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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바이드노믹스…뜨거운 경제, 냉담한 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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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4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당장 민간인 보호 조처에 나서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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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총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거 막판 화제가 된 ‘대파 가격’ 논란에서 확인된 것처럼 현 정부의 경제 실정 및 그에 대한 몰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윤석열 정부의 경제성적표에 대해서는 앞서 쓴 두 차례의 칼럼 참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선거는 11월5일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미국 대선과 관련된 경제와 정치의 매우 특이한 다이나믹스를 살폈다.





바이드노믹스, 민주당의 기피 용어





미국에선 현 정부 경제정책을 바이드노믹스라 부른다. 레이거노믹스나 클린터노믹스에서 보듯 경제정책에 대통령 이름을 붙이는 건 이례적이지는 않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의료보장 확대 정책을 ‘오바마케어’라고 부르면서 애착을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바이드노믹스’라는 말은 자신이 작명하지 않고 경제지들이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단서를 달면서도 그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언급했다. 백악관 수석부대변인 올리비아 달튼은 “바이드노믹스는 백악관에서 오늘의 단어, 금주의 단어, 이달의 단어, 그리고 올해의 단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든 역량을 경제정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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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바이든과 민주당, 바이드노믹스 언급 회피’라는 뜻밖의 기사를 냈다. 바이든의 발언에서 바이드노믹스라는 단어의 등장 횟수를 월별로 집계해 보니, 지난해 6월 29회에서 지속적으로 줄어 11월 이후에는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의 의회 발언, 보도자료, 소셜 미디어 포스팅에서도 바이드노믹스 언급은 지난해 7월만해도 483회에 이르렀지만 계속해서 감소했다.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보다 더 빈번히 바이드노믹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바이드노믹스는 민주당의 기피 용어이자 공화당의 비판 무기가 됐다는 게 악시오스 보도의 핵심이다.



이는 연말 선거를 앞두고 미국 국민이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보다 근소하게 더 높다. 하지만 경제 분야로 좁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트럼프가 일관되게 뚜렷한 차이로 바이든을 앞선다. 예컨대 시엔비시(CNBC) 3월 조사를 보면, 투표 의향에서 트럼프(46%)는 바이든(45%)과 박빙이지만, ‘누가 더 경제를 잘 운영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트럼프(56%)가 바이든(26%)을 두 배 이상 앞섰다.





객관적 경제 성적표





바이든이 정말로 경제를 엉망으로 운영한 것일까. 핵심 경제 지표는 이러한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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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국 경제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4년 간 평균 1.5%, 바이든 대통령 재임 지난 3년 동안 3.4% 성장했다. IMF가 추정한 올해 성장률 2.7%를 적용한 4년 평균 성장률은 3.2%다. 바이든의 성적이 트럼프보다 두 배 가까이 나은 셈이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임기 4년 동안 일자리는 290만개 감소했지만 바이든 임기 3년 동안 일자리는 1479만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3개월 동안 83만개를 더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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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성장률과 일자리는 모두 ‘코로나19 팬더믹’ 효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는 남는다. 트럼프는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에 성장률이 마이너스 2.2%에 달했고, 일자리가 927만개 줄어드는 참사를 겪었다. 하지만 그 전 3년 동안은 바이든보다는 부족하지만 대체로 손색없는 성적을 냈다. 바이든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자면 임기 첫해의 높은 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모두 그 전해의 코로나 발발로 인한 기저효과라고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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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발목을 잡는 핵심 경제지표는 인플레이션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트럼프 재임 동안 평균 1.9%로 낮게 유지됐지만 바이든 임기 시작 후 올 3월까지 평균 5.4%다. 특히 2022년 3월부터 9월까지는 8%를 웃돌기도 했다. 이후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3%대다. 바이든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우크라이나 전쟁 및 세계 공급망 단절 등 외부 요인으로 돌리고 있지만, 바이든이 임기 초 빠른 코로나 극복을 위해 취한 강력한 재정정책의 후폭풍이라는 측면도 있다.





객관적 성적과 주관적 심리





1960년대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한 아서 오쿤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합쳐 경제적 어려움을 측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오쿤 경제고통 지수’(Okun’s Misery Index)로 명명되어 광범위하게 활용됐다. 또다른 지표도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이 매월 조사해서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Index of Consumer Sentiment)로 경제주체들의 주관적 평가를 측정한 지수다. 지수가 낮을수록 국민이 경제적 측면에서 큰 고통을 느끼고 불안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제전문기자 그렉 입은 지난해 11월 ‘경제는 좋은데 왜 기분은 안 좋은가’라는 기사에서 이 둘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짚어냈다. 일단 경제고통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는 반비례 관계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실제 그러했다. 하지만 2023년 이후부터 경제고통지수가 매우 낮은데도 경제심리지수가 개선되지 않고 지속해서 낮게 유지되는 현상을 그는 발견했다. 올해 들어서 약간 회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객관적 현실보다 심리지수는 낮게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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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카일라 스캔런이 작명한 바이브세션(vibecession)이라는 신조어로 알려진 현상이다. 심리(vibe)와 불황(recession), 두 단어의 합성어로 경제의 객관적 상황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불황에 빠져있다고 느끼는 심리 상태를 지칭한다. 그렉 입은 그 이유로 의학에서 사용되는 ‘참조통’(referred pain)이란 표현을 끌어와 설명한다. 참조통은 신체 내 장기에서 발생한 통증이 전혀 무관한 다른 신체 부위에 반사되어 통증을 느끼는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다. 경제적 상황이 나쁘지 않음에도 정치적 혼란(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전쟁, 국경 난민, 문화 충돌 등)이 극심하면 사람들은 경제 위기가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게 그렉 입의 주장이다.



미 재무부 전 장관 래리 서머스 등의 경제학자들은 전미경제분석국(NBER) 발표문을 통해 순수하게 경제학적 측면에서 경제고통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의 불일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물가 급등 시점에는 가계의 이자 지출이 매우 중요함에도 소비자물가지수가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1970년대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의 자가 주거비 항목에 모기지 상환액이 반영되었지만, 통계 작성 당국은 이 변수가 물가지수를 지나치게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대신 ‘당신이 주택을 보유하는 대신 임차했으면 얼마나 지출했을까’라는 가상적 상황을 상정한 ‘소유자 등가 임대료’(Owner’s Equivalent Rent)를 포함시켰다. (한국은 주거비에 임차인의 전·월세 비용만 포함하고 있다. 이는 한미 간 물가비교의 걸림돌 중 하나다.)



이들이 과거와 같이 모기지 이자 부담을 포함시켜 소비자물가지수와 경제고통지수를 재계산한 결과 최근 발생한 경제고통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 불일치의 약 70% 정도가 해소됐다. 현재의 경제고통지수가 경제 고통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주관적 심리와 정치 행동





또 하나의 고리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관한 것이다. 심리에 대한 또 하나의 지표는 소비자신뢰지수(Consumer Confidence Index)다. 이 지수는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예측을 반영한다. 소비자신뢰지수가 높아지면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이것 또한 장기에 걸쳐 전 세계에서 관찰됐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2002년 이후 이 관계가 단절되고, 정부지지도가 소비자신뢰지수와 무관하게 결정된고 있는 점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미국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가 사실상 당파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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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들이 미국 대선에 주목하면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하고 이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가설이 경합 중인데 현재까지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이든의 경제 성적표는 상당히 좋다(트럼프도 나쁘지 않다). 둘째, 경제 성적이 국민의 심리에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셋째, 미국 정치의 당파성 때문에 경제 심리가 개선돼도 정치적 지지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신현호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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