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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가망 없어" 되레 기피과 전공의들 떠났다…필수의료 강화책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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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수련기회 부족…진로 망했다 생각"

필수과→피부·미용으로 '탈출' 움직임도

"필수의료 살리려다 당장은 되레 줄 수도"

중앙일보

전공의 업무중단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23일 서울시내 한 공공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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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금 하는 겁박들은 인기과에는 유효할지 몰라도 기피과 전공의에게는 크게 효과 없을 겁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에서 근무하다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보고 지난달 16일 사직서를 낸 전공의 A씨의 말이다. 정부는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에게 지난달 29일까지 돌아오면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지만, 이달부터는 원칙대로 행정·사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데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지난달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2000명 증원이 현실화되면 내 진로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떠난 것이기 때문에 증원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돌아갈 생각도 없다”며 “이런 생각은 기피과 전공의일수록 팽배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공의 왜 떠났나…“증원이 오히려 필수과 망칠 것”



정부가 2000명이라는 큰 폭의 증원을 결정한 이유는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라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갈수록 부족해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증원으로 인해 필수과 전공의들이 오히려 필수의료를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형외과·피부과 등의 인기과에 비해 낮은 보상, 주 80시간 이상 근무 등 고된 수련을 버티던 필수과 전공의들은 이번 증원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끼고 부작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중앙일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이 가시화하며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했다. 지난 20일 오후 의료진들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민간인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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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의대 증원만으로는 양질의 필수의료 전문의를 배출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국내 대형병원들은 인건비가 비싼 전문의 대신 ‘초보 의사’인 전공의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37.8%에 달한다. 이처럼 전문의 채용을 꺼리는 관행을 먼저 개선하지 않으면, 의대 졸업생이 아무리 늘어도 필수과 전문의는 배출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A씨는 “필수과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오히려 수련받는 전공의들은 너무 많아서 몇 없는 수술 기회를 두고 서로 경쟁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형편없는 실력으로 전문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규모 증원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서 왔는데, 실력을 기르기 어렵고 전문의로 남을 수 있는 기회도 너무나 좁은 현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빅5 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B씨도 “지금 더 필요한 전문의를 늘리려면 의대 증원이 아니라, 병원이 전문의를 더 뽑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지적대로 병원에 전문의 비중을 늘리고,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인상하는 등 ‘당근책’이 포함된 정책 패키지도 의대 증원과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의 효과는 의대 증원에 비하면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C씨는 “필수의료 살리기의 해법으로 제시된 정책 패키지에 현실적인 대책은 없어 보인다”며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인력 확충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과를 선택해도 전문의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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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하면서 전국 종합병원 등 의료 현장이 대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29일 대전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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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미용으로 ‘탈출’도…“필수 의사 되레 줄 수도”



전공의 입장에서는 증원으로 인해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보상은 즉각 늘 거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이에 힘든 수련생활을 접고, 근무여건이 나은 피부·미용 일반의로 옮겨가려는 필수과 전공의도 많다고 한다. B씨는 “이대로 증원이 되면 정말로 전공의 생활을 그만하겠다는 비중이 꽤 된다”며 “나도 미용 쪽으로 가는 걸 고려하고 있다. 미래 가치를 보고 젊은 시절을 투자한 건데, 앞으로 가치가 떨어질 것 같으면 빨리 탈출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공개적으로 사직한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의국장도 입장문에서 “이제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생계유지도 필요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필요하다”며 “엄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소청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경기도 한 대학병원의 외과 전공의 D씨도 얼마 전 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났다. 전공의로 일해왔지만, 외과가 그리 썩 달갑지 않은 차에 정부의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추진에 굳이 힘들게 전문의가 되려는 생각을 접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경기도의 한 전문병원에 취직하려고 접촉하는 중이다. 이 전문병원 원장은 “외과 전공의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늘리려다 당장은 되레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빅5 병원의 한 내과 전문의도 “전공의가 다 떠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앞으로도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필수 분야 전공의는 그나마 환자를 생각하는 사명감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돌아오라고 설득해도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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