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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극한상황, 기자는 6초 만에 정신잃었다…조종사가 받는 이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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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의 공군 항공우주의학 훈련센터. 비행환경 적응훈련의 일환인 ‘가속도 내성 강화훈련’에 돌입한 지 6초 만에 기자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교관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그로부터 10여초 뒤, 가속 장비가 완전히 멈춘 뒤였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조종간을 잡고 있는 전투기 조종사에게 공중에서의 의식 소실(‘G-LOC’이라고도 함)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작전을 수행하는 공군 조종사들에겐 생과 사의 갈림길이 단 몇 초안에 결정된다는 의미도 된다.



온몸에 힘 줘봐도…엄청난 가속도에 곧바로 기절



중앙일보

공군 항공우주 의학훈련센터의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장비. 조종석을 빠르게 가속해 실제 상황과 유사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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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에서 F-16·F-35 등 전투기와 수송기·헬기 조종사는 약 2200명 안팎이다. 이들은 매 3년마다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인체의 관성을 거슬러 극한의 공중 환경을 버티는 훈련 겸 테스트를 주기적으로 점검 받기 위해서다.

이날 하루 기자는 이들과 동일한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저압실 비행 훈련 ▶공간 감각 상실 훈련 ▶비상 탈출 훈련 등 총 네 가지 훈련을 받았다.

이중 현직 조종사들도 떠는 극한의 체력·정신력 테스트가 바로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이다. 전투기는 생존을 위해 급상승 또는 급강하도 해야 하는데, 이때 관성력으로 인해 인체는 지구 중력 가속도의 6~9배에 이르는 힘(단위 G)을 받는다. 이를테면 ‘6G’는 몸무게의 6배에 달하는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자는 1초마다 1G씩 가속해 6G 상태로 20초를 버티는 훈련을 받았다. 현직 조종사들은 최대 9G도 훈련한다.

거대한 특수 장비에 연결된 훈련 조종석에 앉아 조종간을 끌어 당기자, 눈 앞의 시뮬레이터 화면이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 오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가속도가 빠르게 붙으면서 원심력으로 인해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확 쏠리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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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공군이 적의 포격도발이나 항공기 영공침범 등 복합도발 시 압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통합상황 조치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은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위해 결의를 다지며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F-35A 조종사와 정비사 모습. 사진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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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도 찰나. 눈 앞에 검은 커튼이 드리워지듯 빠르게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뇌에 혈액 공급이 차단 돼 ‘그레이아웃→블랙아웃→G-LOC’의 의식 소실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흣-.” “흣-.”하며 사전에 교육 받은 ‘L-1 호흡법’을 시도하며 온몸의 힘을 쥐어 짜봤지만, 의식은 속수무책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L-1 호흡법은 복압을 유지해 상체의 혈류를 최대한 유지하는 호흡법이다. 기절한 뒤엔 꿈을 꾸는 듯한 환각·경련도 이어졌다.

‘초짜’인 기자는 6G에서 기절했지만, “실제 상공은 이보다 더 가혹할 수 있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하동열 기동생리훈련과장은 “일단 블랙아웃이 오면 의식을 잃는 G-LOC으로 접어든다고 보면 된다”면서 “조종사들에게 절대 가지 말아야 할 단계로 블랙아웃을 꼽는다”고 말했다.



구구단도 힘든 7.7㎞ 고공 환경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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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공군 우주항공 의료센터에서 기자가 비상탈출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레버를 당기면 로켓이 쏘아지듯 순식간에 상승한다.


2005년 8월 키프로스의 여객기가 그리스의 야산으로 추락해 121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기내 기압을 조절하는 여압 장치가 문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륙 직후 빠르게 고도를 높인 항공기 안에서 기장·승무원을 비롯한 탑승객 전원이 저압·저산소 환경에 그대로 노출됐고, 이로인해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공 1만ft(피트, 약 3㎞) 안팎 고고도에선 저기압으로 산소가 턱 없이 부족해진다. ‘저압실 비행훈련’에서는 기내처럼 꾸며진 특수 장비에 들어가 해발 고도 2만 5000ft(7.7㎞) 환경을 체험했다. 전투기들이 2만 3000~5000ft까지 전개하는 특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 높이는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와 비슷한 환경이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산소 마스크를 벗고 구구단을 테스트지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9X7=63, 9X6=54…’를 계산하는데 간단한 셈조차 잘 떠오르지 않았다. 뇌에 산소 공급이 급속도로 줄고 있었기 때문이다.

1분 30초가 흐른 시점. 왼손 검지 손가락 끝에 끼워진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내려다보니 100에서 시작한 수치가 어느새 63으로 떨어져 있었다. 2분도 안 돼 포화도 수치가 37%나 빠진 셈이다. 이를 본 훈련 교관이 기자에게 산소 마스크를 황급히 씌웠다. 그제서야 주변이 핑, 돌며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실제 상황에서도 뚜렷한 신체 변화 없이 심각한 저산소증에 빠져들 수 있다고 한다. 조종사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의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신체 변화를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2만 5000ft에서 내려갈 때는 기압이 다시 상승하며 고막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코를 막고 음압을 조정하는 ‘발살바법’을 계속 해야만 신체 손상을 줄일 수 있다.



2019년 독도 헬기 추락도 비행착각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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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사무국은 지난 2019년 10월 발생한 독도 소방 헬기 추락 사고와 관련해 "사고 발생 당시 조종사였던 기장에게는 하강하고 있는 기체가 상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정위상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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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통제 불능 등의 비상 상황을 인지했다면 비상 탈출을 해야 한다. 비상탈출 훈련에서는 좌석 가운데 달려 있는 레버를 힘껏 당기니 로켓이 쏘아지듯 몸이 튕겨져 올라갔다. 이 때 머리는 받침대(헤드 레스트)에 완전히 붙이고 있어야 경추 손상 등의 사고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하동열 훈련과장은 “하늘에선 내가 평소에 믿었던 인체의 감각을 부정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중에서는 인체 전정 기관의 관성력에 영향을 받아 방향 감각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공간정위상실’ 혹은 비행착각 현상이라고 부른다. 2019년 독도에 출동했던 소방 헬기가 추락한 사례도 한밤중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조종사가 비행착각을 일으킨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훈련용 조종석에 들어가 보니, 기체가 분명 급상승하는 느낌이었는데, 계기판의 ‘자세계’는 별 변화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종사가 자신의 감에만 의지했다면 충분히 기체가 들린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조종사가 하강 방향으로 항공기를 조작한다면, 지상을 향해 기체를 서서히 내리꽂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약 7시간의 훈련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평소 체력은 몰라도 정신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는데, 혹독한 환경 속에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기력한 지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넘어 오늘도 우리 영공을 지키는 공군 조종사들을 향해선 저절로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이 드는 체험이었다.

청주=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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