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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의대 증원 2천명이란 숫자 ‘절대반지’ 아니다…파국 막을 책임은 정부에 있어 [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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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해 사직서를 쓰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향해 ‘29일까지 돌아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벌을 위한 사법 절차에 착수하고 면허정지를 위한 행정 절차를 시작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서울대 병원의 한 교수는 “정부는 요즘 애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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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돈’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의사 면허를 딴 뒤 바로 많은 수익이 보장된 ‘쉬운 길’로 갈 수 있었지만 사람을 살리는데 기여하는 ‘어려운 길’에 들어섰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운을 벗은 후에야 그들의 고된 노동에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얼마나 의지했는지 확인됐다.

그들은 의료 현장의 불합리를 몸으로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한 소아과 전공의는 블로그에 올린 ‘나는 돈에 미치지 않았다’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를 전했다.

“아직도 소아약은 반병만 돈(수가)을 준다. 한병 쓰고 버리면 손해다. 그래도 양심상 손해보고 반병값만 받는다. 인투베이션(기관내 호흡관 삽관)할 때 장갑, 소독제, 거기 어시스트하는 간호사, 그 모든 건 무료다. 화상(을 입은) 아기 두번 치료하지 말란다. 한번만 드레싱 해야 한다. 나라에서 안주겠다지만 양심상 두번하고 한번은 손해를 본다. 미어터지는 NICU(신생아중환자실)에 아기가 전원 멀리 가기 힘들어해서 전원받으면 환자를 많이 받기 때문에 너는 아기를 제대로 안볼거니까 돈을 깎겠단다.”

아픈 아이를 직접 치료하며 소아과의 문제를 직접 느끼고 있는 이 전공의에게는 ‘의사수를 늘리면 소아과 기피 현상도 해결될 수 있다’는 정부의 이야기가 공허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부터 먼저 제시하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충분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얘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 29일 전공의와의 대화를 제안해서 몇명의 전공의를 만나기는 했지만 이런 깜짝 제안에 전공의들이 진정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대화 내용을 두고 복지부와 전공의들이 진실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니 그날 만남은 아니하니만 못한 것이었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법적 처벌과 면허정지 조치가 그들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장에서는 회의적이다. 전공의들은 ‘불법 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 사직서를 낸 것이기 때문에 사법적 처벌은 법적 다툼을 통해서 충분히 무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면허 취소는 불가능한 일이고 면허 정지를 하면 남자 전공의들의 경우 정지 기간 동안에 현역으로 입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 면허가 있으면 공중보건의·군의관 자원으로 분류돼 현역 입대가 불가능하지만 면허가 정지되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또 수련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면 전문의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일반의로서 취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병원 현장은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50%로 떨어진 빅5 병원의 수술실 가동률은 이번주에는 40%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의 수술을 미루고 있는데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환자도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전공의들은 당번을 정해서라도 응급실·수술실의 의료 공백 사태는 없게 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야한다.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온다면 전공의의 요구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정부는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만 파국을 막을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전공의들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도 지켜야 할 절대반지가 아니지 않는가.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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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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