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4 (일)

유골함은 하나, 뼛가루는 여럿?… 씁쓸한 多死사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유족 울리는 황당 백태

화장장에서 무슨 일이

“CCTV 좀 봅시다.”

고인 마지막 가는 길, 화장장에서 유족은 분통을 터뜨렸다. 90세 노모의 시신이 화장로(火葬爐)에 들어간 지 한참 지났음에도, 직원이 유골함을 주지 않았다. 이상해서 까닭을 물었더니 납득할 만한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화가 난 유족이 직접 CCTV를 확인한 결과, 황당한 사고가 드러났다. 유골을 곱게 빻는 ‘분골기’ 내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가동한 탓에, 두 명의 분골이 하나의 유골함에 섞여버린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 연고 없는 남남. 수습이 불가한 참사였다.

◇유골함에 다른 유골이 뒤섞였다

조선일보

한 상주(喪主)가 고인의 유골함을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평온해야 할 이 순간에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황당 사고는 인천가족공원 내 시립 화장장 ‘승화원’에서 지난 1월 22일 일어났다. 인천 유일의 공공 화장 시설. 당시 직원이 분골기에 이미 들어 있는 유골 가루를 꺼내지 않은 채로 다른 유골을 추가로 넣고 분골기를 작동한 게 원인이었다. 인천 승화원 관계자는 “화장로에서 수골(收骨·뼈를 거둠)해 분골실로 운반하고 이를 분골하는 역할이 직원별로 나뉘어 있다 보니 착오가 발생했다”며 “시신 한 구당 직원 한 명이 전 과정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바꾸는 등 재발 방지책을 세웠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두 명분의 뼛가루가 섞인 유골함을 받아든 황망한 유족들은 이를 유골함 두 개에 임의로 나눠 담고 화장장 뒤 수목장에 안치했다고 한다.

2020년에는 대구시설공단 명복공원 측의 관리 소홀 실태가 지역 언론의 보도로 공론화된 바 있다. “분골기에 다른 고인의 유골 가루가 있는데도 세척 등 아무 조치 없이 분골기를 그대로 사용해 모친의 유골을 갈았다”며 유족이 항의했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고인의 유골이 섞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척 불쾌했다는 것. 명복공원 관계자는 “이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매번 진공분진기로 기계에 남아 있는 분골을 흡입하고 포로 닦아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 절차는 개별 화장→수골→분골→봉안 순서로 이뤄진다.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용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은 하루 152건, 인천은 하루 72건 수준. 한 화장장 관계자는 “이용자가 크게 늘고 시간도 촉박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완벽한 세척은 어렵다”고 말했다.

◇빗자루로 쓱쓱? 가수 이적 뿔난 이유

“화장장에 처음 갔을 때, 화장이 끝난 유골을 작은 빗자루로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시종일관 극도로 삼가며 엄숙하게 진행된 장례 절차 끝에 등장한 싸구려 플라스틱 빗자루와 쓰레받기. 고인에 대한 예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물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단지 뭔가 더 나은 도구와 방식이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할 뿐.”

가수 이적(50)씨가 지난해 낸 산문집에 수록된 글 ‘쓰레받기’ 일부다. 온라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회용이 아니니 다른 뼛가루가 조금이라도 같이 섞이는 건데…” “격식의 디테일이 너무 부족하다” 같은 공감이 대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분골을 쓸어 담는 도구를 매번 세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청소용이 아니더라도 그게 연상된다면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화장장 관계자는 “장례 절차는 심리적인 부분이 크기에 유족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편할 수 있다”며 “뼈를 다 담고는 유골함을 ‘퉁퉁퉁’ 치는 경우도 있는데 끝까지 정중한 예를 갖추는 직원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니 빼돌리나? 의심의 눈초리도

비(非)유골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졌다. 전남 여수의 한 화장장 창고에서 ‘금니’가 무더기 발견돼 최근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창고를 정리하던 공원 직원이 바닥에서 금니로 추정되는 금속 30여 개를 확인한 뒤 이를 시청 등에 제보했다. “고인을 모욕하고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여수시는 과거 시신에서 나온 금니를 빼돌려 판매한 사례가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수사 당국에 관련 자료를 이첩했다. 시 관계자는 “금니는 화장 후 유족이 원하는 경우 돌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규정을 마련해 2명 이상 입회하에 바로 폐기하고 있다”고 했다.

전례가 있다 보니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6월 충남의 한 화장장에 유족이 민원을 넣었다. “화장 전 작성한 서류에 ‘보철물 반환’ 항목을 체크했는데 고인 치아에 있던 4개 이상의 금 인레이(inlay)는 없이 철 브리지만 반환받았다”며 “다시 요구하기도 애매한 유품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거면 왜 이런 문항으로 실망스러운 상황을 만드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화장장 측은 “치금(齒金)은 금의 녹는점(1064℃)보다 높은 화장로 온도(950~1500℃)와 압력으로 융해돼 형태 보존이 어렵고 특히 부피가 작은 금 인레이는 유골과 섞여 잔류가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사전에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답변했다.

◇태부족 화장장, 떠밀리듯 4일葬

조선일보

그래픽=송윤혜


그럼에도 화장장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많은 ‘다사(多死) 사회’에 진입한 데다, 장례 문화 변화로 국내 화장률이 90%를 넘어섰으며, 화장장은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화장 시설은 단 두 곳으로, 지난해 기준 3일장이 가능한 사망 후 3일 차 화장률은 절반 수준인 53.1%였다. 사망자는 느는데 화장장은 없으니 서울·수도권에선 3일장(葬)으로 끝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4일장을 하고, 강원·충청도 등으로 ‘원정 화장’까지 가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인력을 최대 30명 증원하고, 2시간 연장 운영해 장례 3일 차 화장률을 7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그러나 화장장 신규 건립은 난항이다. 기피 시설로 인식되는 데다, 이로 인한 인근 부동산 값 하락 우려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기 이천시는 2020년 부발읍 수정리 일대를 시립 화장 시설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지만 주민 갈등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고, 건립 반대파의 청구로 이뤄진 감사 결과 절차적 하자가 드러나 결국 지난해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경기 양평군, 경남 거창군 등도 후보지 선정에 골머리 앓기는 마찬가지.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이정선 교수는 “화장로가 채 식기도 전에 수골해야 할 정도로 분주한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세심함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면서 “화장률 증가에 걸맞은 시설 증설이 뒷받침돼야 업무 환경과 장례 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