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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전처 살인 혐의’ 무죄 O.J. 심슨… ‘하늘 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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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각종 과학적 증거에도 무죄… 배심원제 결함 보여줬던 NFL 스타

조선일보

1995년 10월 3일 미 로스앤젤레스의 한 법정에서 심슨에 대한 무죄 평결이 나오자 피해자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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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스포츠 스타에서 전처를 잔인하게 죽인 살인 용의자로 전락했으나, 석연찮은 무죄판결로 미국 사회에 격렬한 논란과 분열을 일으켰던 전 프로풋볼 선수 O.J. 심슨(77)이 11일 전립선암 투병 중 사망했다. 그의 가족은 이날 X(옛 트위터)에 “심슨이 자녀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마와의 싸움을 끝냈다”며 “사후 정리 기간에 유족들의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고 밝혔다. 미 주요 언론들은 논란으로 점철된 그의 삶을 집중 조명하면서 ‘인종과 형사 사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월스트리트저널), ‘잔혹한 전처 살해 무죄 판결로 스포츠 스타 명성까지 지워진 인물’(CNN) 등의 표현으로 그의 죽음을 보는 복잡한 시선을 드러냈다.

그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숱하게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사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출발은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1969년 미 프로풋볼 신인 선발 1순위로 데뷔해 4년 뒤 시즌 MVP를 거머쥐며 당대 최고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시절 “돈과 명예는 일순간 없어질 수 있어도 인격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말로 흑인 청년들의 본보기로 추앙받았다. 은퇴 뒤에도 배우와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인기와 명예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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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전직 미 프로풋볼 선수 O.J. 심슨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과 유사한 장갑을 착용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11일 전립선암 투병 중 77세로 사망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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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4년 벌어진 전처 살해 사건은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6월 13일 새벽 캘리포니아주 브렌트우드 주택가에서 심슨의 백인 전처인 니콜 브라운과 남성 친구 론 골드먼이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심슨의 집에서 피 묻은 장갑 등을 발견해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그는 “나는 니콜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편지를 남긴 뒤 도주했다. 심슨의 흰색 SUV 차량과 경찰이 LA 고속도로에서 벌이는 추격전이 미 전역에 생중계돼 약 9500만명이 시청했다. LA 검찰은 6일간 조사 끝에 심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왼쪽 장갑에서 심슨의 DNA가 검출됐고, 심슨의 양말에서 브라운의 DNA가 나오는 등 증거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흑인 스포츠 스타가 백인 전처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며 뉴스가 쏟아졌다. 공판 기일 때마다 방송사 카메라들이 진을 치고 선정성 보도를 쏟아내면서 ‘지상 최대의 리얼리티쇼’처럼 됐다. 심슨은 그동안 모은 재력을 바탕으로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정확한 액수가 공개된 적은 없지만 500만달러(약 69억원) 이상의 수임료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다. 변호인단은 미국의 대표적 흑백 인종 갈등 사건인 1992년 LA 폭동의 상흔이 여전하다는 점을 활용했다. 사건을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경찰들이 흑인 용의자를 겨냥해 조작했다는 구도로 몰고 갔다. 무작위로 선발된 배심원단 12명 중 9명이 흑인이었다. 372일간의 재판이 끝난 뒤 1995년 10월 3일 배심원들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대부분 심슨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사회에 던지는 충격이 컸다. 이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서 심슨은 감옥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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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J. 심슨(왼쪽)과 전처 니콜 브라운의 1993년 모습. 심슨은 미국 베벌리힐스의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18세의 그녀를 만난 후 첫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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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언론은 이 판결을 미국 사법사의 흑역사로 본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심슨이 범인이라는 상당한 과학적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내리면서 사법 재판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했다. “패배한 것은 검사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사법제도”라고 외친 브라운 아버지의 절규는 지금도 미국 사법 체계의 허점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종종 언급된다.

심슨의 혐의가 법원에서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니다. 브라운의 부모는 끝까지 심슨이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민사 법원에서는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져 심슨에게 배상금 3350만달러(약 462억원)를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한 사건을 두고 형사재판에서는 무죄였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유죄로 보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재판이 미국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분열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도 심슨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많은 미국인에게 심슨 사건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깊은 분열을 드러낸 사건으로도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NYT는 “심슨의 재판은 인종 간 격차와 법률 시스템의 결함을 폭로하는 사회 드라마였다”고 했다.

심슨은 전처 살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뒤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그는 가정(假定)의 형식으로 전처 살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담은 책 ‘만일 내가 그랬다면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났나’를 출판하려고 했지만 거센 여론의 역풍과 유족 반발에 취소됐고, 제목이 ‘만일 내가 그랬다면:살인자의 고백’으로 변경돼 출판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강도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돼 2008년 징역 33년을 선고받고 9년 복역 뒤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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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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