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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N번방' 피해자들의 변호사 "법이 하지 말란 것 빼고 다 합니다" [베테랑의 한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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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업 [베테랑의 한끗] <1>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1호' 신진희

편집자주

베.테.랑.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무엇이 베테랑을 만들까요? 매일같이 사용하는 도구, 공들여온 시간, 오랫동안 지켜온 루틴이 그의 뒤에 있습니다. 차이는 그 ‘한 끗’에서 결판나지요. 베테랑을 완성시킨 그 한 끗의 디테일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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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신진희씨를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만났다. 그는 11년 동안 수천 명의 피해자를 변론했다. '소라넷 사건'부터 'N번방 사건'까지,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 뒤엔 그가 있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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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싶어요, 남편과.”

개업 변호사 1년 차 때였다. 청각장애인 여성이 그가 무료로 상담하던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처음엔 흔하디흔한 이혼 상담일 줄 알았다. 듣다 보니, 그렇지 않았다. 여성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현재 남편. 그러니까 그 여성은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와 결혼한 거였다.

“변호사를 하면서 처음이었어요, 피해자를 실제로 마주한 건. 국선 일을 받아서 할 때도, 제가 대리하는 쪽은 늘 피고인이었거든요. 그런데 가정법률상담소에서 무료 상담 봉사를 하면서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됐죠. 이혼하고 싶다고 찾아온 여성들 대부분이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였어요. 자녀들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요. 큰 충격을 받았죠.”

충격은 곧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졌다. 가정폭력 관련법을 닥치는 대로 파헤쳤다. 그러던 중 누군가 그 앞에 운명의 융단을 깔아주듯, 기회가 왔다. 2013년, 법무부가 최초로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 것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 이후 13년, 현재까지 그는 3,694명의 피해자를 변호했다. 대한민국 1호 피해자 전담 국선 변호사 신진희(54·사법연수원 40기)씨다.

사실 이름 석 자보다 담당했던 사건으로 더 유명하다. N번방 성 착취 사건(조주빈 사건),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신도 성폭행 사건, 예술계 성폭력 사건, 음란물 유포 사이트 소라넷 사건… 10년 동안 뉴스를 점령했던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 뒤에 그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는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사법고시 문턱을 넘었다. 그 전의 직업은 과외 교사. 20년간 그의 밥벌이였다. ‘중년의 초짜 변호사’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피해자 변호’에서 찾았다. 그가 뒤늦게 법을 배우고자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법은 필요한 곳에 쓰여 세상을 고칠 수 있는 힘을 발휘하잖아요. 그게 좋았거든요.” 재미도 적성도 보상도 아닌 ‘책임’, 이것이 그가 가진 동기였다.

어떤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모두가 ‘베테랑(vétéran)’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베테랑을 만드는 한 끗의 차이는 작은 곳에 있다. 매일 쓰는 도구, 매일 보내온 시간, 오래 지속해온 루틴… 그 반복에 한 끗의 비밀이 있을 테다.

베테랑의 한 끗을 찾는 이 여정의 첫 번째 주인공, 피해자가 삶을 재건하도록 돕는 변호사, 신진희 베테랑의 하루를 지난 5일 따라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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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도구 : 내 손안에 ‘7.3인치’ 만능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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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동차가 없다. 밑창 두꺼운 운동화를 신고 매일 서울 전역을 '뚜벅이'로 누빈다. 매일 메고 다니는 낡은 쇼퍼백은 가벼우면서도 수납력이 좋다. 기동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차림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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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그는 서초경찰서 방향에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잰걸음으로 법원에 들어선 그는, 어깨에 낡은 쇼퍼백을 메고 있었다. 딱 봐도 손때 묻은 가방. 그런데 가방끈만 새것이다. “하도 갖고 다녔더니 뚝 끊겨 어쩔 수 없이 그 부분만 바꿔 달았어요.” 올해로 8년째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이다.

그 속에 든 물건도 가방 못지않게 나이가 지긋하다. 인감도장이 든 작은 가죽 주머니, 그가 소속된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받은 USB, 뒷면에 흘겨 쓴 글씨들이 어지럽게 적힌 이면지 뭉치, 행사 때마다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볼펜 몇 자루… 소지품을 꺼내 보이는 그가 민망함에 혼잣말을 한다. “아이고, 도구라고 꺼내놓은 게 이렇게 볼품이 없어서 어쩌나.(웃음)” 무슨 물건이든 수명이 다한 듯해도 쉽게 보내주지 않고, 기워 쓰고 덧대 쓰는 게 그의 오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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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희 변호사가 사무실 책상 위에 가방 속 소지품들을 꺼내놨다. 모두 그와 오랜 세월 함께해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그중 새것이라곤 휴대폰 정도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동작구 서울시보라매병원 1층에 있다. 그가 변호하는 피해자들의 편리를 고려해 정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통합 지원하는 서울 남부 해바라기 센터가 이 병원 2층에 있어서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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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이 있었으니. 낡은 것들 사이에서 홀로 번쩍거리는 신상, 휴대폰이었다. 책처럼 좌우 양면으로 펼쳐지는 폴더블 모델, 한꺼번에 최대 3개의 앱을 동시에 띄워 놓고 작업할 수 있다고 광고했던 바로 그 신상폰이다.

-이게 베테랑의 도구인가요.

“너무 뻔하죠? 휴대폰 없이 하루 이상 버틸 수 있는 현대인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저한테 휴대폰은 그 이상이에요.”

그도 그럴 게 7.3인치짜리 이 작은 기계는 그에게 업의 역사이자 현장이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살아온 11년이 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저장된 번호는 5,000개가 넘는다. 10년 변론한 피해자의 수만 해도 3,690여 명이니.

이 도구와 관련된 그의 철칙이 있다. ‘통화음이 두 번을 넘어가기 전에 받는다.’

-왜 이런 원칙을 갖게 됐나요.

"피해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알고 보니 극도로 불안한 와중에 겨우 힘을 내서 저한테 전화를 건 걸 수도 있죠. 근데 제가 그걸 못 받았다면 어떻겠어요. 힘겹게 쌓아보려 했던 믿음이 무너지겠죠."

그러다 보니 직업병이 생겼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휴대폰을 확인하는 거다. ‘나에게 피해자는 수백 명 중 한 명일 수 있어도, 피해자에게 변호사는 오직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에게 휴대폰은 피해자와 연결된 끈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30명가량의 피해자와 수시로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통화 상담은 기본이 5건 이상, 한번 시작된 전화는 2시간을 넘기는 게 다반사다. 오전 7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17시간, 깨어있는 내내 이 도구와 한 몸이다.

혹사를 시킨 탓일까. 그가 쓰는 휴대폰의 수명은 2년을 채 채우질 못한다. 11년 전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벌써 여섯 번째 기계다. 1년이면 화면의 픽셀이 깨지기 시작한다. ‘제발 은퇴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는 수준이랄까.

-은퇴한 휴대폰들은 어디에 있나요.

“집에 모셔져 있죠. 새 휴대폰을 사면서 원래 쓰던 것을 대리점에 반납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전 지금까지 쓴 휴대폰을 다 갖고 있어요. 절대로 반납하지 않아요. 피해자와 주고받은 대화, 그들이 보낸 녹음, 사진 같은 중요 증거들이 가득하니까. 백업 후 포맷해 놓은 상태로도 절대 안 돼요. 대리점 직원이 휴대폰 복원을 해서 그 안에 있는 영상을 유포하는 범죄도 흔하거든요.”

-사건을 배당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뭔가요.

“이 휴대폰으로 가능한 한 빨리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잡아요. 사건을 배당받아 인지하자마자 거의 바로요. ‘첫 만남은 내가 간다’는 게 원칙이에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거나 친족 성폭력 피해자처럼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피해자라면 제가 직접 그들의 자택까지 찾아가고요.”

-그렇게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피해자들은 대개 세상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있어요. 그 마음에 ‘저 사람은 나를 돕겠구나’ 하는 신뢰를 쌓아 올려야 해요. ‘당신을 돕겠다’는 마음을 그렇게 전달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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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매일 신고 다니는 운동화. 밑창이 두꺼운 것을 고른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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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는 그의 또 다른 도구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해온 11년 내내 ‘뚜벅이’였다. 삼십 대 시절 타고 다니던 차를 팔아버린 지 올해로 20년째다. 지하철이나 버스 좌석이 그에겐 ‘이동형 사무실’이나 다름없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그는 전화기를 붙잡고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댄다. 이날만 해도 그는 한나절 동안 서울 서초구 서초동 → 용산구 후암동 → 동작구 신대방동 → 관악구 봉천동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언제부터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나요.

“4, 5년 전만 해도 법정에 꼭 구두를 신고 들어가야 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그렇게 빡빡하진 않아요. 그래서 냅다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죠. 구두를 신던 시절엔 발부터 무릎, 종아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어요. 온몸이 너무 쑤셔서 안마 의자를 샀을 정도니까.”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최적의 구성을 찾았다. 손에는 최신식의 휴대폰, 발엔 밑창 튼튼한 운동화. 11년 차 길 위의 변호사다운 ‘기동성 최강’의 차림새다.

베테랑의 시간 : 허투루 쓸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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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동 중에도 작은 단위의 일을 쉴 새 없이 처리한다. 이동하는 시간에도 업무를 보려고 운전 대신 대중교통을 택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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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과표는 마치 크고 작은 블록을 여백 없이 맞물려 쌓은 탑 같다. 큰 블록으로 견고한 뼈대를 만들고 나면, 그 빈틈을 작은 블록이 채우는 식이다. 먼저 2, 3시간 단위의 굵직한 일정 위주로 하루의 동선을 정한다. 재판, 상담, 강의가 해당된다.

15~30분 단위로 할 일은 이동 시간에 배치한다. 피해자에게 다음 재판 날짜를 문자로 알리는 일, 메일 · 문자 · 메신저 체크 등이다.

이런 ‘스케줄 테트리스 게임’을 하다 보면 빈틈이 없어진다. 이렇게 시간을 운용해 온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법대에 다니던 25년 전부터다. 사회학과를 나와 과외 교사로 살았던 그는 스물아홉 살에 다시 법대에 진학했다. 학비를 벌며 공부를 해야 했기에 그때도 그는 학업과 과외 교사 일을 병행했다.

-그때도 만만치 않게 바빴겠네요.

“오전 8시까지 등교해서 오후 2시까지는 빼곡하게 법대 수업을 채워 들어요.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엔 늦은 밤까지 과외 선생이 되는 거죠. 고3을 맡았을 땐 퇴근이 새벽 2시였어요. 주말엔 온종일 일했고요. 그렇게 몇 년 동안 학생이자 선생님으로서 2개의 삶을 산 거죠.”

그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공간은 평등하지 않아도, 시간만큼은 만인에게 평등하잖아요.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이니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원인 거죠.”

-시간을 그렇게 쪼개 쓸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데, 일에 질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요.

“원칙이 하나 있어요. 피해자에게 요구받은 일을 절대로 미루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치운다는 거예요. 당장 처리하지 않고 따로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챙기려면 2배, 3배의 에너지가 들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깜빡하기라도 하면, 신뢰가 깨지고요.”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불쑥불쑥 연락을 받을 텐데요.

“저녁 10시에 오는 연락이건, 새벽 2시에 오는 연락이건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그 즉시 받아서 해결해요. 이를테면 피해자가 겪은 사건이 기사로 보도됐다든지, 피해자가 찍힌 불법 촬영물이 특정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새롭게 발견이 됐다든지 하는 일이 그렇죠.”

그러고 보니 그는 기자가 보냈던 장문의 섭외 메일에도 10분 만에 답변을 해왔다. 그가 섬긴다는 원칙은 대개 거창한 구석 없이 간명하다. 몸으로 행하기가 어려울 뿐.

베테랑의 루틴 : 강의가 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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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변호사가 이날 서울 용산구 삼경교육센터 내 회의실에서 국방부 소속 신임 성 고충 처리 상담관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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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라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걸 알게 하는 숫자가 있다. “2013년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선발된 1기 변호사가 총 11명인데, 지금은 저를 포함해 2명만 남았어요. 스트레스로 귀가 안 들려서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분도 있었고요.”

-에너지가 고갈된 적은 없었나요.

“처음엔 같은 일을 하는 변호사들을 만나 넋두리를 했죠. 나중엔 그런 만남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각자 자기 몫의 고통이 크니까,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요.”

모임은 점점 집단 독백의 현장이 됐다. 듣는 이는 없고 말하는 자만 있는 곳에선 고통이 나눠지지 않는다. 외려 메아리로 증폭될 뿐.

-’내 얘기만 하는 곳’이 된 거군요.

“그래서 나중엔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찾아오면 그저 듣기만 했어요. 그런 만남을 조금씩 줄여나갔죠. 내가 고여 있는 물이 돼서 그런 걸까요. 더 이상 그런 대화에서 위안을 얻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어디서 위안을 얻었나요.

절 구해준 건 강의였어요. 1기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다 보니까 ‘그 경험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거든요. 처음엔 별생각 없이 응했죠. 근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일을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강의안을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발산이었어요.”

그를 지탱하는 루틴(routine)은 ‘강의’였다. 벽을 만나 꺾일 때마다 자조적인 푸념을 삼키는 대신 ‘바꿔 달라’는 목소리를 뱉는 쪽을 택한 거다. 한마디로 업의 현장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전진의 에너지로 치환하는 의식이다. 고갈을 느낄 때마다 찾는 샘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의 수강생은 검사, 판사, 경찰, 군 수사관을 아우른다.

-7년째 매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임상 법학’을 가르치고 있죠. 법무연수원, 사법연수원, 서울지방경찰청에서도 주기적으로 강의하고요.

“맞아요. 몇 년째 꾸준히 하고 있죠. 솔직히 말하면, 불러주는 곳은 다 가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서의 어려움과 피해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받는 상처를 말해요. 그게 쌓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강의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뭔가요.

“수사 기관에 나갈 땐 꼭 하는 말이 있어요. ‘어차피 못 잡아요’라는 말을 들은 피해자와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을 들은 피해자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말뿐인가요. 긴 한숨, 냉랭한 표정, ‘뭘 이런 걸 신고하러 왔어?’라고 문책하는 듯한 눈빛… 그런 기운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수사관을 만난 피해자는 절망하죠. 결과적으로는 범인을 못 잡을 수도 있어요. 제대로 벌주지 못할 수도 있죠. 설사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과정이 어땠는지에 따라 피해자의 마음에 남는 상처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어요.

‘때로는 태도가 전부다.’ 강의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이다. 이 말을 하며 언제나 새롭게 그는 마음을 먹는다. 어떤 순간에서도 더 친절해지자고. 매년 하는 새해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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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신 변호사의 마지막 일정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새 학기 첫 수업이었다. 그가 애정을 갖는 강의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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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그의 하루를 동행한 날 마지막 목적지도 강의실이었다. 오후 7시 서울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었다. 새 학기의 첫 강의였다. 그가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강의다. 출발의 열기가 스며있는 캠퍼스로 들어서며 그는 말했다. “대학 강단에 설 땐,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요. 청년들에게서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의를 느끼거든요. 그 에너지가 저까지 채워주는 느낌이죠.”

그렇게 받은 힘을 다시 업의 현장으로 끌어와 붓는다.

베테랑의 한 끗 “예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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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서의 여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할 만하니 내 일이구나'라고 느낀 적은 없다. '필요한 일이니 내가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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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베테랑으로 만든 ‘한 끗’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또 내 일의 범위를 미리 그어두지 않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건, 사건의 결과를 점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어떤 사건을 보면 ‘과연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판으로 넘어가도 ‘과연 유죄 판결이 나올까?’ 싶고요. 결과는 뻔하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이 들면 착각이에요. 그런 예상은 쉽게 깨져요. 그럴 때마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느끼죠.”

그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하는 11년 동안 ‘안 된다’는 말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어도.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건이어도. 대신 이렇게 말한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끝까지 할 거다.”

변호사 신진희의 한 끗은 여기에 있다. 내 일의 경계를 미리 그어두지 않는 가능성의 태도, 그리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추진의 에너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전 법에서 하지 말라는 거 빼고는… 다 한다니까요.”

그는 나이 예순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2년씩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남편과 ‘동네 부부 변호사로 2년 살기’를 꿈꾼다. 그러면서 ‘배당받는 사건’ 말고, 힘들고 돈 안 되더라도 내 손으로 고른 사건을 맘껏 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면서도 여전히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거 같아도, 그 반복이 실은 나를 새로운 곳으로 옮겨 놓거든요. 계속하길 멈추면 다 늘어난 고무줄 신세가 될 거 같아요. 저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이 고무줄의 탄성이 좋아요. 그 반복이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게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거든요. 그러니 아마 몸이 허락하는 한 그만두긴 어렵겠죠.”

얼핏 보면 단순한 반복 같아도, 끝내 사람을 나아가게 하고 자라게 하는 탄성의 역동이야말로 베테랑 신진희의 숨겨진 한 끗이 아닐까.

잠깐, 나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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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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