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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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 사태를 통해 더욱 또렷해진 사실이 있다. 케이(K)팝의 진짜 주역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제작자와 프로듀서라는 점이다. 케이팝의 토대를 다진 3대 기획사 이름부터 이수만(SM)·양현석(YG)·박진영(JYP) 프로듀서에서 따온 것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번 사태에선 프로듀서 사이에도 상하관계로 나뉘었다는 점이 특징적으로 드러났다. 어도어 지분 80%를 가진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자본을 댄 제작자,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는 그룹 뉴진스를 기획한 크리에이터에 해당한다. 민희진은 한 레이블의 대표인데도 제작자보다 아티스트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 아티스트인 뉴진스보다 더 아티스트다운 면모가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도드라졌다.
케이팝 아티스트의 위상은 어떤가. 흔히 케이팝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은 스스로 팀을 꾸리고 곡을 만들고 활동을 주도했다. 반면 본격적인 케이팝의 시작을 알린 에이치오티(H.O.T.)는 에스엠의 철저한 기획에서 출발했다. 초창기 아이돌은 기획된 상품에 불과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하지만 실력파 아이돌이 잇따라 등장하고, 빅뱅·방탄소년단(BTS)·(여자)아이들 등 곡을 직접 만드는 그룹이 보편화되면서 아티스트로서의 위상이 탄탄해졌다.
뉴진스는 새로운 케이팝 아티스트 유형이라 할 만하다. 듣기 편한 음악과 뉴트로 콘셉트로 기존 케이팝 그룹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성공 요인으로는 늘 민 대표의 탁월한 기획력이 거론된다. 멤버들의 매력 또한 그들을 뽑은 민 대표의 능력으로 수렴된다. 민 대표는 ‘뉴진스 맘’으로 불린다.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에 뉴진스가 출연했을 때 민 대표는 엄마처럼 옆에 붙었다. 민 대표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뉴진스를 “내 새끼들”이라고 했다. “내가 만들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남다른 애착의 표현이라고는 해도, 뉴진스에 수동적 소유물이란 프레임을 씌운 것도 사실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왼쪽)와 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학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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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고 며칠 뒤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SBS)의 1·2부를 몰아봤다. 재정난으로 지난 3월 폐관한 소극장 학전의 김민기 대표에 관한 다큐다. 김민기는 ‘아침 이슬’ ‘상록수’ 등을 만들고 부른 빼어난 아티스트다. 자신의 음반 수익을 털어 1991년 학전을 세운 뒤로는 아티스트가 아닌 기획자로 살아왔다. 그는 스스로를 ‘뒷것’이라 칭했다. ‘앞것’인 배우들과 가수들 뒤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그들을 밝게 비추는 일을 했다. 배고픈 무명 배우들에게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자신의 월급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줬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 자를 쓰는 학전은 못자리를 뜻한다. 배우 이황의는 “김민기 선생님은 (배우가) 다 크면 내보내고 모를 새로 심고 농사짓는 마음으로 하셨다. ‘잘되면 얼른 나가. 뒤돌아보지 마’ 하셨다”고 전했다. 그렇게 해서 큰 배우가 된 이들은 스스로 김 대표를 “스승님이자 아버지”라 부른다. 김 대표가 먼저 “내가 그들을 키웠다”거나 “내가 아버지”라고 말한 적은 결코 없었다.
‘앞것’ 민희진과 ‘뒷것’ 김민기를 보며 아티스트를 만드는 기획자의 덕목에 대해 곱씹어본다. 이번 사태에서 진정 뉴진스를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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