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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무서운 온난화, 우주의 흔적도 삼킨다···남극서 ‘운석 대량 실종’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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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빙하 표면에 운석 최대 85만개 존재

온난화 때문에 빙하 녹으며 운석 가라앉아

현재도 한 해 5000개씩 빙하 속으로 잠겨

운석에 태양계 발달 과정 등 고스란히 수록

유일한 해결 방법은 ‘온실가스 저감’ 추진

경향신문

벨기에와 스위스, 영국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이 올해 남극점에서 약 1000㎞ 떨어진 유니온 빙하 근처를 대상으로 운석 탐색을 하고 있는 모습. 연구진은 남극 빙하 표면이 가열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연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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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18일 남극 동부 해안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날 엄청난 ‘훈풍’이 불면서 낮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치솟은 것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이 정도도 강추위지만, 남극에서는 아니다. 이 지역의 평년 기온(영하 50도)보다 무려 40도나 따뜻한 날씨였다.

당시 이상고온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남극에서는 최근 2년 새 전반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뜻밖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남극 빙하 표면에 널려 있는 수많은 운석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암석과 금속으로 구성된 단단한 운석이 날씨가 따뜻해진다고 부서지거나 녹을 리는 없다. 운석의 ‘실종’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운석 수십만 개 사라질 위기


지구 상공에는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 조각이 수시로 날아든다. 대부분은 우주에서 대기권으로 돌입하며 공기와의 마찰로 모두 불타 사라지지만, 간혹 잔해를 남기며 지상까지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것이 운석이다.

지구에서 운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남극이다. 남극 자연환경은 춥고 건조해 풍화작용이 약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운석이 원형대로 보존된다.

남극 지상이 새하얀 눈과 얼음, 즉 빙하로 덮여 있는 것도 운석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운석은 대개 검은색이어서 눈·얼음과 잘 대비되고, 이 때문에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쉽다. 지금까지 인간이 수집한 운석은 총 8만 개인데, 이 가운데 60%(4만8000개)를 남극에서 발견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운석은 태양계 발달 과정과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연구할 좋은 재료다. 대형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올 때 사용할 방어 수단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소행성의 일부였던 운석의 지구 낙하 속도와 구성 성분 등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극에서 앞으로 운석을 수집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벨기에 브뤼셀자유대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영국 맨체스터대 소속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를 통해 “지구 기온이 0.1도 오를 때마다 남극에서 한 해 최대 1만2200개씩 운석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얻은 계산 결과다.

남극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운석은 최대 85만개다. 연구진은 인류가 온난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를 대기에 마음대로 뿜는다면 남극 전체 운석의 76%(약 65만 개)가 금세기 말까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생물로 따지면 멸종에 가까운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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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와 스위스, 영국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이 올해 남극에서 발견한 운석. 빙하 속에 몸체 상당 부분이 묻혀 있다.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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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크’로 변하는 빙하 원인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운석이 사라진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운석은 암석과 금속으로 구성된 덩어리이기 때문에 무척 단단하다. 그런 운석이 날씨가 더워진다고 사라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구 온난화는 꽁꽁 언 남극 빙하를 녹여 물이 촉촉이 섞인 상태로 만든다. 그러면 빙하는 단단한 얼음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셰이크 같은 상태가 된다.

이러면 운석은 빙하 위에 머물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점차 빙하 속으로 가라앉는다. 물렁물렁해진 빙하가 늪처럼 변하는 것이다.

빙하가 계속 녹으면 나중에는 남극 탐사대로 나선 우주과학자들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운석은 빙하 깊숙이 숨어버리고 만다. 온난화 때문에 녹은 빙하가 운석을 삼키는 셈이다. 운석이 물리적으로 부서지거나 깨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없어지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 생기는 셈이다.

이미 그런 일은 일어나고 있다. 연구진은 지금도 한 해에 남극 운석 약 5000개가 빙하 속으로 종적을 감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학계가 한 해 남극에서 찾아내는 운석은 약 1000개에 불과하다. 온난화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운석을 찾아 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남극에서 운석 손실은 매우 작은 온도 상승으로도 일어난다”며 “운석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줄이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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