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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타자(他者)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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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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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 자본주의를 숙주로 한 계급주의의 만연, 민주주의의 근본인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핍박, 빈곤과 차별은 지금도 변함없다. 국가에 의해, 이념에 의한 국민의 희생 역시 여전하다. 무능한 정치권력과 부실·부재한 국가정책에 의한 무명의 가슴 아픈 죽음도 많다.

2018년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 4·3 항쟁 70주년 특별전을 마련했다. 20세기 동아시아 제노사이드(Genocide)를 주제로 한 이 전시는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의 상흔을 기억하고, 인권회복과 상생,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제주 4·3을 비롯해 광주 5·18 민주화운동, 하얼빈 731부대의 만행, 난징대학살, 대만 2·28 민중봉기, 베트남 전쟁 등 현대사의 비극을 다양한 미술 언어로 다뤘다.

눈에 띄는 작품은 재중 동포 작가 권오송의 '일식'(Eclipse, 2018)이다. 5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수묵화에는 전염병 확산과 대량 살상 무기를 연구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살육한 일본 731부대의 잔인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4·3 항쟁이 발생한 제주도 조천 북촌을 그린 강요배의 작품 '불인'(不仁, 2017)과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헬리콥터를 영상으로 담은 딘큐레((Dinh Q. Le)의 '농부와 헬리콥터'(2006)에는 국가폭력을 경험한 자들의 상처가 새겨졌다.

2019년 크리스토프 뷔헬(Christoph Buchel)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녹슨 선박인 '바르카 노스트라'(Barca nostra, 2019)를 끌어다 놨다. 이탈리아어로 '우리의 배'를 뜻하는 이 어선은 2015년 5월 천여 명에 가까운 난민을 태운 채 리비아를 떠나 지중해를 건너던 중 침몰했다. 뷔헬의 작품은 떠들썩한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시대의 참상을 돌아보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일종의 추모비였다.

이 밖에도 포토몽타주,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조형적 방법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꾸준히 표현해온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를 비롯해 끝없이 되풀이되는 파시즘을 언급해온 피오트르 우클란스키(Piotr Uklanski) 등, 타락한 공동체와 국가를 둘러싼 '악(惡)'의 잔재들을 특유의 문법으로 적시해온 작가들은 적지 않다.

사진을 통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고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낸 골딘(Nan Goldin)이나, 인종이나 계급, 성별을 뛰어넘는 인류 공통의 평등에 초점을 맞춘 작업으로 유명한 닉 케이브(Nick Cave) 등이 그렇다.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 제시 트레비뇨(Jesse Trevino), 티파니 정(Tiffany Chung), 마크 브레드포드(Mark Bradford),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 조이스 J. 스콧(Joyce J. Scott) 등도 동일한 범주에 든다.

국가와 성별, 피부색은 다르지만 이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인간이 만든 재앙과 폭력적인 역사를 현재로 소환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는 점에선 결이 같다. 폭력과 불의, 억압과 부조리 같은 문제들에 대해 성찰을 유발하는 작업이라는 것도 공통분모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예술의 사회적 실천 방식은 억압과 폭력의 현실에 대한 서사적 발언에 있다. 이는 예술의 역할에 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인간이 자행해온 야만성을 고발하며 질문하는 존재로서의 예술가의 위치와도 맞닿는다.

미술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이 넘쳐나는 작금이지만, '장사'를 예술로 착각하는 세상이지만 아직 소외된 자, 힘없는 자, 방황하는 자들의 곁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참다운 예술가들이 있다.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채 남겨진 자로서 슬픔과 비애로 점철된 세상을 증언하며 예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그들이 있기에 우린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고 광기에 쓰러진 이들을 추념할 수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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