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물 돌렸지만 내용은 몰랐다"는 모순
'5·18은 DJ 세력·북한이 주도한 내란' 제목에 "용기 있다"
무한정 아닌 표현의 자유...'가짜뉴스' 유포 책임 져야
지난 3일 JTBC 보도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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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나를 계속 이렇게 공격하는 게 과한 거지..."
지난 3일 오후, 인천경찰청에 나온 허식 전 인천시의회 의장은 당당했습니다. '5·18 특별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러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지난 1월, '5·18은 김대중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이란 제목의 인쇄물을 시의원들에게 돌렸습니다. 이후 논란이 됐지만, 사과는 한 적이 없습니다.
“신문사가 썼지 내가 썼느냐”고 되묻기도 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같은 내용의 글을 단톡방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확신'이 있었던 거로 보입니다. 결국 인천시의회 의장직에서 탄핵됐고 오월 단체에 고발 당했습니다.
"뭘 잘못했느냐"는 허 의장 주장, 지금부터 따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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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물은 돌렸지만 내용은 몰랐다”...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
━경찰서 앞에서 만난 허 의장, 취재진에게 "인쇄물 내용은 모른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지난 1월, 논란이 처음 일었을 때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당시 "지역 업무만 하고 5·18은 안 한다"며 "전혀 개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쇄물은 돌렸지만 내용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지난 1월 허식 전 의장은 취재진과 만나 "5·18은 안하고 지역 업무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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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런 입장, 왔다 갔다 합니다.
내용은 모른다면서 같은 내용을 단톡방에 공유합니다. 비판이 쏟아지자 “표현의 자유”라고 반박합니다. 이정도로 '표현'하려면 '내용'쯤은 알고 있다고 보는 게 정상 아닐까. 당시 시의회 다른 동료 의원은 “확신이 있는 거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조사 하루 전, 취재진과 통화에선 전혀 다른 말도 합니다. "타이틀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용감하게 쓰네. '어유 이런 도 있네'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내용은 안 봤다면서 제목엔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겁니다. 허 전 의장, 과연 내용을 아는 걸까요. 모르는 걸까요.
허 의장 말을 그대로 믿어 보겠습니다. 내용을 한 자 한 자 살피지 않았고, 정확하게는 몰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강한 인상 받았다는 제목, 다시 한번 떠올려보겠습니다.
'518은 김대중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
이 한 줄 '제목' 안에 주요 내용이 다 담겨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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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모르는 인쇄물 굳이 왜 주변에 돌렸을까
━허식 전 의장이 인천시의회에 돌린 5·18 폄훼 인쇄물. '5·18은 DJ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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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참 용감하게 썼다'는 이 인쇄물, 왜 주변에 나눠줬을까요. 내용은 모르고 용기를 나눠주려고 한 걸까요.
허 전 의장, "의원들이 요청했기 때문에 돌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 2일 식사 자리에서 허 전 의장이 인쇄물 는 걸 본 의원들이 '나도 달라'고 했단 겁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시의원 말은 좀 달랐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시의원은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허 전 의장이 먼저 '자기가 구독하는 신문인데 이런 기사가 있다'며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요청을 하지 않은 다수 시의원에게도 인쇄물을 돌렸다는 겁니다. “이런 걸 왜 배포하느냐”고 항의하는 의원들도 다수였습니다.
허 전 의장 주장을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내용을 모르는 인쇄물을 읽고 있었다 (2)내용은 모르지만 제목이 인상 깊었다 (3)동료 의원들이 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4)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돌렸다
알 듯 말 듯 한 이 주장. 허 전 의장은 “날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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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특별법이 '허위사실 공표' 금지한 이유는
━허식 전 인천시의장을 수사 중인 인천경찰청 〈사진=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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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률가들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마냥 억울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표현의 자유는 맞다" 면서도 "수사 기관으로 5·18 허위 사실 공표를 금지한 특별법 위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처벌 사례가 있습니다.
지만원 씨는 허 전 의장이 나눠준 인쇄물에 담긴 바로 그 내용, '5·18 북한군 개입설'을 반복 주장하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허위 사실로 518 유공자들 명예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표현의 자유 한계를 초과했다는 겁니다.
허 전 의장은 "왜 5·18에만 이렇게 예민하냐"고 토로했습니다. “가짜뉴스가 한둘이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고도 했습니다.
5·18에 예민한 이유는 국가가 죽지 않아야 할 시민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할 수 없는 이유는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사과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윤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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