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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외국 면허 의사'도 진료 허용…"후진국 의사 수입" 의료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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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보건의료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에 올랐을 경우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이달 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해외 의대 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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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대책으로 외국 의사 면허자도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의료계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8일 “외국 의료인의 국내 의료행위 승인을 확대할 수 있도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4월 19일 보고해 논의했고,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런 개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보건의료 재난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 부족으로 인한 의료공백 대응을 위해”라며 “외국 의료인 면허를 가진 자가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이날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심각’ 단계의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의 의료인 면허를 가진 사람도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외국과의 교육 또는 기술협력에 따른 교환교수의 업무 ▶교육연구사업을 위한 업무 ▶국제의료봉사단의 의료봉사 업무에 한해서 승인하고 있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은 여기에 한가지 항목을 추가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8조2항에 따라 ‘심각’ 단계의 위기경보가 발령됐을 때도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는 20일까지 의견을 받고 법제처 심사 등을 거친 뒤 이르면 이달 말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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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에 이르렀을 경우 외국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도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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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앞서 지난 2월 19일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하자, 2월 23일부로 위기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심각’으로 조정했다. 보건의료 재난 위기경보는 상황의 심각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으로 높아진다.

정부는 심각 단계를 유지하며, 공중보건의사(공보의)·군의관을 필요한 병원에 파견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고, 공백을 메우던 의대 교수들도 소진을 호소하며 사직·휴진 움직임을 보이자 외국 의사 면허자까지 동원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는 “대체수단 마련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나가고 있다”라며 “의료전달체계 개선, 보상체계 강화 등과 함께 우선적인 제도 보완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외국 의사 면허자는 수련병원 등 대형병원의 필수과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에 대해 한시적으로 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것으로 이들에게 우리나라 의사 면허를 부여하는 절차와는 관련이 없다. 해외 의대를 졸업하고 현지 의사 면허를 취득한 자가 한국 의사 면허를 취득하려면 복지부가 인정하는 외국 의대를 졸업하고, 국내 의사 예비시험과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확한 규모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진료보조(PA) 간호사나 공보의·군의관처럼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많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그래도 이전부터 국내에서 수련받길 희망하는 외국 인력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료현장 업무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일손을 덜어주길 희망하는 인력이 소수라도 있다면, 걸림돌을 해소해주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 “후진국서 의사 수입하나”, 정부 “질 보장할 것”



의료계는 의료 공백을 메울 대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의사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외국 의사들은 자국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텐데, 한국에 올 리가 없다” “자국 의료를 별 검증 없이 외국 의사에게 맡긴다는 게 말이 되나” 등의 반응이 나왔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통화에서 “정부가 파견해주고 있는 공보의·군의관도 의료사고 발생 위험 등을 고려해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맡기지 못하는 상황인데,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가 얼마나 도움될지 모르겠다”며 “숙련된 해외 의사들은 한국에 올 이유가 없고, 그렇지 않은 외국 의사라면 환자들도 진료받기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전세기는 어디다가 두고 후진국 의사 수입해오나요?”라고 반응했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이 의료공백으로 의사가 한명도 남지 않으면 “전세기를 내서라도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말한 것을 꼬집으며 정부 대책을 비판한 것이다.

복지부는 이런 우려와 관련, “외국 의사의 경우에도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적절한 진료역량을 갖춘 경우에 승인할 계획”이라며 “제한된 기간 내 정해진 의료기관(수련병원 등)에서, 국내 전문의의 지도 아래 사전 승인받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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