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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주의 위협, 시민 정치교육으로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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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크리스티안 브라켈 독일 녹색당 하인리히 뵐 재단 동아시아 지역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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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선 연방의회에 의석을 확보한 정당들이 정치재단을 운영한다. 1925년 사회민주당(SPD)이 최초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현재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기독교민주연합·CDU), 한스 자이델 재단(기독교사회연합·CSU),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좌파당) 등 모두 7개의 정치재단이 있다. 정치재단은 정당과 연계돼 있지만, 법률적·실질적으로 독립된 기구다. 시민 정치교육, 학자금 지원, 연구와 자문, 국제 개발협력 등이 핵심 기능이다. 재단의 이념과 활동이 민주주의 기본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한, 연방정부가 운영 비용의 거의 전부를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지난해 독일 정부가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뺀 6개 정당 정치재단에 준 지원금 합산액은 약 6억6000만유로(1조원에 가까운 약 9691억원)였다.



독일 녹색당은 1997년 하인리히 뵐 재단을 창설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47석(득표율 6.7%)을 확보하며 처음으로 사회민주당의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2021년 9월 총선에서 녹색당은 역대 최대 득표율(14.8%)로 일약 3위에 올라서며, 또다시 사회민주당의 연정 파트너가 됐다. 당 공동대표 로베르트 하베크(부총리)와 아날레나 베어보크(외교장관)를 비롯해 소속 연방의원 5명이 내각에서 장관직을 맡고 있다. 하인리히 뵐 재단은 현재 세계 36개국에 지역 또는 국가 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최근 중국 홍콩에 있던 동아시아 사무소를 한국으로 옮기고 머잖아 공식 업무를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 1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크리스티안 브라켈 재단 동아시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나치즘 벗어난 민주시민 위해





―독일 정당들이 정치재단을 만든 이유는?



“현재 독일 정치 시스템의 많은 부분은 최악의 독재 체제였던 제3제국(나치 독일)에 대한 공포라는 배경에서 봐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서독)은 여리고 불안정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나치 정권에 투표했던 대중들에게 나치가 저지른 범죄들을 어떻게 알리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교육해 완전한 민주시민이 되게 할 수 있을지가 화두였다. 민주주의는 먼저 대중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치즘 이후 독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여러 시민교육 단체가 생겨났다. 독일 정치재단들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정치재단 설립이 나치 시대 교훈에서 비롯했다는 건가?



“제3제국은 독일의 가장 어두운 역사다. 홀로코스트는 문명과 가치의 붕괴였다. 나치즘의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논의 과정은 매우 길었는데, 2차 대전 종전 직후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다.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발전은 1960년대 학생운동 이후 1970~80년대에야 본격화했다. 녹색당도 그때(1979년) 창설됐다. 어떻게 하면 독일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이웃 나라를 위협하지 않으며, 2차 대전 중 저지른 범죄가 되풀이되는 걸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시민 정치교육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독일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극우 정당이 부상하고 가짜뉴스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권위주의 정권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이런 시기에 민주주의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돕는 것이 시민교육이다. 민주주의가 무결한 제도는 아닐지라도 더 나은 제도임을 시민들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이 사실에 기반을 둔 정보와 정치적 선동을 구별하기 위해서도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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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이 동아시아 지역 사무소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긴 이유는?



“2019년 홍콩에 사무소를 열었는데 곧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후 홍콩의 정치 상황 변화로 시민단체의 활동 공간이 빠르게 위축됐다. 다른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한국으로 결정했다. 한국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매우 성공적으로 탈바꿈했고,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활발한 시민사회가 존재한다는 점, 국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역대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단의 역할이 녹색당의 정책 개발, 나아가 독일 연방정부의 정책에 반영되는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당의 정책 결정 과정을 참관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정치인과 시민사회를 연결한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 포기는 녹색당이 수십년간 주장했던 중요한 정책이다. 녹색당은 1980년대 평화·반핵·환경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벌였다. 반핵 정책은 오랫동안 ‘그린 디엔에이(DNA)’의 최고 순위였다. 1999년 녹색당이 처음 사민당 연정에 참여했을 때 탈원전 계획을 추진했지만, 다음 총선에서 바뀐 정권이 원전을 되살렸다. 그런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터지자 당시 보수당 정권인 기민·기사 연합이 탈원전 정책을 재도입했다. 그린 에너지, 성 평등, 반전 운동, 동성결혼 합법화 등 녹색당의 여러 진보적인 의제들이 결과적으로 독일 사회의 주류 의견으로 수용됐다. 뵐 재단은 이를 후방에서 지원했다.”



―시민 정치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다양한 콘퍼런스와 워크숍을 열고 교육 출판물을 보급한다. 각급 학교의 초청을 받아 기후 위기, 인권 등 특정 주제를 교육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정당을 홍보할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견해를 제공하기 위해, 이번주에 녹색당이 강연했다면 다음번엔 보수 정당의 정치재단이 교육을 한다.”







“2차 대전 때 뭐 했냐”고 물었다





―많은 나라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 혐오가 심하고 그런 태도를 ‘쿨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일부 기득권 정치인들은 그걸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정치는 재미없다고 여긴다. 젊은이들은 특히 그렇다. 변화를 원하는데 정당이나 정치 활동은 싫어한다. 나도 녹색당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웃음) 그런데 당신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중요한 결정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있다.”



―독일 시민이 녹색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1980년대 이후 독일 젊은층은 환경운동에 활발히 참여했고, 오늘날 청소년과 청년층은 기후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다. 바로 그들에게 녹색당은 ‘신선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특히 도시 거주자, 여성, 교육 수준이 높고 진보적·생태적 가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녹색당을 선호한다. 녹색당은 2021년 총선에서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 경제 이슈에 주목했다. 탈탄소 그린 뉴딜 정책을 내세우며 탄소 중립이 일자리 창출과 전기차 산업 등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한가지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나치즘 같은) 위기를 피하려 연정을 구성하도록 고안됐다. 지난 16년간 한명의 총리(앙겔라 메르켈)가 이끌어온 독일이 많이 정체되었다고 느끼던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젊고 신선한 의제를 제시하는 녹색당에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녹색당의 득표율은 14.8%에 지나지 않는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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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녹색당 당원들이 2021년 9월 연방의회 총선에서 창당 이래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제3당을 차지한 선거 결과에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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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90여개국에 녹색당이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 소수정당에 머물고 있다. 왜 그럴까?



“독일의 경우 소수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이 할당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한다. 반면 한국은 소수정당에 다소 불리한 양당 중심의 선거제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선거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과 독일의 역사를 보자. 두 국가는 전후 분단된 냉전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 지원 아래 경제발전을 이뤘다. 이후 성장한 독일의 전후 세대는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들에게 ‘당신은 2차 대전 당시 무엇을 했느냐 혹은 하지 않았느냐’ 물었고,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데 주저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과거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여성의 지위에 관한 논의 등 기존의 규범을 변화시키는 논의가 확산하며 녹색당의 역할도 확대됐다. 한국도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이뤘고, 경제도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했다. 이제 한국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독일 정치재단들이 자국 정부의 재원으로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독일 내 활동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제 무역, 환경, 기후변화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 시민사회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치재단은 이러한 협력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대화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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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당도 목소리 낼 수 있어야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갈수록 굳어지는 양당 체제가 민의를 왜곡하고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며, 엘리트 부유층 집단이 정치적 대표성을 독과점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양당 정치는 다양성을 약화한다. 독일은 대표적인 다당제 국가인데 최근 양당 정치가 강화되고 있어 문제다. 작은 정당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독일은 나치즘 일당 독재를 겪은 뒤로 특정 정당에 단독 과반의 몰표를 주지 않는다. 선거에서 제1당도 다른 정당과 연정을 꾸려야 하므로 소수정당과 연대할 실질적 필요가 존재한다. 기득권 집단을 견제하고 정치적 균형을 만들 수 있는 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분열·적대가 아닌 통합·타협의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두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정치에서 민주주의 규칙을 수용하는 공통분모다. 정치적 경쟁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규칙은 지켜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유권자들에게 정치 시스템이 불완전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시민의 참여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제정된 독일 기본법의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사회 구성원 간에 공유돼야 한다.”



―재단은 한국에서 어떤 활동에 초점을 맞출 계획인가?



“우선 외교 정책이다. 긴요한 문제인데다 한국이 갈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그다음은 에너지와 기후 위기, 민주주의와 인권, 기술과 디지털 정책 등이 중요한 4대 분야다. 각 영역에서 한국-독일, 한국-유럽, 한국과 아시아 다른 국가 간 연대를 다지려 한다. 출판물 발간, 시민사회와 정치의 연결과 재정 지원, 콘퍼런스와 워크숍 개최, 한-독 양국 간 교류, 역내 다양한 행위자들의 정책 대화 촉진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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