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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 시위와 파업

[만물상] 심상찮은 美 대학가 反유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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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쫓아낸 서기 134년은 유대인들에게 통한의 해다. 그 후 십자군 전쟁, 흑사병, 2차대전 등으로 역사가 요동칠 때마다 민족이 학살당했다. 배경에 ‘예수를 죽게 한 자들’이라는 등 서구 사회의 뿌리 깊은 반(反)유대주의가 있었다. 하지만 나치 학살을 계기로 ‘유대인=핍박받는 소수’라는 인식이 생겨나며 반유대주의는 서구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가 됐다.

▶2020년 기준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760만명으로 미국 전체의 2.4%다. 4700만명으로 13.5%인 흑인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미국 내 영향력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미국 사회에서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히면 설 곳을 잃는다. 이스라엘-가자 전쟁이 터진 뒤 일론 머스크가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유대인 비판 글에 동조했다가 기업 광고가 줄줄이 끊기는 일을 당했다. 배우 수전 서랜던은 가자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10년 몸담았던 소속사에서 쫓겨났다.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할 대학조차 유대 사회 눈치를 본다. 미국 USC대학은 올해 졸업사를 하기로 했던 학생이 소셜미디어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연설을 취소시켰다.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반유대주의에 명확한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장직을 내놨다. “이스라엘에 전쟁 책임이 있다”는 성명을 낸 여러 로스쿨 학생은 졸업 후 가기로 했던 로펌들에서 채용을 취소당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는 대학생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 캠퍼스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강제 해산하고 학생 100여 명을 체포하자 전국 20여 대학 학생들이 반발하며 시위가 번졌다. 시위 확산 바탕엔 유대 사회가 권력과 영향력으로 다른 목소리를 억압한다는 불만도 쌓여 있다. 유대인을 피해자로 여기는 기성세대와 팔레스타인이 약자라는 신세대 간 견해차도 있다.

▶이번 시위 사태에서 1960년대 미국 대학가를 휩쓴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떠올리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 지속을 천명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자 출마를 포기했다. 1968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반전 시위대 난입으로 폭력 사태로 번졌다.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도 시카고에서 열린다. 가자 전쟁 불똥이 미국 사회에 소리 없이 쌓여온 반유대 감정에 불을 지핀 것 같다. 바이든과 트럼프 재대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게 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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