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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삼성전자, 노조 힘빼기…해묵은 노사협의회 또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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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4월17일 오후 경기 화성 삼성전자 부품연구동(DSR)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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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협의회는 노조의 기능을 대체하는 비노조 경영의 핵심 요체.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놓아야 함.”



2011년 7월 복수노조 설립 허용을 앞둔 ‘삼성그룹 노사전략’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다. 삼성은 ‘무노조 유지’와 ‘노조 와해’를 위해 노사협의회를 “전략적으로 육성”해왔다. 2018년 검찰 수사를 통해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이 드러나자, 2020년 5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무노조 경영’이 폐기돼 노조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지만 삼성에서 노사협의회는 노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회사와 단체교섭 과정에서 쟁의행위에 돌입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노사협의회가 “노조를 무력화한다”고 주장한다.





■ 노사협의회의 ‘권한 없는’ 임금 결정





“사원대표 8명이 삼성전자 12만명의 임금을 결정하는 게 맞습니까? 우리는 사원대표에게 임금협상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4월17일, 삼성전자 창립 55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쟁의행위’인 전삼노 집회에서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집회에 2천명 넘는 직원이 모이고, 최근 조합원이 급증한 배경에는 반도체(DS)부문 성과급 미지급, 산정 방식 등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삼성전자가 노사협의회와 해왔던 ‘임금조정’에 있다.



삼성전자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상 각 사업장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인 ‘사원대표’ 8명과 회사 인사담당자 등이 협의를 거쳐 해마다 전 직원의 임금 인상률을 결정한다. 그러나 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에서 ‘임금 지불 방법·체계·구조 등의 제도 개선’ 등의 사항을 ‘협의한다’고 정할 뿐, 임금 수준 결정은 협의 사항에 포함하지 않는다. 회사도 이를 인정한다. 삼성전자는 1일 한겨레에 한 서면답변에서 “임금조정과 관련해 사원대표와 ‘협의’를 하는 것이지 사원대표와 합의하거나 사원대표에게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며 “임금조정은 전체 임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협의하기 위한 임의적 절차”라고 밝혔다.



한겨레

2012년 삼성그룹 노사전략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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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보다 관행?





노사협의회와의 임금조정은 권한도 법적 효력도 없지만, 노조의 임금협약 등 단체교섭에 영향을 미친다. 전삼노는 회사와 2023, 2024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을 벌이다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올해 3월14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쟁의조정 절차를 거쳤지만 조정이 불발됐다. 그런데 보름 뒤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 사원대표와 협의를 거친 임금을 조정한 결과를 발표해버렸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노조 무력화를 위해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성전자는 “전삼노의 조직률이 20% 남짓이어서, 전체 직원을 대표하는 노사협의회와 임금조정을 협의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전삼노와 회사가 체결한 임금협약은 조합원에게만 적용되는데, 임금협약 체결 때까지 비조합원 노동자의 임금 결정을 미룰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주장대로라면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회사가 노조를 제쳐두고 노사협의회와 협의해 임금 등을 결정하는 것을 용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로자참여법은 30인 이상 사업장에 노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라고 정하고 있어, 노동자는 그 의지와 관계없이 모두 노사협의회 ‘소속’이 된다. ‘대표하는’ 노동자 수 면에서 노조가 노사협의회를 넘어설 수 없다. ‘2012년 삼성그룹 노사전략’은 노조가 설립되더라도 “협의회의 대표성을 강조”해 “노조 무용론을 확산”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부당노동행위 성립 가능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게을리(해태)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봐 금지한다.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 협의를 통한 임금조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고용노동부가 “매년 특정한 시기에 임금 인상 관행이 있다면 사용자가 비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임금 인상을 임의 결정해 지급해도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행정해석을 한 내용을 든다. 그러나 이 행정해석은 “사용자 측이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교란·와해할 의도로 비조합원에 대한 일방적인 임금 인상을 결정하고 노조원들을 노조로부터 탈퇴시키려는 등 노동3권을 침해하려 한 것이라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조와 노사협의회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로자참여법은 “노조의 단체교섭이나 그 밖의 모든 활동은 이 법(근로자참여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노동법)는 “노사협의회는 노조를 보조하는 역할은 가능하지만 노조를 대체할 수는 없다”며 “(노사협의회에서) 노사협의를 했기 때문에 단체교섭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범진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도 “삼성의 논리가 확산되면 과반수 노조가 아닌 노조의 교섭권 침해도 심각해질 것”이라며 “노사협의회와 노조의 권한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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