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팀 ‘네이처 메디신’ 발표
조직 채취하지 않고 태아 세포 얻어
인공배양 과정서 기형 관찰 가능
윤리적 제약 없이 연구할 길 열려
양수 속 태아 세포를 배양해 오가노이드로 만들면 임신 중에 태아의 선천적 질환이나 기형 등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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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의 양수를 활용해 태아의 장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능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선천적인 질병이나 기형, 태아 발달 과정을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티아 겔리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외과및중재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임신부의 양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폐나 신장 등 태아의 장기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연구 결과를 4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태아의 장기가 성장하는 임신 중기 이후에는 태아 조직을 직접 채취하기 어렵다. 연구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임신 중절 등으로 기증받고 허가받은 조직 샘플만 활용할 수 있어 태아의 장기 발달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체의 장기를 모사해 인공적으로 만드는 ‘인공 장기(오가노이드)’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론적으로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인간 배아줄기세포나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이용해 원하는 오가노이드를 얻는다. 문제는 배아줄기세포나 iPS는 다루기가 까다롭고 원하는 오가노이드로 분화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임신 중인 태아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임신부의 자궁 속에서 태아를 담고 있는 양수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고 근골격과 장기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양수에는 산모의 혈액 성분을 비롯해 단백질, 전해질 등 태아가 분비한 유기물도 들어 있다.
연구팀은 양수 속에 태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세포가 일부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신부 12명에게서 채취한 양수에서 태아의 것으로 확인된 세포 조각을 분석한 결과 위장과 신장, 폐 세포로 분화하는 상피세포가 발견됐다. 이 세포를 배양하자 각 장기의 오가노이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2주 후에는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그동안 태아의 양수 검사로 세포를 채취해 유전질환 여부 등을 파악한 사례는 있었지만 오가노이드를 배양한 것은 처음이다.
연구팀은 “양수 내 장기 세포를 활용한 오가노이드는 조작이 쉽고 배양 기술이 잘 마련되어 4∼6주 이내에 구현된다”며 “오가노이드 생산에 5∼9개월이 소요되는 기존 유도만능줄기세포 방식에 비해 훨씬 빠르다”고 밝혔다. 아기가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대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희귀 질환 ‘선천성 횡격막 탈장(CDH)’을 앓는 태아의 양수를 채취해 폐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선천성 횡격막 탈장은 태아의 발생 과정에서 폐 아래에 있는 근육인 횡격막에 구멍이 생기는 질환으로 횡격막 구멍을 통해 복부의 장기가 폐를 밀어 올려 태아의 폐 발육을 방해한다.
CDH를 앓는 태아 양수의 폐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는 발달하면서 특징을 나타냈다. 연구팀은 양수를 활용해 CDH뿐 아니라 폐에 점액이 쌓이는 낭포성 섬유증, 신장과 장의 기형 등 선천성 질환을 임신 중에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지금까지 윤리적으로 제약이 있었던 태아의 발달 과정에 대한 연구 폭도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임신을 지속하면서도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태아의 질환을 살필 수 있다”며 “선천성 질환은 태아기 때부터 개인 맞춤형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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