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재정건전성 이유로 지원 난색
"트라우마 치료에 기한 제한이라니..."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 사고 당시의 달력이 걸려 있다. 안산=신용주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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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지 꼭 10년이 흘렀지만 생존자와 유족,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진 상흔은 여전하다. 하지만 16일부터 세월호 참사 피해자 의료 지원이 끊긴다. '참사 10년이 지났다'는 게 이유인데, 국가가 참사 이후의 치유 문제까지 '비용·편익' 논리로 재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가에 따르면, '4·16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상 의료 지원은 이날로 끝난다. 시행령 19조에 의료지원금 지급 기간이 '2024년 4월 15일까지 발생한 비용으로 한정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의료지원금 지급 기한이 '10년'으로 정해진 이유는 따로 없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시행령을 만들면서 의료비용을 1년만 보장하도록 했다. 2015년 3월 29일 시행령 효력이 발생한 이후 2016년 3월 28일까지 발생한 비용으로 한정해 의료비를 지원했는데, 유가족 요청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의료지원금 지급이 10년으로 연장됐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방문한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안산=신용주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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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고치기 위한 법이 발의돼 있지만, 21대 국회 내내 논의가 미뤄지다 자동 폐기 직전에 있다. 지난해 3월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한 제한 없이 참사 피해자의 의료비용을 지원하고, 구조 활동 등으로 부상을 입은 잠수사도 참사 피해자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세월호피해자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형평성'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기획재정부는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제주 4·3사건,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의 경우 관련 피해자 의료지원비는 일시금으로 지원한 바가 있다"며 신중 의견을 표했다. 주무 부처 중 하나인 해양수산부의 강도형 장관은 2월 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0년 동안 약 4,000명이 수혜를 입은 바 있고, 국가유공자 유가족 의료비 지원제도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추가 지원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재난으로 생긴 트라우마 치료에 기한을 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트라우마, 사회적 치유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 그 자체"라며 "트라우마는 10년이 지나 갑자기 발현될 수도 있는 만큼 피해자들이 정말 그 괴로움에서 완전히 회복됐다고 스스로 느낄 때까지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해서 당한 게 아닌 불행한 일,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사회가 안전망을 제공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회와 국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 9·11테러로 인해 신체적·심리적 문제가 생겼음이 입증되기만 하면 기한을 두지 않고 의료비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9·11 테러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원 비석에도 '시간의 흐름 속에 단 한순간도 당신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세종=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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