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후원회장인 전 축구선수 이천수(왼쪽)씨와 인천 박촌동 성당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정재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결국 오셨네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3일 오전 9시 인천 계양구 박촌동 성당 앞. 이재명 대표가 인천 계양을에 단수 공천을 받고 처음 지역 행사에 나선 이날, 이 대표와 원 전 장관은 성당 앞에서 만나 웃음을 머금고 인사했지만,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성당에 먼저 도착한 것은 원 전 장관이었다. 오전 8시 30분, 남색 코트에 빨간색 목도리 차림의 원 전 장관은 자신의 후원회장을 맡은 축구선수 이천수씨와 함께 도착했다. 원 전 장관은 성당에서 나오는 신도들에게 "오랜만입니다"라며 "여기 이천수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원 전 장관의 인사를 건성으로 지나치던 사람들도 일부는 이씨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한 50대 여성은 "아유, 우리 천수 왜 여기 있어" 라고 말하기도 했다.
계양을 현역인 이 대표는 8시 50분쯤 성당에 도착했다. 검은색 정장에 민주당의 로고색인 파란색 목도리와 넥타이 차림의 이 대표는 원 전 장관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성당 관계자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3일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인천 계산동 계산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김정재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일요일인 이날 양측은 성당과 교회를 중심으로 표심 확보에 주력했다.
성당을 나선 두 사람은 오전 10시 계산제일교회 앞에서 다시 마주쳤다. 원 전 장관이 "예배 같이 드리게 됐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이 대표는 "예"라고 짧게 답했다.
예배를 마치고 원 전 장관은 교회 옆 건물로 이동해 교인들과 점심(잔치국수, 절편)을 함께 했다. 반면에 이 대표는 곧장 서울로 이동했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범야권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창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자리를 뜬 이 대표 대신 비서관과 민주당 소속 시의원 등이 교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한 50대 남성은 "아니, 본인이 와야지"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전체 선거를 지휘해야 하는 만큼 자신의 선거에 올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야의 공천이 마무리 수순을 접어들면서 4·10 총선도 본격적인 막이 오르고 있다. 254개 지역구 중 최고의 관심지로 꼽히는 건 단연 인천 계양을이다. 이재명-원희룡 두 대선주자가 맞붙어 '명룡대전'(明龍大戰)이라고도 한다.
계양을은 2000년 이후 실시된 8번의 국회의원 선거(재보궐 및 분구 포함)에서 2010년 보궐선거(한나라당 이상권)를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계열 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송영길 전 의원은 이곳에서 2000년부터 무려 5선이나 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이 지역에서 52.2%를 득표해 윤석열 후보(43.6%)에 크게 앞섰다. '우파정당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계양에서 10년 넘게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조용범(65)씨는 "여기는 송영길이 2000년부터 쭈욱 해왔던 민주당 텃밭이다, 원희룡이 아니라 원희룡 할애비가 와도 안 돼"라고 말했다. 이날 한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년 남성들은 원 전 장관을 보고서 "여기 민주당이여, 잘못왔어" "김건희 (여사) 조사 안 해?"라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원 전 장관은 16~18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갑), 37·38대 제주지사, 국토부장관 등의 이력을 앞세워 지역 개발론에 호소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역 주민들도 대선주자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낙후 지역으로 꼽히는 계양을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린다면 지역 발전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눈치다.
화전사거리 인근에서 원 전 장관의 선거운동을 바라보던 최영숙(54)씨는 "송영길씨가 몇차례 하고, 이재명 대표가 와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소외되고 낙후된 곳"이라며 "국토부장관도 했던 원희룡 같은 여권 실세가 오면, 정권 차원에서도 개발을 밀어주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원 전 장관이 작전서운동 상가거리의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도 한 50대 여성은 "작전역, 서운역 해주세요"라고 외쳤고, 원 전 장관은 "내년에 착공 가능하다. 내가 보여드리겠다"고 답했다.
50대 지역 주민은 “민주당이 한 게 뭐냐. 낡은 동네를 여태 모른척해 놓고”라며 “바람이 불면 어디로 불어닥칠지 몰라. 이재명도 어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경인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3월1~2일 계양구을(선거구 획정 前 지역) 18세 이상 유권자 508명을 대상으로 가상번호를 이용한 무선전화면접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45.2%, 국민의힘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41.6%를 기록했다.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앞서 한길리서치가 인천 계양을 거주 18세 이상 유권자 502명을 대상으로 2월 1~2일 진행한 여론조사(무선 ARS 방식)에서는 이 대표 50.7%, 원 전 장관 34.3%로 이 대표가 크게 앞섰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 계산1·3동 떠나고 작전서운동 들어오고…계양을 지역구 조정 변수되나
인천 계양을의 선거구 조정이 명룡대전의 변수가 될까.
정근영 디자이너 |
지난 29일 통과한 선거구 획정안에 따르면 인천 계양갑에 속해있던 작전서운동은 계양을 지역으로 편입됐다. 작전서운동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1711표 ▶2020년 4월 21대 총선 3851표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야당 우세 지역이다. 이에 국민의힘 후보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휴일인 3일 오후 내내 작전서운동 상가에 머물며 “이제 저의 구역이 됐다. 자주 오겠다”고 인사했다.
반면 계양을에 속했던 계산1·3동은 계양갑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6월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윤형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비교적 선전했던 곳이다. 당시 윤 후보는 계산1동에선 122표를, 계산 3동에선 616표를 적게 얻으며 박빙 승부를 펼쳤다. 이같은 선거구 조정을 두고서 여권에선 “지금도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한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특정 지역을 빼고 넣고 해도 되나. 게리멘더링이 아니라 계(계양)리멘더링”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민주당은 “선관위 획정위에서 보냈던 초안과 동일하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재판의 핵심 증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출마도 변수로 꼽는다. 유 전 본부장은 지난 14일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에 입당해 계양을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27일 출마선언에서 “측근과 호의호식하면서 배를 불린 정치인이 있는데 시민들이 준 표로 방탄조끼 만들어 입고 있다”며 ‘이재명 저격수’를 자임했다.
인천=유성운·김정재 기자 pirate@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