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환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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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성폭행 피해자 등의 야간·주말 응급 증거채취(이하 응급키트)를 중단·제한하는 해바라기센터가 속출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의사 등이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응급키트 시행 인력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증거 확보가 시급한 피해자들이 성폭행 충격 속에서 다른 센터나 병원으로 발길을 돌려야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전국 39개의 해바라기센터 가운데 △경남 서부 △인천 북부 △서울 △서울 동부 △서울 남부 △충북 아동 △부산 △전북 △광주 등 9개 센터가 최근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병원 운영 불안정으로 야간 및 주말 응급키트 시행이 어렵다”며 “지역 내 타 센터나 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을 이용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에 발송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통상 성폭행 신고가 112로 접수되면 경찰이 365일·24시간 운영되는 해바라기센터로 피해자를 이송해 응급 증거채취와 초기 상담, 진술을 받게 하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키트 시행이 불가하니 이쪽으로 오지말고 다른 센터나 성폭력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으로 이송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는 거리의 다른 센터로 인계되어 응급의료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해바라기센터 관계자 ㄱ씨는 “다른 곳에서 응급키트가 불가하다고 해서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우리 센터로) 온 피해자가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며 “1시간 정도 지연되는 게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폭행 피해를 입은 후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은 피해자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센터에선 병원 내 마취과나 정형외과 의사에게 응급키트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해바라기센터 관계자 ㄴ씨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성폭력 피해자를 진료한 경험이 없어 의도치 않게 2차 피해가 발생하진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ㄷ씨도 “현재 극소수의 교수님이 사실상 24시간 대기하며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얼마 전 (이 교수님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시더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면, 피해자 지원 시스템에 대한 피해자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전공의 파업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원활한 지원이 어렵다면 이를 충분히 사전에 안내하고, 최소한 피해자가 홀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지 않도록 센터 인력이 동행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만약 야간·주말에 응급키트를 중단하는 센터가 더 늘어나면 인근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담 의료기관은 자신들이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줄도 모르는 곳도 있어 충분한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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