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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제주대도 증원안 부결...교육부 “신입생 모집 정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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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월 15일 오후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앞에서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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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제주대 등 국립대가 잇따라 ‘의대 증원’에 필요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반기를 들며 의정(醫政)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법원이 의대 정원의 적절성을 따져보겠다고 나선 데다 정부의 ‘회의록’을 놓고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그간 정부 정책을 따랐던 국립대까지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가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8일 오후 브리핑을 열고 부산대가 전날 의대 증원 학칙 개정안을 부결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고등교육법상 각 대학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사항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부산대는 전날 총장·교수들이 참석한 교무회의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확정하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최종 부결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장문을 내고 “대학이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전 국가 공동체 주체들이 만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선행해야 한다”며 수개월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 상황을 질타했다. 대학들의 의대 정원은 정부가 정하지만, 정해진 의대 정원은 대학별 학칙에 담아야 한다.

부산대가 예상 밖 ‘반기’를 들자 교육부도 강수로 맞섰다. 부산대가 학칙 개정을 하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마저 따르지 않으면 학생 모집 정지 등 조치를 한다는 계획이다. 2025학년도 부산대 입학 정원의 얼마간을 아예 모집하지 못 하도록 하는 행정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산대는 이날 “학칙 개정안을 교무회의에 재심의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수들이 반대해 한번 부결된 만큼 교무회의가 다시 열려도 학칙이 통과될지 미지수다.

부산대서 시작된 학칙 부결은 다른 대학까지 퍼져 나가는 상황이다. 현재 의대 정원이 늘어난 전국 32대학 중 20곳이 아직 의대 증원을 담은 학칙을 못 만들었다. 특히 증원 규모가 커 구성원 반발이 거센 국립대 9곳 중 전남대를 제외한 8곳에서 학칙 개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8일 제주대의 교수 평의회 심의에서도 의대 증원 학칙 개정안이 부결됐다. 제주대 역시 학칙 개정안 재심의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강원대는 애초 이날 대학평의원회에서 학칙 개정안을 최종 심의해 확정할 예정이었는데, 아예 일정을 미뤘다. 강원대 관계자는 “부산대, 제주대가 부결 났는데, 강원대까지 부결 나면 논란이 커질 것 같아서 의대 증원 안건은 심의를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직 학칙 의결이 안 된 다른 국립대 총장은 “우리 대학도 심의 기구에서 학칙 개정안이 의결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학칙 개정은 대학마다 다르지만 보통 교무회의, 교수평의회 등 심의 기구를 거쳐 총장이 최종 결정한다. 회의 기구에서 학칙 개정안을 부결해도 총장이 밀어붙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부도 “학칙 개정 최종 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대학 총장”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같이 첨예한 사안을 총장 혼자 밀어붙이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학칙 개정 절차가 진행 중인 한 대학 교무처장은 “지금까지 학칙 개정 관련 교수회 심의 결과를 총장이 뒤집은 사례가 없었다”며 “결정권자가 총장인 것은 맞지만 구성원들이 투표해서 결정한 사안에 반한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달 중순쯤으로 예정된 법원의 ‘의대 증원’ 집행 정지 판단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계 갈등은 더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의료계가 각 대학 학칙 개정을 지연·부결하는 방식으로 ‘여론전’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 정지를 인용하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사실상 백지화되고, 반대로 법원이 이를 기각해 각 대학이 2025학년도 대입 계획을 발표하게 되면 의대 정원은 이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부산 의대 교수협의회가 정부의 일방적, 강압적 정책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각 대학 구성원을 설득해 학칙 개정안이 부결됐다”며 “교육부는 강압적 행정 처분을 즉시 멈추라”고 했다.

이날 교육부는 브리핑에서 며칠째 논란이 된 ‘의대 정원 배정 심사위원회’(배정심) 회의록 존재 유무, 법원 제출 여부도 뒤늦게 밝혔다. 교육부는 “배정심은 법정 기구가 아니라서 공공기록물법에서 규정하는 형식의 회의록은 작성하지 않았다”며 “다만 회의 주요 내용을 적은 ‘결과물’은 존재한다. 이를 토대로 법원에 각 대학에 의대 증원분을 배분한 근거를 소상히 설명하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 이틀간 “배정심 회의 요약본은 있다”고 했다가 “회의록 존재 유무, 법원 제출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꾸며 혼란을 키웠다. 이에 의사 단체가 “회의록 미작성은 직무 유기”라며 교육부 장·차관을 고발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자 이날 재차 입장을 밝힌 것이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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