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앱 노동자가 프랑스 파리 인근 도시 생투앙에서 음식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몰고 있다. 생투앙/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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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라이더 등 스마트폰 앱 따위의 통제를 받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일반 노동자처럼 보호하기 위한 유럽연합(EU)의 규정 제정안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회원국들의 승인을 받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유럽연합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따돌림당하며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11일 노동장관 회의를 열고 ‘플랫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지침’ 제정안을 승인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지침 제정에 끝까지 반대했으나, 에스토니아와 그리스가 막판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가까스로 가중다수결 요건을 충족시켰다.
가중다수결 요건은 찬성 회원국 수가 전체의 55%(15개국)를 넘고 찬성 국가의 총인구수가 전체 유럽연합 인구의 65%를 넘는 것이다. 다만, 반대 회원국이 3개국 이내면 인구 65% 조건은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유럽연합 순환의장국인 벨기에 정부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쓴 글에서 “여러분의 집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노동 조건! 장관들이 플랫폼 노동 지침 타협안을 막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플랫폼 노동 경제에 종사하는 유럽인 2850만명 이상의 권리와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장관 회의에서 통과된 지침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업체의 통제와 지시를 받을 경우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본다는 ‘법률상 추정’을 각국 노동법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가 자신을 일반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근거가 생긴다.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입증 책임은 고용주에게 부과되며,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플랫폼 노동자도 최저임금 보장 등과 같은 노동자 보호 혜택을 받게 된다.
이 지침은 또 자동화된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노동자의 고용·노동조건·임금 등을 결정할 경우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알리도록 규정했다. 노동자의 생체 정보나 감정·심리 상태 등 특정 개인 정보를 알고리즘 같은 자동화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것은 금지된다. 컴퓨터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AI) 등을 통한 노동자 관리 규제는 세계에서 처음 도입되는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럽연합의 지침은 목표와 기준 등을 제시하고 법률 제정은 개별 회원국에 일임하는 법령이어서, 세부 사항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 지침이 유럽연합 회원국의 모임인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최종 승인을 받으면, 각 회원국은 2년 안에 법률 제·개정에 나서야 한다.
이날 통과된 지침안은 지난해 12월1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회원국, 유럽의회 3자가 합의한 것에서 후퇴한 내용이다. 원안은 플랫폼이 일반 고용주처럼 작동하는지 판단할 5가지 지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 가운데 2가지를 충족시키면 고용주로 보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독일 등은 3자 합의 이후 태도를 바꿔 지침 제정에 반대했고, 이에 따라 지난달 초 5가지 지표를 빼는 타협이 이뤄졌다. 프랑스는 그 이후에도 반대를 고집했고, 독일도 기권 형식으로 승인을 거부했다. 유럽연합 전문 매체 유락티브는 “이 지침 제정은 회원국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된 문제 중 하나였다”며 “이 지침에 회의적이던 다른 회원국들이 프랑스와 독일을 따르지 않기로 함으로써 두 나라가 고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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