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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일회용품 사용과 퇴출

[종이도 자원] “재활용 주도 골판지 산업 무너지면 쓰레기 대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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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식목일 하루 전인 4일은 ‘종이 안 쓰는 날’이다. 2002년 시민단체 녹색연합이 하루만이라도 종이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 그러나 제지업계는 종이는 멀쩡한 나무를 훼손해 만들지 않고 도리어 순환 자원으로 자연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한다. 여러 번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자원의 의미와 플라스틱, 비닐 대체재로서 종이의 쓰임새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폐지는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폐기물입니다. 국내에서 연간 1000만톤(t) 이상 발생하는데 이 중 800만~900만t은 제지 업체, 특히 골판지 업체가 사들입니다. 이 말은 국내 골판지 산업이 무너지면 폐지 수거가 막히고 종이의 순환 체계가 무너진다는 겁니다.”


홍수열 한국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중국과 동남아의 골판지 생산량이 늘어나 국내 시장 침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내 골판지 시장의 경쟁력을 키울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홍 소장은 폐기물 전문 환경공학자로 20년 넘게 쓰레기에 관한 이론과 제도, 정책, 현장을 공부해 ‘쓰레기 박사’로 불린다. 그는 제지 산업을 ‘폐지 순환 체계의 핵심’이라고 평가한다. 종이가 자원으로써 더 잘 순환되려면 제지회사가 더 많은 폐지를 수거해 제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 플라스틱과 목재 시장처럼 제지 시장도 중국산과 동남아산 제품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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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만난 홍수열 한국자원순환연구소 소장. 그는 "국내 폐지 순환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건 골판지 산업"이라며 "골판지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쓰레기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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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소장은 “그간 국내 제지회사들은 별다른 정부 지원 없이 폐지 순환에 일조해 왔다. 그런데 과거 10년으로 미래 10년을 판단하면 안 된다”며 “종이 순환 체계는 당장이라도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경각심을 갖고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홍 소장과의 일문일답.

―종이 재활용은 왜 중요한가.

“재활용이 무너지면 쓰레기 대란이 온다. 2018년 폐비닐 수거 대란도 폐지에서 시작됐다. 폐기물 수거 업체들이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가장 큰 유인은 폐지와 의류다. 수익성이 가장 좋아서 그렇다. 다른 재활용 쓰레기는 끼워 파는 것에 가깝다.

그러다 2018년에 중국이 폐지 수입을 중단하면서 공급이 과잉돼 폐짓값이 크게 내렸다. 업체들은 아파트와 동결된 가격으로 연간 계약을 하는데 파는 값은 떨어지니 수익성이 나빠졌다. 그 결과 ‘돈 안 되는 쓰레기(비닐 등)는 안 가져가겠다’고 한 것이 수거 대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만큼 폐지는 재활용 체계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이렇게 수거된 폐지는 제지 업체들이 사들인다.”

―폐지 순환 체계에서 제지 업체의 역할이 크겠다.

“폐지 1000만t 중 700만t 이상이 골판지 제조 업체로 가니, 폐지 순환 인프라는 골판지 업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이들 업체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지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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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포장 업체인 아진P&P 대구공장에 폐지 더미가 쌓여있다. 골판지는 100% 폐지를 재활용해 만들어진다.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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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그렇게 판단하나.

“우선 중국과 동남아의 골판지 생산량이 늘고 있다. 골판지 원지는 국내 종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제지 업계 주력 품목이다. 중국과 동남아는 우리나라로부터 골판지 원지를 수입했는데, 이젠 직접 생산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로 수입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화장지의 경우 벌써 중국산, 동남아시아산 저가 제품이 국내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수입 물량은 2013년 2만8110t에서 2023년 15만4591t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목재가 풍부한 나라에서 펄프뿐만 아니라 종이까지 직접 만들어 수출한다면 국내 업체는 맥없이 무너질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원목을 수입해 가구로 가공하는 산업이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사양길을 걷고 있다. 원목 수출만 하던 동남아시아가 목재 가공으로 산업을 넓혀서 그렇다. 일본의 경우 목재 가공용 접착제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해서 자국의 목재산업을 보호했다.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했다. 제지 산업도 이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국내 제지산업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국내 폐지가 사용된 종이 제품이 외국의 펄프 원료 제품보다 우선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원료(폐지) 조달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지의 품질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폐지의 품질은 어떻게 개선하나.

“유통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먼저 배출 단계에서는 부가가치에 따라 폐지를 인쇄용지, 박스, 코팅지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 그다음엔 폐지가 오염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버려진 폐지는 눈과 비에 젖기도 하고 음식물, 테이프 등 이물질이 많이 묻어있는데, 이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배출, 수집 단계에서 이런 노력을 했으면 제지 업체는 이에 합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폐지를 깨끗하게 수거하는 업체는 보상을 받고 편법을 쓰는 업체는 퇴출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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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박스 제조 공장으로 입고되는 골판지 원지가 트럭에 실려 있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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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필요한 대책으로는 무엇이 있나.

“탈(脫) 플라스틱과 종이 사용 확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제지 산업이 큰 산업이 아니니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적인 산업 정책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환경부도 ‘종이는 알아서 재활용이 잘 된다’며 방치한다. 환경 정책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 안 된다. 환경 보호는 필연적으로 비용과 불편을 일으킨다.”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가야 하나.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용도로 종이의 활용성이 높아져야 한다. 정부는 ‘탈 플라스틱’을 말하지만 아직은 여러 정책이 플라스틱 재활용에 치중해 있다. 사용량 자체를 줄이려면 종이로 플라스틱을 대체해야 한다. 현재 종이 병도 개발되고 있고, 각종 포장 비닐도 종이로 대체되고 있다.

다만 이때 종이를 만드는 원료 조달이 생태적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순환림을 조성해 펄프를 조달하는 방식이 가장 기본적이고 폐지 순환이 좋아져야 한다. 폐지도 무한히 재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재활용을 거듭할수록 섬유조직이 짧아진다. 폐지가 더 양질로 유통돼야 한다.

식품을 재활용해 종이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종이는 나무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탕수수 부산물과 귤 껍질, 오렌지 껍질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 주스 가공공장에서 나오는 껍질, 농사지으면서 나오는 농업 부산물 등을 한데 모아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수집해 원료로 조달하는 체계를 만들고, 제지 업체들은 기술을 개발하고, 정부는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은영 기자(eun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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