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지속되면서 전국 의료 현장이 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28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 앞을 걸어가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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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정한 전공의 복귀 시한(29일)이 닥친 가운데 '파업 원조' 의사들이 후배 구하기에 나섰다. 전공의에게는 "진료 현장 복귀"를, 정부에는 "강경 대응 완화"를 주문한다. 환자단체도 "제발 우리곁으로 돌아와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후배 살리기에 나선 이들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을 주도한 의사들이다. 당시 전공의들은 넉달 파업을 벌였고, 의과대학 학생들도 동맹휴업을 했다. 한국 의료 역사에서 첫 파업이었다. 정부가 의사에 밀려 의대 정원 10% 감축 등의 조치를 했지만 의대생의 상당수는 휴업 때문에 이듬해 의사 국가시험에 떨어져 면허증 취득이 늦어졌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의사가 간곡히 호소했다.
당시 파업 선봉에 선 지방의 한 의사는 "일단 들어와서 정부와 싸워야 한다.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면 그 때 가서 또 진료실을 뛰쳐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들어와서 환자를 지키면서 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전공의 선생님께'라는 장문의 글을 올린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가 다시 나섰다. 권 교수는 28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대책의 일부가 현실성이 없다는 전공의 주장에 동의한다. 일단 복귀해서 이 패키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표단을 구성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젊은 의사들이(전공의를 지칭) 법과 제도의 역사, 그리고 한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정책은 수학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가깝기 때문에 실익이 없는 투쟁을 하면 상처만 남게 된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선택은 전공의의 몫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의약분업 파업 때 의대 본과 4학년이던 한 내과 전문의는 "정말 안타깝다. 그간 선배들이 의료의 문제점을 잘 해결했어야 하는데, 후배에게 짐을 떠안긴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이번 파업이) 개인이 선택한 일이니 소신대로 하되 확신이 없을 경우 전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하고, 본인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확신이 안 서면 복귀하라는 간접적인 호소이다.
'빅5' 병원의 교수(2000년 레지던트 2년차)는 "전공의나 정부가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가서는 위험하다. 양측이 물러서야 한다"며 "정부가 매일 행정처분과 사법대응으로 압박하고 검찰총장이 나서는 방식의 강경 대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24년 전 의대 본과 3학년이었던 다른 대학병원의 교수는 "전공의들이 돌아오라고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정부 강경조치에 피해를 볼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전공의가 시한 내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단체의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백민환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회장은 28일 중앙일보에 "부디 병원으로, 여러분 자리로 복귀해 주십시오. 누구보다 여러분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고 떨리는 두 손을 잡아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6개 환우회가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의 입장을 담았다. 백 회장은 “하루하루 생명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환자들에게 지금 사태는 꺼져가는 촛불과 같다. 이제는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시간”이라며 “강 대 강으로 대립하지 말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호소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영향으로 10여건의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이 밀렸다고 한다.
한국류마티스관절염 환우회 허진희 회장은 “의사가 약을 제때 처방하고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진료 예약 날짜가 취소될까 봐 불안한 환자가 적지 않다”며 “전공의들이 제발 돌아와 달라.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청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환자들이 병원에 계속 문의하는데 연결이 잘 안 돼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환자와 그 가족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국민이나 의사가 느끼는 이성적인 수준을 뛰어넘는다”라며 “의사와 환자는 같은 배를 탄 동반자다. 전공의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채혜선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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