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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사설] 여덟번째 전세사기 피해자 비보, 정부·국회는 듣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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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전국의 다가구 주택을 중심으로 전세사기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지난해 2월 이후 8번째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A씨(38)가 지난 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7일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을지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고인은 대구 대명동의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고인은 남편과 어린 아들 등 세 식구가 살던 집의 전세보증금 8400만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후순위에 소액 임차인도 아니어서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5월 우선매수권 부여, 경·공매 유예, 금융·법률 지원 등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고인 같은 처지의 피해자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참사에 비견된다. 수사기관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정도로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고, 피해 규모도 엄청나다. 주택·금융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정부의 감독 부실 책임도 크다. 직업 윤리를 팽개치고 사기꾼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을 방치했고,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 여부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전세대출 관리에 소홀했고,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하는데도 사전에 경종을 울리지 못했다. 그 결과 서울·인천·부산·대구 등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전 재산을 날리고, 심지어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선 구제 후 회수’ 방침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 같은 정부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게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반대다. 사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피해를 정부가 구제해준 전례가 없고,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인 피해자들에게 주거 복지와 재기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 21대 국회에 당부한다. 부디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삶의 희망과 출구를 열어주기 바란다.

경향신문

인천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피해자의 1주기를 앞두고 지난 2월 2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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