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풍미·균형감·가격까지 …'국민와인' 손색없는 신퀀타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신퀀타 블랙 에디션을 든 산 마르자노의 수출 담당 매니저 알렉스 엔드리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와인에 관해 될 수 있으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와인을 만나면 흥분되는 건 감출 수 없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신퀀타(Cinquanta)'가 그런 와인입니다. 다음번 '국민와인'으로 오를 수 있는 자질이 충분했습니다.

매일경제

이탈리아 남부에 위차한 풀리아.


한국에서는 1865와 몬테스 등 칠레 와인이 소위 국민와인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국민와인이 되려면 아무래도 가격이 적정해야 하고 또 그 가격대에서 맛이 좋아야 합니다. 신퀀타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적당한 잔당감과 묵직한 타닌, 복합미까지 일품입니다. 와인의 밸런스도 좋습니다. 파워풀하면서도 스파이시한 피니시까지 2만~3만원대 가격의 와인으로는 풍미가 일품입니다. 한국 음식은 조미료 향이 강해서 섬세한 와인들의 경우 오히려 맛이 살아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퀀타는 한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신퀀타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Puglia) 지역 와인 생산자인 산 마르자노(Cantine San Marzano)가 만들었습니다. 풀리아는 이탈리아 지도의 장화 굽에 해당하는데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토마토, 올리브 오일, 모차렐라 치즈 등이 생산되는 미식의 천국이라고 합니다. 산 마르자노의 수출 담당 매니저인 알렉스 엔드리지는 "풀리아는 한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 관광지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풀리아에서 결혼했고 마돈나도 생일파티를 풀리아에서 열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풀리아는 고급 와인산지라기보다는 '벌크 와인'이 생산되는 상업적 와인산지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와인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산 마르자노는 풀리아에서 프리미엄 수준의 와인 생산을 시도합니다. 또한 토착품종으로 지역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산 마르자노가 만든 신퀀타에 사용된 포도품종은 프리미티보(Primitivo) 50%와 네그로아마로(Negroamaro) 50%입니다. 미국서는 프리미티보를 '진판델'로 부르는데 미국 진판델이 한국시장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매일경제

신퀀타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프리미티보 하면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Primitivo di Manduria)'가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만두리아는 풀리아의 지역 이름입니다. 각 와인산지는 그 지역 특색을 잘 나타내는 포도품종을 이용한 와인을 알리기 위해 '원산지통제명칭'이란 제도를 운영합니다.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가 바로 원산지통제명칭입니다. 쉽게 말해 '횡성 한우' 같은 명칭입니다.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라는 이름을 쓰려면 프리미티보를 85% 이상 넣어야 합니다.

창의적인 와인 생산자들은 비율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 과감히 지역 명칭을 포기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수퍼 투스칸'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 대신, 메를로나 카베르네 소비뇽 등 보르도 포도품종을 사용해 만든 와인이 명성을 얻으면서 '수퍼 투스칸'으로 불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퍼 투스칸'식의 양조법보다는 토착품종 산지오베제를 사용한 이탈리아 와인의 미래가 더 밝다고 주장하는 편인데요. 그 이유는 양조법의 상향 평준화로 과거와 달리 산지오베제 등 토착품종으로도 고급 와인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미티보는 이탈리아 토착품종이기 때문에 수퍼 투스칸의 보르도 품종들과는 살짝 결이 다르지만 원산지통제명칭이란 측면에서 신퀀타는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라는 이름을 쓰지 못합니다. 프리미티보의 비율이 50%로 최소치 85%를 밑돌기 때문입니다. 네그로아마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엔드리지 매니저는 "신퀀타에 들어간 네그로아마로는 농밀한 프리미티보에 '스파이시'한 매력을 더해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리미티보 50%와 프리미티보 85% 이상 와인 중에 어떤 와인이 더 맛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산 마르자노 정도의 와인 생산자라면 프리미티보를 85% 이상 넣은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도 무척 잘 만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매일경제

신퀀타 블랙


풀리아에서도 특히 산 마르자노의 프리미티보가 농축된 맛을 뿜어내는 비결이 있습니다. 다른 와이너리들이 토착 포도나무를 뽑아냈지만 산 마르자노는 지역 전통의 덤불처럼 생긴 '부시 바인(Bush Wine)'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나이가 든 올드 바인은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포도의 농밀함이 더해집니다. 풀리아는 붉은 토양, 테라로사로도 유명합니다. 토양에 철 성분이 많아 산화되면서 붉은색을 띤다고 합니다. 이런 철분 성분의 토양은 파워풀한 레드 와인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줍니다. 신퀀타는 이탈리아어로 숫자 '50'을 의미합니다. 산 마르자노 와이너리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시험적으로 만들었다가 소비자 반응이 좋아 이후 매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신퀀타의 특징 중 하나는 논빈티지(NV) 와인이라는 점입니다. 빈티지는 포도 수확 연도를 의미하는데요. 신퀀타 와인은 여러 해에 걸쳐 수확된 포도를 혼합해 사용합니다. 논빈티지 샴페인과 같은 방식입니다. 와인 레이블의 뒤쪽을 보면 숫자가 나와 있는데 '+6'이면 신퀀타가 처음 나온 해부터 6년 뒤인 2018년에 만들어진 와인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산 마르자노가 앞으로도 일관되게 맛있는 신퀀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퀀타는 오랜 기간 숙성이 필요한 와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따서 바로 마시는 '뽕따' 와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시음한 와인은 디켄팅을 4시간 동안 하면서 맛이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 산 마르자노는 최근 '신퀀타 블랙'을 내놓았습니다. 기존 신퀀타보다 4개월을 추가 숙성시켜 16개월 숙성시킨 것이 차이입니다.

기존 신퀀타와 신퀀타 블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타닌' 같습니다. 블랙의 타닌이 좀 더 강하고 잔당감도 높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리지널 신퀀타의 '산미'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체적인 균형감 측면에서 봤을 때 신퀀타와 신퀀타 블랙은 산미와 타닌을 서로 바꾼 듯합니다. 가격은 블랙이 조금 더 비쌉니다. 일반 신퀀타는 흰색 레이블, 신퀀타 블랙은 검은색 레이블을 사용합니다. 일반 신퀀타는 모든 유통채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