 헝가리에서 마무리되는 일정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7일 시진핑 부부를 외할머니가 살던 산골 마을로 초대하는 등 일정 내내 극진히 대접했다. 이날 밤에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부부가 시진핑을 수도 공항에서 직접 맞이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8일 부치치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에 베오그라드 대통령궁에서 시진핑과 함께 서서 수천 명의 군중을 향해 “우리는 오늘 역사를 쓰고 있다”며 “중국, 중국”을 외쳤다. 중국은 프랑스의 최대 교역국이고, 세르비아와 헝가리에 대한 중국의 투자 규모는 각각 200억달러(약 27조원)에 달한다. 시진핑은 오는 15~16일에는 지난 7일 취임식을 갖고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중국에서 만나 회담을 갖는다.

시진핑의 유럽 순방 목표는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의구심을 가진 국가들을 포섭해 서방의 대오를 흐트러뜨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통해 안보·무역 영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권의 압박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동유럽의 권위주의 정상들이 중국에 안식처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이인자 리창은 최근 미국과 가까워진 아시아 주요국 챙기기에 나섰다. 서울에서 이달 26~27일 개최를 조율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중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다. 3국 정상회의는 2019년 12월 이후 약 4년 반 만에 열리는 것이다. 한·미·일 밀착을 경계하는 중국이 미국과 아시아 우방들의 대중국 억제 움직임에 어깃장을 놓기 위해 ‘한·중·일’ 구도를 이용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이번 회의에서 3국이 탈북자 송환, 북핵 등 민감 이슈에서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렵겠지만, 3국 정상 교류가 재개됐다는 점 자체가 의미 있다”면서 “중국이 한·일과의 관계를 적극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번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 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조선일보

리창 총리, 왕이 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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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정상회의에 앞서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오는 13일 전후 방중하는 조태열 외교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한·중 외교장관의 대면 소통은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 이후 처음이다. 7일 중국 해방일보 산하 ‘상관’은 “중·일·한 최고위급 회담은 세 나라 협력이 올바른 궤도로 돌아오는 초석”이라고 했고, 중국 선전 기반 매체 즈신원은 “중·일·한의 협력은 안보 이견 때문에 중단될 것이 아니라, 경제에서 전략 영역으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 집중 공략을 끝내고 미국과 본격적으로 우방 구애 경쟁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오그라드 中 대사관 오폭 사건

1999년 5월 7일 미국이 이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공군 스텔스기가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을 폭격해 중국 기자 3명이 숨진 사건. 코소보 전쟁에 참전한 나토가 유고슬라비아 전역을 폭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은 오폭이라며 사과했지만 중국은 “의도적 공격”이라며 반발했다. 현재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 공화국의 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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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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