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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규제에 1190조 시장 뺏길라…비대면진료 앱들은 '탈한국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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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는 의료 규제와 의료계 반발에 부딪힌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비대면 진료 관련 기술·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반면, 한국은 규제와 한시적 허용 사이를 오가며 관련 업계의 혼란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 퇴사’로 인한 의료 공백을 막겠다며 비대면 진료를 다시 전면 허용한 것을 두고도, 업계에선 “어차피 한시적 조치일 뿐 언제 다시 규제할지 모른다”며 냉소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기간 급성장한 국내 의료 플랫폼 업체들은 최근 살길을 찾아 해외로 가고 있다. 비대면 진료·약 배송에 대한 규제가 약하거나 없는 국가로 사업의 축을 옮기는 것이다. ‘닥터히어’를 운영하는 메디히어는 미국으로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내국인과 해외 거주 한인을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지난해 6월 정부가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를 다시 시범사업으로 축소하고 규제 고삐를 죄자, 국내 사업을 접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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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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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닥터나우’도 국내보다 일본 시장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일본 법인을 설립해 창업자인 장지호 대표가 직접 법인장을 맡아 현지 사업을 키울 예정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 직원 절반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일본 법인에서 일할 개발자를 채용하고 있다. 장 대표는 “일본은 비대면 진료와 약사의 원격 복약지도, 약 배송이 합법이라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며 “다양한 의료기관과 약국 체인이 어우러진 인프라가 강점인데 특히 코로나19 이후 커지고 있는 약 배달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규제에 마음 졸이는 것보다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관련 제도가 정비돼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해외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규제 샌드박스를 거쳐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해온 ‘닥터콜’(운영사 라이프시맨틱스)은 태국으로 간다. 태국 상급병원인 라마9병원과 손잡고 현지인을 위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기술 시연을 마치고 이달 본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과 달리 태국 등 해외는 비대면 진료 수요가 잘 파악되고 약도 배송할 수 있어 비대면 진료를 보편적인 서비스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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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이들이 한국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갈피를 못 잡는 정부와 의료계의 반발 영향이 크다. 한국 정부는 2000년부터 비대면 진료 도입을 추진했지만, 매번 좌초됐다. 3년여 간(2020년 2월~2023년 5월) 국내 329만명이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지만, 정부는 지난해 6월 비대면 진료를 다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방역 위험이 낮아졌으니 비대면 진료에 대한 한시적 허용도 끝내야 한다’는 의료계 주장을 수용한 결과다. 3년간 30곳으로 늘었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지난해 정부 발표 이후 절반 가까이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지만 미국‧일본‧프랑스‧영국 등 대부분 선진국은 코로나19 때 시작한 비대면 진료를 종식된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비대면 진료 안착을 위한 법제화 등을 통해 의료서비스 이용자 편의와 산업 성장을 지원한다. 김대중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료와 ICT 융합은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사회적 편익과 비용부터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IT·의료 강한데, 디지털 의료 서비스는 약한 韓



산업계에선 ‘IT 강국’이자 ‘보건의료 산업’ 강국인 한국이 그 둘을 융합한 디지털 의료 서비스 시장을 다 빼앗기고 있다고 우려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한국을 포함한 6개국(칠레·에스토니아·체코·스위스‧터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선 비대면 진료, 약 배송 등이 가능하다.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세계 비대면 진료 시장은 1585억 달러(약 211조원) 규모다. 2032년에는 8937억 달러(약 119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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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서비스 플랫폼인 '닥터콜' 메인 화면. 라이프시맨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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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97년 비대면 진료(원격 진료) 관련 법률을 만들고 2015년 일정 조건 하에 비대면 초진을 허용했다. 이후 차츰 확대해 2022년 1월엔 사실상 전면 허용했다. 특히 일본은 의사가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나 진료 전 상담을 한 경우엔 허용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6월 초진 비대면 의료 가능 범위를 정부가 발표하며, 섬‧벽지 거주 환자, 거동 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로 제한하는 등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했다. ‘사실상 불허’다.

프랑스는 1년간 대면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재진 환자에 대해서만 주치의 의뢰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가 2020년부터 주치의 의뢰나 진료 기록이 없는 초진까지 대상을 넓혔다. 영국은 2019년 ‘모바일 플랫폼(NHS) 장기계획’을 세우고 비대면 진료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모든 1차 병원을 NHS 앱에 연동했고, 환자들은 본인의 진료 기록을 열람하거나 장기 복용약을 처방‧발급받을 수 있다.



“디지털 의료 정책 일관성 필요”



보건의료 학계와 산업계에선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권용진 서울대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한국에선 현재 디지털 의료가 비대면 진료라는 틀에 갇혀 있는데 이를 포괄할 수 있는 디지털 의료 관련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안 마련 과정에서 의료계의 우려도 반영하면서 디지털 의료 서비스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환자의 관점보다 이해집단의 관점이 더 중시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정부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의 유용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공급자도, 국민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홍보와 설득으로 답보상태를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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