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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시위와 파업

의사파업 불똥 맞은 혈액원…'목숨같은 피' 내버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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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의사 파업으로 수술 등이 줄어들자 혈소판과 혈액 사용량이 줄어든 가운데 8일 대한적십자사 서울동부혈액원 보관시설에 혈소판과 혈액이 저장돼 있는 모습.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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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을 봉사활동 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서 단체 헌혈이 끊겨 혈액은 항상 부족해요. 그런데 채혈량을 제한한다는 공지가 와서 의아했어요."

8일 서울 시내 한 헌혈의 집에서 만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4명이 헌혈을 하고 있었다. 해당 직원은 "혈소판은 보존 기간이 불과 5일로 짧기 때문에 제때 사용되지 않으면 폐기될 수 있다"며 "의사 파업 등 영향으로 혈액 출고량이 줄었고 혈액량 수급을 조절하기 위해 채혈량을 일시적으로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성 부족에 시달리는 혈액이 최근 수요보다 더 많이 공급되고 있다. 의사 파업으로 병원이 멈춰서고 수술마저 취소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병원에 전달되는 혈액량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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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국가 혈액 사업을 수행하는 한마음혈액원은 최근 헌혈자들에게 '혈소판 채혈 일시 중단'을 안내했다. 헌혈을 할 땐 방식을 정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헌혈은 모든 혈액 성분을 채혈하는 전혈헌혈이다. 하지만 적혈구, 혈소판 등 일정 성분만 채혈하는 성분헌혈을 하는 사람도 많다. 냉장·냉동 보관을 했을 때 적혈구 유효 기간은 35일인 반면 혈소판은 5일 정도에 불과하다.

혈액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과 환자 퇴원·수술 연기로 혈액 사용량이 감소해 유효 기간이 짧은 혈소판이 폐기될 우려가 있다"며 "혈소판 헌혈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안내했다. 그럼에도 혈액 공급이 늘자 혈액원 측은 헌혈 예약제까지 도입했다. 수시로 방문해 혈소판 헌혈을 할 수 있던 것과 달리 주말과 공휴일은 100% 예약제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헌혈의 집 관계자도 "사회적 이슈로 인해 일부 헌혈 참여가 제한됐다"고 전했다.

혈액 수급이 이처럼 안정세를 보이는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혈액 보유 현황은 지난달 17일 연중 최저점인 2만333유닛(적혈구 기준)까지 내려간 바 있다.

이는 혈액 수급 부족의 징후를 보이는 '관심'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재고량은 의사 파업과 동시에 가파르게 상승했고 지난 4일 3만4183유닛까지 상승했다. 이는 적정 혈액 보유량(5일분)을 넘어서는 6.7일분의 재고에 해당한다. 3만유닛을 웃도는 재고를 닷새 넘게 유지하는 건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혈액원 관계자는 "혈액은 병원과 협의해 출고되는데 요청 자체가 줄었다"며 "환자에게 필요한 시기에 적절히 수혈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혈액 보유량이 가파르게 늘어난 건 전공의 파업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혈액 부족이 해소된 시점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해 의료 현장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6일까지 대한적십자사가 병원에 출고한 혈액량은 16만2232유닛으로, 전년 대비 7.3% 감소했다. 혈장은 같은 기간 공급량이 24.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혈액은 만성적 부족 현상을 보여왔다. 헌혈을 하는 주 연령대인 10·20대가 전체 헌혈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헌혈 건수는 2014년 305만건에서 2022년 265만건으로 8년 새 40만건 감소했다. 게다가 단체 헌혈이 드물게 이뤄지고 계절 요인으로 개인 헌혈자도 줄어드는 1~3월은 대표적인 '헌혈 보릿고개'이기도 하다.

실제 대한적십자사 혈액 공급 실적에 따르면 연중 혈액 공급이 최저인 달은 2022년 기준 2월(27만443유닛)이었다. 3월(32만4258유닛)이 그다음으로 적었다.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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