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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책&생각] 누구나 속는다지만, ‘가끔만’ 속을 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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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 ‘카드 사기꾼’(1620).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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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속는 이유
똑똑한 사람을 매혹하는 더 똑똑한 거짓말에 대하여
대니얼 사이먼스·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지음, 이영래 옮김 l 김영사 l 2만4000원



과장광고에 혹해 물건을 샀다가 낭패를 본 적 없는지? 이른바 ‘가짜뉴스’를 섣불리 에스엔에스(SNS)에 공유했다가 후회한 적은? 금융 사기, 온라인 평점 조작, 실험과 논문 조작,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치 캠페인 등 세상에는 온갖 속임수가 넘쳐난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땐 ‘어설픈 수법인데 왜들 그렇게 속나’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 일이 자신에게 닥치면 ‘홀린 듯 당했다’고 자책하는 건 우리 모두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다.



‘당신이 속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왜 그렇게 잘 속는지, 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속임수를 막아낼 수 있을지 말해주는 책이다. 지은이인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과 동명의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인지심리학자들이다.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횟수를 세어보라고 했더니 그 틈바구니에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알아채지 못하더라는, 이른바 ‘무주의 맹시’를 밝혀낸 실험이다. 인지 능력의 한계를 지적했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그 인지 능력의 한계를 이용하는 속임수의 구조에 주목했다.



우리가 잘 속는 것은 ‘진실 편향’(truth bias) 때문이다.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추론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진실이라 가정하는 진실 편향을 탑재하고 있다. “진실 편향은 특성이지 버그가 아니다.” 모든 걸 의심하면 속지 않을 가능성이야 커지겠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진실을 말한다는 가정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 수도, 행동을 조직화할 수도, 간단한 대화조차 나눌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하지만 지나치게 신뢰하면 곤경에 처하는” 난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속지 않는 전략 자체는 간단하다.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다. 다만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깨닫고 어떻게 확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진짜 관건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언제 어떻게 더 잘 속는지 드러낸다. 집중, 예측, 전념, 효율 등 네 가지 인지 ‘습관’은 평소 우리가 사고하고 추론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속임수가 뿌리내릴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없는 것에 조바심치기보다는 우리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한다. ‘혈액 한 방울로 수많은 의료검사를 할 수 있다’는 사기극을 벌였던 테라노스는 방문객이 눈앞에서 작동하는 소형 의료검사기에 집중하는 동안 실제론 다른 실험실에서 분석을 진행해 그 결과를 활용했다. 지은이는 누락된 정보, 실패 사례 등 우리의 집중 밖에 있어서 “놓친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살아서 돌아온 폭격기들의 피탄 위치가 아니라 우리가 볼 수 없는, 격추되어 돌아오지 못한 폭격기들의 피탄 위치를 따져봐야 한다는 원리다.



만약 우리가 ‘예측’하던 것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접한다면, 그것은 되레 ‘더 많이 확인하라’는 신호다. 다른 방향을 예측했던 사람이 잘못된 데이터를 잡아낼 가능성이 더 크며, 이는 조직에서 ‘레드팀’을 운용하는 이유다. 어떤 가정이 ‘전념’에 이르면, 의문을 제기하는 증거들에 ‘의도적 눈 감기’를 하게 된다. 사람이나 권위 등에 대한 신뢰도 전념의 한 형태다. 조금이라도 확인해보면 속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시간과 노력을 아끼기 위해 제한된 경험으로 추론하는 등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큰돈이 오가는 미술품 시장에선 전문가조차 종종 위작에 속아 넘어가는데,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재료가 쓰였’는가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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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당신이 속는 이유’에서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의도적인 선택으로 진실 편향을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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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려는 이들은 늘 이 습관들의 토양에 ‘좋은 이야기’를 심어 우리를 매혹시킨다. 거기엔 네 가지 ‘후크’(갈고리)가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 폰지 사기를 일으킨 버니 메이도프는 투자자들에게 일확천금보다 더 바람직한 것, “손실과 변동성이 적은 꾸준한 성장”을 약속했다. 그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동안 전체 시장의 수익률은 연 37%에서 -25%까지 요동을 쳤지만 그의 수익률은 매년 7~14%를 유지했고, 사람들은 이 ‘일관성’을 진짜의 특성이라 생각하고 투자했다. 그러나 진짜 데이터에는 항상 ‘노이즈’가 있기 마련이다. 예외가 없는 매끄러운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 논문들은 대체로 조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반복된 경험을 믿고 불확실한 것보다 ‘친숙함’을 선택한다. 가짜 기관이나 웹사이트를 활용하는 ‘피싱’ 공격 등이 이런 친숙함을 활용하는 사례다. “뭔가가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을까’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은 ‘정밀성’을 앞세운다. 소수점 네 자리까지 제시된 정밀한 숫자는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오류들이 속속 드러나곤 한다.



또 사람들은 ‘효능’에 쉽게 속는다. 획기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약 광고부터 ‘교실 사진을 보여주면 학교 기금을 늘리자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등에 기반한 정책 설계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주장은 사람들의 인지적 방어를 뚫고 들어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어떤 자극에 대한 노출이 의식하지 못한 채 후속 자극에 영향을 준다는 ‘프라이밍’ 개념에 매달렸는데, 나중엔 그 효능이 그렇게 “크고 강력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마저 자신이 “효능에 현혹되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인간의 인지가 이렇게 생겨먹은 한 ‘아예’ 속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가끔은’ 속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습관’과 ‘후크’를 염두에 둔 채 “수용과 확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지은이는 조언한다. “왜 나인가?”(내가 그들의 유일한 설득 대상인 건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그들이 원하는 일과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일치한다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속기 쉬운 상황과 장소에 와 있는 건 아닐까?) 등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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