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올해 시상식은 ‘젊은 작가’ 졸업하는 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4년 연속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김멜라

“‘젊은 작가’ 수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함이 큽니다.” 등단 10년 차까지 주는 상을 알차게 받고 졸업한 작가가 있다. 한국 문단이 주목하는 소설가 김멜라(41)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계기로 만났다.

김멜라는 2021년 ‘나뭇잎이 마르고’, 2022년 ‘저녁놀’, 작년 ‘제 꿈 꾸세요’ 등 단편으로 이미 3년 연속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등단 10년째인 올해는 단편 ‘이응이응’으로 대상을 탔다. 그는 “파래를 무치다 물기 묻은 손으로 수상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끊고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파래를 무쳐 먹었다”고 했다. “세 번이나 받았는데 또 받을 줄은 몰랐다”는 것. 12일 시상식을 앞둔 그는 “마치 졸업식 가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이응이응’은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기계 ‘이응’이 발명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도서관·공원·목욕탕·기숙사 등 곳곳에 이응이 설치됐다. 이응 안으로 들어가 ‘컬러볼’을 조작해 자신이 원하는 설정으로 쾌락을 누리면 된다. ‘어떨 땐 요리 레시피 같아서 듣고 있으면 이응 얘기인지 파스타 만드는 방법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끼얹고 곁들이고 버무리고….’ 그만큼 성(性)에 열려 있는 성숙한 사회를 상상했다. 김멜라는 “성이란 것이 세상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폭력을 난무하게 한다. 그 양면을 생각하다 떠올린 설정”이라고 했다.

손쉽게 욕구 해소가 가능해졌지만, 할머니와 강아지 ‘보리차차’를 잃은 ‘나’는 신체 접촉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 나는 이응 속에서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세수를 시켜주던 할머니의 늙은 손과 물기를 털어내던 촉촉한 강아지의 감촉을 떠올린다. ‘지금 나를 가득 채우는 이 느낌을 표현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더 깊은 품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성이란, 단지 성애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정서들로 얽혀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김멜라 소설 세계의 확장이자 도약으로 읽힌다. 그는 “이 세계 안에서 타인과 만지고 만져지는 관계가 되고 싶은 열망,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멜라 소설집과 에세이집. 2020년 '적어도 두 번', 2022년 '제 꿈 꾸세요', 작년에는 '멜라지는 마음'을 냈다. /자음과모음·문학동네·현대문학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등단하고 첫 소설집 ‘적어도 두 번’(자음과모음)을 내기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전업으로 글을 쓰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김멜라’라고 치면 축구 선수 ‘라멜라’만 나왔던 시절. 당시 그는 6개월 일하고, 6개월 쓰는 삶을 살았다. “서울역에서 김밥을 말고, 돈가스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일 주스 노점에서 과일을 갈고…. 하지만 글쓰기와 삶을 병행하는 방법을 찾으며 힘을 키웠던 시기예요.”

본명은 김은영이다. 작년 말 에세이집 ‘멜라지는 마음’(현대문학)을 내면서 그간 비밀에 부쳐온 필명의 히스토리를 공개했다. 오랜 연인이 지어준 이름은 제주 사투리 ‘멜르다(찌그러지게 하다)’에서 왔다. 자신의 뺨을 연인의 뺨에 멜르다가 떠올렸다. 젤리처럼 몽글거리지만 마냥 달지만은 않은, 찌그러진 채 동동 떠다니는 비눗방울 같은 김멜라 소설은 ‘사랑’에서 시작됐다. “뭉클한 마음에 끌린다”는 그는 “충분히 사랑하면서 더 나은 사랑의 모습을 꿈꾸기 때문에 쓴다”고 했다. “내가 경험한 사랑, 나를 이루는 이 마음들을 씁니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