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②]
강미숙씨,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서 계엄군에 붙잡혀
상무대→광산서로 연행…군인들에 집단 성폭행 당해
강씨 "수치스러워 누구에게도 말 못 해"
광주시 8차 보상에 성범죄 신규 피해 보상 11명 신청한 듯…남성 피해자도 3명
올해로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4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범죄가 조금씩 규명되고 있지만 일부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입증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광주CBS 취재를 통해 일부 5·18 성범죄가 출산이나 유산 등 2차 피해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 남성들 역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많은 5·18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한 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숨기며 지내고 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인정받은 극히 일부만 트라우마 관련 치료를 받았을 뿐이다. 광주CBS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나 그들의 자료를 직접 듣고 보며 5·18 성범죄의 진실에 더 다가가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5·18 민주화운동 성범죄 피해 관련 첫 보상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5·18 성범죄 피해와 조사, 보상 등 전반에 대해 짚어본다.
2019년 12월 공개된 5·18 당시 보안사령부 생산 사진첩 속 강미숙씨 모습. 5·18 비공개 사진 대국민 설명회 발표자료 부록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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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
①5·18 당시 성범죄로 임신→출산→입양? ②44년 만에 고백 5·18 성범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겪어" (계속) |
광주CBS의 5·18 44년 연속기획보도. 5·18민주화운동 44년, 가슴에 묻은 진실. 30일은 두 번째 순서로 5·18 당시 성범죄 피해를 입었지만 44년이 지난 지금도 관련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온 피해자들에 대해 보도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성범죄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는 성폭력 피해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980년 5월 27일 당시 17살 여고생이던 강미숙(여, 가명)씨는 전남도청 취사반에서 일하고 있었다.
강씨는 "(전남도청) 안에서 밥도 해주고 밥을 지어다가 사람들 주면서 도와줬다"면서 "대학생 언니들 오빠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강씨는 27일 새벽 4시 30분쯤 전남도청에 들이닥친 계엄군들에게 붙잡혔다. 당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붙잡힌 시민들은 대부분 상무대로 끌려가 폭행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강씨도 상무대로 끌려가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시민들 중 한 명이었다. 강씨는 "기억이 많이 남는 부분은 상무대 마당에서 많이 맞았던 상황들"이라며 "겁먹으면 그냥 군홧발로 마구 두들겨 패고 (시민들을) 쭉 앉혀놓고 발로 차서 넘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이후 상무대로 끌려간 시민들 중 여성들은 다시 당시 광산경찰서로 이송돼 고초를 겪었다.
구금 중 계엄군 추정 3명에게 성폭행…"안대 틈으로 군홧발 보여"
1980년 5월 광산경찰서로 이송된 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강미숙씨. 박성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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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경찰서로 이송된 이후 강씨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끌려간 곳이 광산경찰서 내부인지 밖인지 기억이 확실하진 않다. 눈을 가리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면서 "밖이었다면 몸에 무엇이라도 부딪혔을 텐데 그런 건 없었으니까 실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눈을 가리고 나한테 그렇게(성폭행)하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며 "눈을 뜨니까 유치장 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당시 한 명 이상의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 명은 아니고 한 서너 명 됐었다"면서 "자기네끼리 조용히 얘기해 큰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어렵게 기억을 떠올렸다. 강씨는 "안대 밑으로 군홧발이 오가는 게 보였다"고도 증언했다.
강씨는 성폭행 피해를 겪은 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혼자 견뎌내야 했다.
강씨는 "5·18과 관련된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때 당시에 너 성추행 당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은 뒤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7남매 장녀였고 내색할 수 없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에 내 감정이나 몸을 보살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결혼생활도 이어갈 수 없었다. 강씨는 "결혼을 여러 번 하면서 딸 하나 낳고 사는데 부부 생활이 제대로 안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생활고에 못 이겨 1998년 5·18민주화운동 제3차 보상 신청을 했지만,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에는 기록이 공개되지 않아 기각됐지만, 이후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연행·구금 명단을 공개하면서 구금 사실이 인정돼 7차 보상 당시 보상금 지급이 의결됐다.
7차 보상 당시 강씨는 "3명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상이·연행·구금으로만 보상 의결이 됐다.
강씨는 "당한 것도 수치스러운데 먹고살기 힘들어 일하고 돈 벌고 그렇게 살았다"며 "이제 나이가 드니까 (성폭행 피해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 5·18 8차 보상 신청 접수…성범죄 피해 11명 신규 사례 접수
5·18 당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는 계엄군. 5·18기념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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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연행·구금 명단과 사진이라는 명확한 물증이 남아 있어 5·18 보상자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성범죄 피해 사실은 43년이 지난 지난해 말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실제 지난해 광주시에 성범죄 피해로 제8차 보상을 신청한 사람 26명 중 13명은 성범죄가 상이 연행 등 다른 항목으로 보상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5·18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으로 '5·18 성폭력 공동조사단'을 꾸려 17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하면서다.
이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조사위')는 지난 2020년 5월 공동조사단으로부터 인계받은 사건 17건과, 지난 1~7차 보상심의자료에서 추출한 성폭력 피해 26건, 신청사건 8건과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계엄군 성폭력 피해 사실조회를 의뢰받은 1건을 합해 총 52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52건 가운데 △조사대상자 사망 및 병환 등으로 진술 불가능 △조사대상자 사망 후 가족 조사 거부 △조사자 조사 거부 △조사자 신병 미확보 등의 사유로 조사대상 사건은 19건으로 축소됐다. 조사 결과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됐다.
광주시가 5·18 특별법 개정을 반영해 성폭력 피해자도 보상 신청 대상자에 포함시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8차 보상 신청을 접수했고, 성폭력 피해 보상 26건이 접수됐다.
26건 가운데 14건은 5·18조사위에서 진상규명이 됐고, 1건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됐다. 나머지 11건은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신규 피해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남성 피해 사례도 3건이 포함돼 있다.
보상을 심의하기에 앞서 5·18 관련성 입증 등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 앞으로 성범죄 추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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