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뉴욕경찰이 컬럼비아대를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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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9시 뉴욕 맨해튼 북부 컬럼비아대 캠퍼스 안으로 ‘NYPD’(뉴욕경찰)라고 쓴 검은 사다리차가 갑자기 진입했다. 차량 위로 20여 명의 경찰이 헬멧 등 전술 장비를 착용한 모습이 보였다. 이 사다리차는 전일 반(反)이스라엘 시위대가 점거한 캠퍼스 내 강의실·행정 건물인 ‘해밀턴 홀’ 앞에 멈춰 서 2층 창문으로 접근했다. 경찰들은 자물쇠로 잠긴 문을 망치로 부수고 건물에 들어갔다. 전날부터 건물을 점거하고 있던 시위대는 체포된 후 포승줄에 묶여 밖에 대기 중이던 경찰 버스에 올라타 끌려갔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간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국 등 서방국가 내의 여론이 갈리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미국 대학, 그중에서도 1960년대 말 베트남전 반전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컬럼비아대는 미 사회의 극단적 여론 분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가 됐다. 이 학교에서는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진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를 비난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지난달부터 반이스라엘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맞서 학교 측은 이들이 학교를 불법 점거하고 인종차별적인 반유대주의 구호를 발설함으로써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1일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에선 반이스라엘과 친(親)이스라엘 시위대 간 쇠파이프까지 등장하는 충돌이 발생해 LA 경찰이 캠퍼스에 진입하는 등 시위로 인한 대학 내 분쟁이 미 전역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지난 30일 경찰의 컬럼비아대 진입과 시위대 200여 명에 대한 체포는 같은 달 18일 100여 명이 체포된 데 이어 단행됐다. 전날 학교 측은 캠퍼스 내 야영을 하던 시위대에게 “29일 오후 2시까지 해산하라”고 했고 이를 거부한 시위 동참 학생들에게 차례로 정학 처분을 내렸다. 이에 반발하여 30일 새벽 학생 수십 명이 캠퍼스 내 해밀턴 홀의 유리문을 깨고 들어간 후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농성을 시작했다. 시위대 중 다수는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그물 무늬 케피예(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휘감은 모습이었다. 학교 측은 처벌 수위를 한 단계 높여 퇴학 처분을 내리는 한편, 지난주 말 “캠퍼스에 경찰력 추가 투입은 없다”고 했던 입장을 뒤집고 NYPD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날 연행된 시위대를 무단 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1일 찾아간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보니 한때 시위대가 설치했던 잔디밭 천막이 모두 철거된 상태였다.
30일 뉴욕 할렘에 있는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수십명의 반이스라엘 시위대가 체포됐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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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건물 장악 사태는 이날 경찰의 진압으로 큰 위기를 일단 넘겼지만, 반이스라엘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며 더 큰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이후 미 캠퍼스에서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이미 경찰에 연행됐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을 반복해 요청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조만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인 지난 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휴전 협상이 타결되든 무산되든 우리는 라파에 들어가 하마스 부대를 모두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스라엘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미 전역에서 들끓는 반이스라엘 시위가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 끼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시위 전부터 ‘중동 정책이 친(親)이스라엘 일변도’라는 비난을 받아온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 측은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지난 30일 브리핑에서 “시위는 평화적으로 해야 하고, 누구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되며, 동료 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야당인 공화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바이든의 무능을 비난하면서 이번 사태 관련 비판의 초점을 ‘시위대의 폭력성’에 맞추며 정부 행동을 압박하고 있다. 시위대 농성 이후 컬럼비아대를 직접 방문했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반이스라엘 시위대로부터) 유대인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한 대학들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 일각에선 일부 시위대의 과격한 반유대주의 구호를 최대한 부각시키며 이를 바이든과 엮으려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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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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