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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경제포커스] 한독목장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꿈의 릴레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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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목장의 꿈은 야쿠르트로… 다시 ‘야쿠르트 아줌마’로

그렇게 이어져 온 꿈의 릴레이는 ‘나’ 아닌 後代를 정조준했다

조선일보

한국 야쿠르트 매니저가 냉장 카트 ‘코코’를 몰고 서울 봉천동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고 있다./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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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독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광부와 간호사’다. 하지만 우리 산업사에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게 있다. 낙농업. 1인당 국민소득 107달러이던 1964년, 박 대통령은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에게 우유를 배불리 먹이고 싶다는 꿈을 서독 뤼브케 대통령에게 말했고, 그렇게 독일에서 젖소 200마리를 데려왔다. 낙농이란 말조차 생소해 낙농 기술자까지 함께 들여왔다. 자동차를 수입하며 운전사까지 수입한 격이었다. 한독낙농목장. 이렇게 1969년 경기 안성에 문을 연 이곳은 지금은 농협이 맡아서 안성팜랜드란 테마파크로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야쿠르트의 전설’도 시작된다. 독일 덕분에 우유 생산은 늘었지만 처리 능력이 없으니 버리는 게 너무 많았다. 당시 건국대 축산연구소장이던 윤쾌병씨는 이를 고민했고, 친척이던 윤덕병 한국야쿠르트(현 hy) 창업자가 우유에서 유산균을 활용하는 일본 기술을 사 와서 만든 게 우리 야쿠르트의 효시다. 그 야쿠르트를 팔기 위해 도입한 게 야쿠르트 아줌마로 더 익숙한 ‘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 1971년 8월 서울 종로에서 47명으로 시작해 지금도 전국에 1만10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평균 연령 50.4세, 최연소 20세, 최연장자 81세. SKY 대학 출신도 있다. 평균 연봉은 약 2650만원. 매출의 25% 안팎이 그들의 몫이다. 프레시 매니저라는 근사한 이름까지 만들어놨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줌마’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클릭 한번이면 문 앞에 주문 물품이 놓이고, 골목마다 편의점 등이 즐비한 시대에 이들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생활비는 물론 누군가의 학원비나 병원비를 벌겠다는 이들의 소박한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코로나에도 매출을 늘렸고, 함바집도 뚫었고, 전자상거래도 이겨내고 있다.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자녀들에게 이어져 건강한 사회의 초석이 됐다고 믿는다. 이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도 있다. 회사도 혁신에 매진했다. 최초의 냉장고가 달린 탑승형 전동카트인 ‘코코(coco, cold&cool)’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놀랐다. 한 번 충전에 주행거리 40㎞, 최고 시속 8㎞/h, 한 번에 야쿠르트 2200개가 들어갈 수 있는 창조적인 공간 배치 등이다. 내년이면 코코2가 등장한다. 이런 게 세상을 바꾸는 또 다른 혁신일 것이다. 한국 산업사에는 이런 꿈의 릴레이가 곳곳에 숨어 있다. 관(官)에서 한독낙농목장을 만든 희망의 바이러스가 야쿠르트란 회사와 기업인을 거쳐 소시민들인 ‘야쿠르트 아줌마’들에게 확산됐다. 그 꿈과 희망은 ‘나’가 아닌 ‘다음 세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치러진 총선의 ‘포퓰리즘 공약 잔치’나 연금공론화위가 내놓은 ‘미래 세대에게 폭탄을 던지는 개혁안’ 등을 보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꿈의 릴레이가 이렇게 끊어질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그게 끊어지면 긴 낭떠러지가 기다릴 것이고, 그 추락은 우리가 아니라 자녀 세대의 몫이 된다. 포퓰리즘을 결코 용인해선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은 아직 투자하기 매력적이다. 소득 2만달러가 넘는데도 공짜 대신 ‘더 일하고 싶다’는 국민은 정말 드물다”

10여 년 전 만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관계자가 해준 말이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가 살 만하다고 여기는 것은 이런 꿈의 릴레이가 곳곳에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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