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의 보험약관대출 잔액은 71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68조원) 대비 3조원 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보험약관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해지 환급금 범위 내에서 대출받는 상품으로 ‘불황형 대출’로도 불린다.
대출액이 늘면서 보험업권의 대출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보험사의 다중채무자 비중은 32.1%(차주 수 기준)로 집계됐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차주를 말하는데, 해당 비율이 은행(10.4%)·캐피탈(28.7%) 등보다 높았다.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갖고 있던 보험을 해약하는 가입자도 늘고 있다. 생보·손보사를 합친 보험 해약 건수는 2021년 1만1466건에서 지난해 1만2922건으로 증가했다.
보험뿐 아니라 카드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이날 금감원이 공개한 여신전문금융회사 영업실적 자료(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말 8개 카드사의 연체율은 1.63%로 2022년(1.21%)보다 0.42%포인트 높아졌다. 2014년(1.6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들 카드사의 부실채권 위험도 늘고 있다. 지난해 고정이하여신비율(회수에 문제가 생긴 여신 보유 수준을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은 1.14%로 1년 새 0.29%포인트 상승했다. 돈을 빌린 뒤 제때 갚지 못한 서민이 뚜렷하게 늘어났다는 의미다.
한편, 서민 ‘급전창구’인 카드론(신용카드 장기대출)에 신용점수 900점(1000점 만점)이 넘는 고신용 차주의 발길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금융권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신용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나타난 ‘풍선효과’라는 분석이다.
지난 1월 말 8개 신용카드사(국민·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BC카드)의 카드론 잔액은 36조2736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4335억원 증가했다. 신용점수 700점 이하의 중·저신용자 빚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고신용자의 유입도 두드러진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고신용자에게 주로 적용되는 ‘10% 미만의 금리’를 이용하는 카드론 고객 비중이 늘었다. 삼성카드의 경우 금리 10% 미만 카드론 이용자는 전체의 14.1%로 지난해 말(6.07%) 대비 2.3배 증가했다. 롯데카드는 같은 기간 0.88%에서 6.05%로 상승했다. 국민카드도 한 달 사이 0.49%포인트 증가한 6.43%를 나타냈다.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 카드사는 고신용자의 발길이 늘자 환영하는 입장이다. 다만 금융권 전반의 연체율 관리 ‘풍선효과’에 저신용자가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 등 제도권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그동안 카드론은 ‘급전’이 필요하지만, 1금융권 대출 문턱을 넘기지 못한 중·저신용자가 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급전 창구인 카드론에 고신용자가 늘면 저신용자는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확률이 높다”며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에 금융 취약계층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지현·정종훈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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