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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인권위 사무총장 “오늘은 무슨 혐오 들을까…참혹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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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인권위 14층 사무총장실에서 박진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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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직원들은 오늘은 또 무슨 혐오 표현을 들을까 걱정하며 출근합니다. 참혹한 현실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박진 사무총장(53)은 “인권위 사무처 직원들의 노동 가치가 함부로 폄하되고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책임자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폭력적인 언어 사용으로 비판을 받아온 대통령 몫 추천 김용원 상임위원은 주요 의사결정 회의인 전원위원회와 상임위원회에서 습관적으로 사무처를 깎아내려 왔다. “사무처가 제출한 안건 처리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다”라는 발언을 자주 했고, 사무총장의 즉각 퇴장을 요구하거나 “사무총장 따위가…”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뱉기도 했다. 국민의힘 추천 이충상 상임위원은 여기에 적극 동조해왔다. 두 위원은 이 밖에도 진정사건과 관련해 정권을 편드는 발언이나 혐오 표현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박진 사무총장은 두 위원에 대해 “인권에 대한 기본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분들”이라고 했다. 2024년 1~2월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건수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면서 두 위원의 발언에 따른 내부 혼란과 파행 사태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한겨레는 인권위 사무처 설립 22주년인 4월1일을 앞두고 박진 사무총장과 만났다. 26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딩 14층 사무총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진 사무총장은 “인권위는 위원회와 사무처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와 같다”며 “오는 9월 새 위원장이 와도 대한민국의 인권 기준이 후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들어온 이후의 여러 인권 후퇴적 발언과 결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2001년 5월24일 국가인권위법이 공포된 뒤 같은 해 11월26일 김창국 변호사를 초대 위원장으로 정식 출범했지만, 인력규모를 둘러싼 인권위 설립기획단과 행정안전부 사이의 이견으로 바로 사무처를 꾸리지는 못했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80명, 인권위 설립기획단은 400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4개월이 넘는 협상 끝에 실무 인력 규모를 180명으로 확정짓고 서울광장 인근 금세기빌딩에서 사무처 현판식을 한 날이 2002년 4월1일이다.

2021년 1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박진 사무총장은 활동가 출신의 인권 감수성으로 법률가 출신인 송두환 인권위원장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무총장은 통상 정해진 임기가 없지만, 3년 임기인 위원장과 러닝메이트처럼 함께 들고 나는 경우가 많다. 인권위에 오기 전엔 수원시 인권위원회·경기도인권위원회 부위원장, 4·16연대 운영위원,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법무부 인권정책자문단 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맡으며 30년 가까이 인권운동 현장에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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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인권위 14층 사무총장실에서 박진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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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을 현장에서 인권 활동가로 살다가 인권위 인권 행정 최고위 공무원이 되셨는데요. 보이는 풍경은 좀 달라졌을까요?

“달라지면 안 되죠. 인권옹호자로서 풍경은 절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일입니다. 다만 일의 방식은 달라졌죠. 활동가들은 인권 사안에 대해 법과 규범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피해자의 아픔을 대리할 수 있지만, 인권 행정 하는 입장은 인권침해 여부를 공문서를 통해 말해야 하니 엄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단한 근거를 가지고 다뤄야 하죠. 더딜 수 있지만, 의결된 권고는 힘이 생깁니다.”

― 사무처 22주년을 맞는데, 사무처와 인권위원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사무처와 위원회는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 같은 관계예요. 사무처가 몇 달을, 길게는 몇 년을 준비한 보고서를 가지고 인권위원들이 토론하고, 숙의하며 조정하고 합의해 왔습니다.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상정하거나 어떤 때는 부결되기도 하죠. 하지만 부결에도 중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논의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보고서가 작성되고 논의하는 모든 과정이 결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결정은 우리 사회 인권을 증진해 왔고요. 그런데 지금은 사무처와 인권위원들의 관계가 이런 바탕 위에 서 있나 고민입니다. 사무처는 마치 보고서 몇 줄 쓰고 안건 제출하는 사람들처럼 돼버렸고 인권위원들은 안건심의를 미루거나 소홀히 하는 상황이 돼버렸죠.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관계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협화음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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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왼쪽부터). 지난 1월8일 전원위원회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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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전원위원회나 상임위원회 때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사무총장에게 퇴장 요구를 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인권위원 몇몇이 사무총장에게 무슨 얘기를 하든 사무총장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무총장 따위’라고 하는 건 사무처 전체를 싸잡아 모욕하는 말입니다. 사무총장은 개인이 아니라 인권위 사무처의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직원을 지휘, 감독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무총장이든 9급 직원이든, 민원인이든 누구에게든 ‘~따위’라는 말을 하면 됩니까?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그분은 ‘누구누구 따위'라거나, `버릇없이 군다'거나 하며 심지어 위원장님한테도 막말을 해오셨어요.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인권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사회적 약속인데 그 약속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인권위입니다. 참혹한 현실입니다.”

― 윤석희 전 인권위원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고의적으로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고 하셨는데, 이 지적에 동의하시나요?

“인권위는 권고하는 기관이잖아요. 여기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헌법 그리고 국제인권 규범입니다. 이 권고라는 것은 윤리적 기능이 강하죠. 강제적 권한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이면서도 양심에 호소하는 연성적 권력을 가진 권한이에요. 우리는 명령하는 기관이 아니라 설득하는 기관입니다. 문제를 인권적 관점에서 보고 인권적 해결책을 찾으라는 설득을 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유연한데 폭이 넓습니다. 정권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는 거죠. 정부 부처가 못하는 게 있으면은 워치독(감시견) 기능을 하면서 바꿔내라는 게 인권위의 태생적 소임입니다.

가령 김용원 위원은 ‘정부 부처에 인권위가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거든요. 인권위는 정부 부처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라고 만든 기관입니다. 침해와 차별 행위가 있는 곳에 ‘하지 말라’고 얘기하라고 만든 기관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인권위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겠지요.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국민 정서? 중요하죠. 그러나 어떤 인권사안에 대해서는 10년, 20년 정서와 지금의 정서는 매우 다릅니다. 때로 우리는 국민 정서가 그렇지 않더라도 인권의 원칙을 지키면서 한 걸음 더 가자고 설득하고 주장하는 기관이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22년을 하면서 우리 사회 인권을 진전시켜 왔습니다. 욕도 먹으면서요. 일례로 최근에 ‘일본군 위안부’ 이슈도 있었는데요. ‘일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무슨 실익이 있겠냐’고 말하는 데, 그건 인권위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걸 정부는 걱정할 수 있죠. 그때 인권의 관점으로 바른 소리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입니다. 인권위가 그런 역할을 할 때, 정부는 명분을 얻게 되고요. 정부가 못하는 말을 인권위가 대신해준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소임을 망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인권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인권은 법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피해자의 아픔을 어떻게 법률 용어만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피해자의 인생을 읽을 수 있는 눈,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뿐만 아니라 역사의식도 있어야 해요. 현재 국민이 어디를 아파하고 어디를 긁어줘야 하는지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고민하실까 의문이 듭니다.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어요. 자신의 말과 행동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살아온 삶이 인권위에서 드러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 인권단체 사람들은 김용원·이충상 위원 때문에 인권위에 쓴소리를 하기 어렵다고 하던데요. 송두환 위원장 체제에서 인권위가 기민하게 제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누구라도, 어느 때라도 쓴소리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송두환 위원장님은 인권위 설립 당시에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으실 정도로 초기부터 인연이 깊은 분인데요. 기본적으로 그 연세(1949년생)에 그렇게 열려있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후위기, 차별금지법 이런 문제들도 인권위 소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연구하시고요.

위원장이 더 진취적으로 치고 나가기를 원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 같은 때는 오히려 인권위 저변 전체를 두루 살피면서 묵직하고 진득하게 회의를 주재하며 끌고 나갈 분이 필요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매번 회의가 지난하고 어려워요. 송 위원장님은 감정을 태도로 드러내지 않는 분입니다.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고, 똑같이 받아치지 않습니다. 그거는 굉장히 높은 인격의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송 위원장님의 너른 품이 불안한 인권위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지키고, 인권위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사무총장이 현장에 너무 안 가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아픈 지적이네요. 화물연대 파업 현장이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고, 전장연(전국장애인연합) 시위 현장에도 가긴 했는데 그래도 안 드러났으면 욕먹어야죠.(웃음) 다만 저는 개인플레이어가 아니라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라 직원들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알콜 울산공장 55m 연소탑 고공농성 현장에 조사관이 달려가 식수 및 방한용품을 제공하도록 문제를 해결했는데, 김용원·이충상 위원으로부터는 비난을 들었지만,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듯이 우리 직원들이 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앞으로 인권 현장에 인권위 직원들이 많이 안 보인다면 언제든 지적해주시고 뼈아프게 듣겠습니다. 인권위 직원들께도 우리가 보듬어야 할 현장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최근 김용원 위원이 위원장의 업무추진비 문제를 제기했어요. 애초 편성액과 지출액 사이의 차이에 대해 따지면서 진상조사팀 구성 요구도 했고요.

“기관운영은 그 시기의 상황, 요구에 따라 유연하면서도 실속있게 해야 합니다. 전년도에 확정된 예산내역대로만 집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경비로 총액을 편성하면서 자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임위원의 역할이 확대되면 그에 따라 업무추진비가 증액될 수 있겠지요. 비용은 역할에 따른 것이지, 지위에 따라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업무추진비도 개선이 필요하면 제도를 개선하면 됩니다. 여기에 무슨 거짓의 영역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아요.

어디에 어떻게 문제없이 썼는지 이미 감사원과 국회 감사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위원장님은 기관장으로서 전체 위원회를 살펴야 하고, 대외적인 역할도 하시잖아요. 상임위원들은 심의·의결 단위에 소속돼 있고, 소위원회를 관리하고 계시고요. 업무 영역에서 차이가 납니다.

개선해야 할 관행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고 봐요. 22년의 역사 동안 관행화된 업무가 왜 없겠습니까. 머리를 맞대고 효율화 방안도 찾고 개선책도 찾아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무처가 조금 더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권위법에도 국내외 여러 시민사회와 협력하도록 명시되어 있거든요. 보고서 하나를 쓰는 데 있어서도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많이 청취하고, 피해자들이 있는 현장에 더 자주 가야 합니다. 보편적 권리를 실현해 나가는데 우리의 문서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연구하고 꼼꼼히 살펴야지요. 불필요한 행정 낭비는 줄이고요. 그런 부분들을 더 개선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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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에는 최근 새로운 인권위원 2명이 임명돼 들어왔다. 지난 25일 오후 전원위원회 직전에 열린 신임 인권위원 임명장 전수식 기념촬영. 왼쪽부터 원민경, 한석훈, 김용원, 남규선, 강정혜(신임), 송두환(위원장), 김용직(신임), 이충상, 김수정, 이한별 위원. 인권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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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이면 인권위원장이 바뀔 텐데요. 어떤 분이 와야 할까요.

“인권위원 후보 추천위원회가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 몫의 인권위원에 대해서만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습니다. 다른 추천 기관들도 적극적으로 절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권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키고 그동안 쌓은 여러 경험과 역할들을 축적할 수 있는 인물이 오도록 해야겠죠. 만약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2014년 현병철 위원장 시절에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던 일이 또 발생할 수도 있어요. 대한민국 인권위는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굉장히 높은 조직이에요. 인권위 위상이 흔들린다면 한국 사회 인권의 위상 자체가 흔들린다고 봅니다.

인권위엔 지난 20년 동안 쌓인 정착된 관행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다 규칙이나 예규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집단적 지혜가 몇 마디 주장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지요. 그런 것들을 존중할 수 있는 분이 와야 합니다. 인권위의 위상, 한국의 인권 수준을 높여 유엔인권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인권위에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법률가들이 너무 많아요. 법률가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법률가들은 적법한지 위법한지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적법하면 인권침해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인권문제는 법의 규율이 미처 가 닿지 않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법이 아닌 다양한 인권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법률가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인권위가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국가도 있거든요.”

― 윤석열 정부 들어 인권위 진정 건수나 권고 수용률에 대한 특징적인 통계 지표의 변화가 있나요?

“2021년부터 진정사건 권고 수용률이 조금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2020년까지 93~94%대였는데 2021년부터 88%대로 떨어졌어요. 진정 접수는 2017년 1만2000건 이상으로 폭증했다가 2020년 코로나 때 9000건대로 떨어졌어요. 지금은 통상적으로 1만건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건 올해 2월 말까지 진정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7.9% 감소했다는 사실이에요. 인권위에 관한 안 좋은 뉴스들이 진정 건수에 영향을 준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합니다.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국민 불신 때문에 진정 건수가 줄어들고, 수용률이 줄어들고, 인권위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진정인들께서는 인권위에 더 많이 사건 보내주시고, 더 많이 질타해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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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인권위 14층 사무총장실에서 박진 사무총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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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인권 문제의 가장 험지는 어디일까요? 또 앞으로 새롭게 대두할 인권 이슈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무엇이 더 험하고 밑바닥이냐는 질문보다는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최근 인권위 경향을 보면, 가장 통과가 어렵고 첨예하게 다뤄지는 이슈가 결국은 가장 험하면서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25일 전원위원회의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독립보고서 의결과정에서 통과되지 못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이슈가 그렇죠.

포괄법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통과되지 못한 그 날 밤 잠을 못 잤어요.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어떻게 인권위 독립보고서에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담지 못할 수가 있나요. 하지만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사회에 평등법 입법을 권고할 겁니다. 그리고 번번이 인권위원회에서 기업 이익 등의 이유로 뒤집어지는 노동 사안들도 중요하죠. 앞으로는 기후 문제나 AI(인공지능), 기업 인권경영, 동물권을 포함한 환경생태권까지 인권 이슈들이 확장될 거라고 보고요. 저는 인권영역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가지고 이럴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더 지평을 넓혀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발목을 잡히고 있어 너무 분노스러워요.”

― 왜 우리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받아들여지는 게 이렇게 힘들까요.

“낯선 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그것은 두려움과 같이 오거든요. 공포와 혐오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논란의 핵심은 성 소수자잖아요. 그런데 성 소수자는 나이기도 하고, 내 친구이기도 하고, 내 부모이기도 합니다.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타인의 존재를 환대하려는 기본적인 소양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봅니다. 인권위에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어요.”

―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온 뒤 인권위에서 내려지는 판단들이 후퇴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조사관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그게 우려스럽죠. 인권위의 기본적인 권고 수준이라는 게 있잖아요. 가령 경찰의 수갑이나 포승에 관해 침해1소위(침해구제 제1위원회 김용원 위원장)에서 ‘피의자를 위해서 이렇게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길만한 무슨 법익이 있냐’며 진정을 기각했던 경우가 최근에 있었거든요. 기존의 판단을 뒤엎으려면 그 격에 준해 전원위로 가서 의결을 해야 하는데 소위원장이 소위원회에서 함부로 뒤집는단 말이에요. 지금도 소위원회 의결 방식을 자신의 해석(3명 중 1인만 반대해도 자동기각)대로 계속하고 있고요. 기각에 대한 3인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의견 불일치라는 이유만으로 기각된 사례가 40건이 넘습니다. 예전에는 인용됐던 진정사건이 기각으로 막 뒤집히는 사례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걸 진정인들이 다 알겠어요? 모르죠. 우리 직원들이 그걸 볼 때 어떻게 하겠어요? 옛날에 쓰던 인용 보고서를 기각으로 써야 하나 인용으로 써야 하나 딜레마에 빠지겠죠.”

― 최근 윤 일병 사건 유가족들이 김용원 군 인권보호관의 수사 의뢰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요.

“인권위 구성원이라면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이 유가족이나 피해자들입니다. 수사 의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시민사회나 희생자 유가족과의 접점을 넓혀야죠. 아니 피해자가 어떻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얘기만 합니까? 내 자식이 지금 죽었는데, 어떻게 모두 이성적일 수가 있나요. 그런 상황에서 이성과 합리를 요구하는 것이 더 야만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통에 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인권위원회죠. 그것을 인내하는 것도 제 월급에 포함된 인내 수당이라고 생각해요. 참아야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사무처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인권위 사무처에는 인권의 노하우를 20년 넘게 발휘해온 숙련된 직원들이 있어요. 이분들의 노동 가치가 함부로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이 뭔지 잘 몰랐지만 이곳에서 업무를 하면서 인권옹호자의 길을 걷게 된 젊고 유능한 직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 업무에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게 해야지요. 이분들이 지금처럼 아침에 나오면서 ‘오늘 또 무슨 혐오 발언을 들을까’ 걱정한다면 한국사회 인권 지수는 정말 낮아질 겁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어서 사무처 책임자로서 부끄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다 지나갑니다. 직원분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린 이곳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 내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문서를 작성하면, 그것이 바로 역사의 기록, 당대 사회를 기록하는 인권의 역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사무총장인 저는, 당신들이 일하고 싶은 직장을 위해서 오늘도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이 저를 이곳에 보낸 인권 당사자들의 요구라고 믿습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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