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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80억원대 전세사기’ 사촌형제 실형…대구서는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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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보증금 81억원을 가로챈 사촌형제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구에서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뒤 세상을 떠난 8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세계일보

숨진 한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추모행진 때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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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8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중개보조원 김모(33)씨에게 징역 5년을, 김씨의 사촌동생 이모(27)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들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중개보조원 장모(41)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와 이씨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강서구와 양천구 빌라를 사들인 뒤 세입자 32명으로부터 81억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자기자본 없이 실제 매매가보다 많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빌라 32채를 사들인 뒤 차액을 챙겼다. 김씨는 범행 대상 빌라와 임차인을 물색하고 이씨는 매수인과 임대인으로서 명의를 제공하기로 역할을 나눴다. 공범인 장씨는 사촌형제에게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가르친 뒤 함께 약 9개월간 23채의 빌라를 집중 매수해 범죄수익을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김씨, 이씨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액은 총 81억원이고 장씨의 경우 55억여원”이라며 “임대차보증금이 재산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었던 피해자들은 이를 돌려받지 못해 주거 안정을 위협받고 큰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와 이씨는 범행 초기에 임대차 목적물을 여러 채 사고 추후 파산신청까지 계획하는 등 다분히 고의적으로 범행했다”며 “피해자 일부는 보증보험에 가입돼 피해 금액을 대위 변제받았지만, 이는 피해가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전가됐을 뿐 회복됐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여전히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대구에서 한 30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그가 적은 유서에는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억울하고 비참합니다’, ‘힘없으면 죽어 나가야만 하나요?’, ‘저도 잘 살고 싶었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세사기로 세상을 등진 8번째 피해자다.

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피해자의 죽음을 “잘못된 제도와 전세사기를 방치하는 국가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렀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이 피해자가 거주한 대구 남구 대명동 한 다가구 주택에서는 입주한 13가구가 13억원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를 호소 중이다. 이들은 주택 여러 채를 소유한 건물주가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단체 관계자들은 “고인은 현행 (전세사기) 특별법의 사각지대인 다가구주택 후순위 임차인인 데다 소액임차인에도 해당하지 않아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을 수 없었다”며 “피해자는 보증금 8400만원을 단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주택 많은 피해자들이 다가구 후순위거나 허위로 작성된 선순위 보증금 확인서를 받은 상태라고 이들 단체는 주장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본회의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심의할 수 있게 됐는데 단체들은 이미 희생자가 다수 나온 상황에서 너무 늦은 조치라고 했다. 이들은 “고인이 생을 마감한 다음 날 너무나도 늦게,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부의의 건이 통과됐다”며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과 대책 마련에 정부와 여야가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 부위원장)는 “현재 제도라면 누구도 전세사기를 피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내년 5월까지 3만5000여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는데, 이렇게 대규모로 발생하는 전세사기가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과도한 전세대출, 보증을 제공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 피해를 키운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왜 보증금을 못받은 임차인이 임차권 등기와 소송에 매달리고, 경매를 거쳐 주택을 취득하고 다시 매각하는 수년의 과정에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법률용어를 외워야 하느냐”며 “정부가 보증금 채권을 매입해주고 피해자 대신 이 지긋지긋한 절차를 대신하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충분히 지원하는데, 정의롭고 형평성 있게 지원하는데 왜 사람이 계속 죽느냐”며 “전세사기 피해자 중 피해가 극심한 후순위 피해자들, 특히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아 무일푼으로 쫓겨날 위기에 있는 피해자들, 다가구주택 후순위 피해자와 신탁사기 피해자에게 특별한 정부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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