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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교사 텀블러에 정액 테러한 남학생, 성범죄 아닌 재물손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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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수사와 재판 실무에 대해서도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조선일보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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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경남 사천의 한 고등학교, 젊은 여교사는 남학생 기숙사에서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텀블러 위치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여교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손댄 것이 분명했다.

텀블러 속은 더 이상했다. 처음에는 손 세정제인가 싶었다. 하얗고 뿌연 액체 덩어리가 있었다. 정액이었다.

여교사는 기간제 교사였고, 최근 가해자를 고소했다. 산업재해로 처리해 준다던 교장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내 지갑에서 (텀블러값) 5만원 꺼내주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해자가 성범죄로 처벌받을 수는 없는 걸까. 정말 텀블러값만 물어주면 끝인 걸까. 피해자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여교사 텀블러에 정액 테러 후 딱 잡아뗀 남학생

Q. 여교사 텀블러에 정액을 넣은 범인은 잡혔나요?

A. 남학생 A가 음란물을 보다가 여교사가 자리를 비우자 텀블러를 가지고 나가서 저지른 범행이었습니다. 자습 장소는 남학생 기숙사였기 때문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여교사가 다른 건물 화장실에 가느라 7분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A가 이런 짓을 벌였습니다.

Q. 해당 남학생은 어떻게 잡혔나요?

A. 당초 A는 발뺌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범인이 누구인지 침묵했고요. 그래서 CCTV를 살펴봅니다. A가 텀블러를 가지고 나가서 세탁실, 정수기를 거쳤다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A는 자백했습니다.

조선일보

남학생에게 체액 테러를 당한 피해 여교사가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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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받은 여교사, 사과도 못 받자 고소

Q. 피해 여교사는 바로 남학생을 고소한 건가요?

A. 피해자는 충격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인 A의 장래를 생각해 큰 문제를 삼지 않고 학교 측에 산업재해 처리만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A와 그 부모는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학교와 교육청도 산업재해 처리에 소극적이었다고 피해자는 주장합니다.

여교사와 학교 측의 계약기간은 지난 2월 종료됐습니다. 피해자 퇴출로 느껴졌을 겁니다.

결국 피해자는 A를 형사 고소하고, 국민신문고 민원을 통해 학교와 교육청의 사후 조치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Q. 학교는 남학생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나요?

A. 학교도 나름의 조치를 했습니다. 피해자와 A를 분리했고, A는 특별교육 이수 처분을 받고 2주간 등교가 제한됐습니다. 당시 피해자가 퇴학이나 강제전학 등 엄한 처벌까지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남학생에게 체액 테러를 당한 피해 여교사가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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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를 성범죄로 처벌 못 하는 현실…국회는 뭐하나

Q. 텀블러에 정액 테러라니, 가해자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는 없나요?

A. 성범죄가 아니라, 재물손괴죄로 처벌합니다.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 물건의 효용을 침해하는 범죄입니다. 예컨대, 남의 물건을 부수면 재물손괴죄가 됩니다.

A가 텀블러를 부순 것은 아니지만, 피해 여교사는 더 이상 이 텀블러로 음료를 먹을 수 없습니다. 찝찝하니까요. A가 정액을 넣는 바람에 이 텀블러의 효용이 상실된 겁니다. 따라서, 재물손괴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A는 ‘젊은 여성’ 교사의 텀블러이기 때문에, 자기 정액을 넣었을 겁니다. 텀블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게 아니라, 피해 여교사에게 성폭력을 가한 겁니다. 성범죄로 처벌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은 성범죄인데, 처벌 규정이 없어서 재물손괴로 처벌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Q. 이렇게 성적으로 혐오스럽고 불쾌한 일을 당해도 성범죄가 아니라고요?

A. 법치국가에서 ‘범죄’가 되려면 범죄로 처벌한다는 ‘법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형법정주의’입니다.

그런데, 현행법에 여성의 소유물에 대한 성적 행위를 성범죄로 처벌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범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서울시 공무원이 여성 동료 텀블러에 정액을 넣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도 성범죄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Q. 처벌 규정이 없어서 성범죄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화날 일인데요?

A. 피해 여성의 ‘신체’에 직접 정액을 뿌렸다면, 현재도 성범죄(강제추행)로 처벌합니다. 다만, 피해 여성의 ‘물건’에 정액을 뿌리는 것을 성범죄로 처벌하는 규정이 없는 겁니다.

본질적으로는 성범죄로 처벌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이런 취지의 법률안이 발의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총선도 끝났으니, 국회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성범죄 처벌 못 하면, 손해배상도 텀블러값으로 끝?

Q. 재물손괴죄로만 처벌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도 텀블러값 5만원만 변상받을 수 있는 건가요?

A. 현행법상 성범죄가 아닐 뿐, 성희롱에는 해당합니다. 피해 여교사가 심각한 성적 수치심, 혐오감, 불쾌감을 느꼈을 테니까요. 이에 따라 성희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교권과 여성 인권 침해 정도를 감안하면,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해야 함이 상당합니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 공무원 정액 테러 사건에서, 가해 공무원은 해임됐습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받았지만,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법원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만큼 엄중한 잘못인 겁니다.

무엇보다, 피해 여교사에 대한 학교와 교육청의 배려가 아쉽습니다. 또한 A와 부모가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했다면 고소까지 하는 일이 생겼을까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크고, 살면서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미성년자라면 더욱 그렇지요. 현명한 수습이 관건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모쪼록 여교사의 상처가 회복되고 남학생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조선일보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DB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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