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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中 마피아는 어떻게 美 불법 마리화나 시장을 장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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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프로퍼블리카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메인주에 이르기까지 재배부터 공급에 이르는 불법 대마 시장의 전 영역은 이미 중국 범죄 조직과 ‘차이나 머니’에 의해 완전히 잠식됐다. 중국 마피아는 대형 트레일러나 경비행기까지 동원해 대마를 전국 각지로 반출하고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프로퍼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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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살인, 돈세탁, 도박, 뇌물, 인신매매, 사기, 매춘, 강제노역… 최근 몇 년 사이 중국계 마피아가 미국 불법 대마 시장을 장악하며 급증한 범죄들이다. 최근 미국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미국 내 대마초 합법화에 편승한 중국 범죄 조직과 자본의 유입으로 범죄의 온상이 된 지역의 실상을 밝혔다. 중국 고위층의 묵인이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렇게 형성된 불법 대마 공급망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고향을 떠나온 수천 명의 중국 불법 이민자와 화교였다. 중국 마피아는 어떻게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중국 고위층의 불법 자금 세탁을 전담하는 세계 최대 ‘지하 은행’으로 거듭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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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동양인 밀집 지역. 사진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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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언론사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지난달 이틀에 걸친 심층 보도를 통해 중국인이 점령한 미국 내 불법 마리화나(대마초) 시장의 이면을 낱낱이 들춰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서쪽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쪽 메인주에 이르기까지 재배부터 공급에 이르는 불법 대마 시장의 전 영역을 이미 중국 범죄 조직과 ‘차이나 머니’가 완전히 잠식했다.

의료용‧기호용 대마초 합법화 지역으로 돈과 사람이 몰리는 ‘그린 러시(Green Rush)’의 중심이 된 도시는 온갖 범죄가 횡행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특히 미국 중남부 지역인 오클라호마주는 2018년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되면서 가장 최근 ‘개척지’로 떠오른 대표적인 지역이다. 허가증만 있으면 재배 수량에 제한이 없고 땅값이 싸서 순식간에 대규모 재배장과 ‘검은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오클라호마에서 범죄 조직이 개입된 3000여 개 불법 대마초 농장 중 80~90%를 중국 마피아가 운영 중이다. 미 당국은 오클라호마의 불법 대마 시장이 매년 최소 180억 달러(약 25조 원)에서 440억 달러(약 61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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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화교 협회 ‘미국 푸젠 향우회(American Fujian Association)’ 건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현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프로퍼블리카=오클라호마 경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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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최대 마리화나 공급처로 거듭난 오클라호마의 실상이 수면위로 떠오른 건 중국인이 연루된 두 강력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2020년 이 지역 화교 협회인 ‘미국 푸젠 향우회(American Fujian Association)’ 건물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2022년 불법 대마초 농장에서 중국인 4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미 조사 당국이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마초 불법 재배는 물론 마약 밀매, 살인, 폭력, 협박, 불법 총기 소지, 노동 착취, 도박, 매춘,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가 줄줄이 드러났다. 범죄 용의자 중 언뜻 개인 사업자나 투자자처럼 보이는 이들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암시장에 연결돼 있었고, 일사불란한 대마초 밀매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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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킹피셔 카운티의 한 불법 대마초 농장에서 중국인 4명이 사망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차고 바닥에 대마초 더미와 상자가 널브러져 있다. 프로퍼블리카=킹피셔 카운티 보안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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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은 뉴욕에 기반을 둔 ‘삼합회’ 같은 중국 범죄 조직이 사실상 불법 대마초 시장의 배후라고 지목하고 있다. 대마는 미국 연방 차원에서는 아예 불법이고, 주 간 거래와 운송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런데 이런 대마를 대형 트레일러나 경비행기까지 동원해 전국 각지로 반출하고 판매하는 건 범죄 조직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수천 명의 중국 불법 이민자를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대마초 생산지로 이송하고, 총기 무장 보안요원을 시켜 이들을 감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대마초 관련 사건 용의자가 조직의 살해 위협을 주장했다거나 범죄자 이송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차량 여럿이 미행했다는 보안관의 증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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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마약단속국 요원이 중국인 4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 킹피셔 카운티 소재 대마초 농장에서 목격자와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킹피셔 카운티 보안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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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위층이 이런 범죄 조직을 묵인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도는 주미중국대사관의 총영사가 2022년과 2023년에 두 차례나 방문한 오클라호마 지역의 화교 단체 관계자 대부분이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된 점이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문제의 화교 커뮤니티 ‘푸젠 향우회’는 과거 총격 사건이나 살인 사건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회원 중 최소 12명 이상이 불법 대마초 밀매에 가담했거나 범죄 관련 혐의로 경찰에 기소됐다. 물론 총영사의 직접적인 위법 행위가 발견된 건 아니다. 다만 중국대사관 측이 적어도 ‘푸젠 향우회’ 회원들이 범죄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불법 활동이 의심되는 푸젠성 출신 인사들이 미국에서 중국 외교관, 공산당 지도자, 국가정보기관 관리는 물론 미국 정치인과도 밀접히 교류한 정황은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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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중국대사관 총영사(가운데)는 과거 두 건의 강력 사건으로 수사 대상이 된 오클라호마 지역 화교 협회 ‘미국 푸젠 향우회’를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 방문했다. 총영사가 접촉한 이 단체 관계자 대부분이 불법 대마초 관련 범죄와 연루돼 의혹이 불거졌다. 사진 프로퍼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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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국이 대마초 관련 불법 자금 거래를 눈감아주고 있다고 의심되는 근거도 여럿 나왔다. 보도는 미 연방정부, 법무부, 마약단속국 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수상한 자금 흐름을 알고도 묵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캘리포니아 지역 대마초 집중 단속 당시 적발된 한 중국인 용의자는 중국 국내 은행을 통해 미국 파트너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했다. 2020년 오클라호마 지역 불법 대마초 농장주들은 중국 메신저 위챗(Wechat)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업 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공연한 자금의 흐름을 중국 당국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전직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적어도 중국 정부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미 정부 고위관료 출신 관계자는 “중국 공산당 관리들은 이런 거래를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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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뉴멕시코주 경찰은 나바호 네이션의 소도시 쉽록에 들어선 대규모 불법 대마초 농장들을 급습해 용의자를 체포했다. 사진은 대마초 농장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공간. 사진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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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대마초 합법화 ‘붐’의 이면에 숨겨진 회색 공급망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중국 불법 이민자와 화교였다. 자유를 찾아 중국을 떠나 멕시코 국경을 통해 어렵사리 미국에 들어온 중국 불법 이민자들은 다시금 대마초 ‘개척지’로 팔려갔다. 철조망과 감시 카메라, 총과 칼로 무장한 경비원에 둘러싸인 농장에 감금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동을 착취당했다. 협박과 폭력에 상시 노출된 것은 물론, 여성의 경우 매춘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영국 BBC의 2021년 보도에 따르면 그해 코로나 사태로 실직한 많은 미국 화교도 합법적인 사업이라는 말에 속아 대마초 농장으로 몰려들었고,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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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뉴멕시코주 나바호 네이션의 소도시 쉽록에 들어선 대규모 대마초 농장을 상공에서 찍은 모습. 중국 마피아가 운영하는 불법 대마초 농장은 규제가 느슨한 도시로 계속 이동하는 추세다. 사진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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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국인은 어떻게 미국 마리화나 시장을 독점하게 됐나. 첫째, 합법과 불법 사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2012년 콜로라도주부터 시작된 주 단위 대마초 합법화 추세에 따라 중국 마피아는 단속이 느슨한 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편법을 통해 법망을 피하면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제조보다 수익성이 높고 처벌 위험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영향으로 폐업하거나 투자처를 잃은 화교 자본도 표면적으론 합법인 대마 사업에 쏟아져 들어왔다.

둘째, 미 단속 당국의 무관심에 판이 커졌다. 합법화와 비범죄화 요구가 확산하면서 대마초 단속은 미 법무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전 마약단속국(DEA) 운영국장 레이 도노반은 “불법 마리화나 사건 기소에 대한 연방 검찰의 관심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이해하고 많은 용의자가 사용하는 푸젠성 사투리를 아는 수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한몫했다. 2001년 이후 미 연방 정부의 업무 우선순위가 테러 관련 사안으로 바뀌면서 중국 조직범죄를 전담하는 인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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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인 노동자가 대마초 잎을 다듬고 있다. 사진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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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불법 마리화나 산업의 실체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 마약단속국 조사에 따르면 중국 마피아가 수천 파운드의 불법 대마를 유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은 멕시코 카르텔의 펜타닐 판매 자금을 세탁하는 데 쓰인다.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 은행’ 역할을 하는 셈이다. 중국 마피아가 멕시코 마약 자금 세탁을 통해 번 수익의 일부는 중국으로 흘러가고, 대부분은 미국 내 새로운 대마 비즈니스에 재투자된다. 보도는 이 중국 마피아 조직이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공산당 고위층의 자산 해외 반출을 돕고 중국 이민자 사회를 감시하고 박해하는 ‘스파이’ 또는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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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리화나 시장을 장악한 중국 마피아. 사진 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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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방 정부와 중국계 마피아 간 유착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 마약단속국 전 고위관리 출신 도널드 임은 “중국 지방정부는 경쟁적으로 범죄 네트워크와 삼합회를 이용해 정부 프로젝트를 위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미 연방수사국은 중국 지방 관리들이 범죄 조직과 결탁해 미국 불법 마리화나 시장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에 이용하고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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