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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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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영화계에 똥폭탄 투척"…미야자키 하야오도 꺾은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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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봉 영화 '오키쿠와 세계'

고레에다 '괴물' 제치고 日영화 1위

내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

"매너리즘 日영화계 분뇨폭탄 투척

현대와 이어진 새로운 사극 만들었죠"

중앙일보

영화 '오키쿠와 세계'(21일 개봉) 홍보차 내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을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만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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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거장으로 꼽히는 사카모토 준지(阪本 順治‧65) 감독이 19세기 에도 시대 똥밭에서 피어난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을 영화에 담았다.

지난 21일 개봉한 일본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쿠로키 하루)와 인분(人糞)을 사고파는 분뇨업자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츄지(칸 이치로)의 성장영화다. 쇄국을 고수했던 일본이 서구 열강의 압박으로 문호를 열면서 ‘세계(世界)’란 개념이 처음 생겨난 에도 말기가 배경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공포감마저 싹튼 혼란의 시대를, 요즘 N포 세대를 빼닮은 세 청년의 신분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에 담아냈다. “하늘의 끝은 어딘지 알 수 없어. 그것이 세계다.” 나이 든 사무라이는 ‘세계’에 눈뜬 똥 지게꾼 청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해줘”라고 격려한다.

흑백 영상의 시대극이지만, 현대적 감각이 담겼다. 종이부터 똥까지 모든 자원을 재활용한 에도 시대 ‘순환 경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식 문화가 융성했던 시대상을 귀족이나 가난뱅이나 똑같이 누는 똥으로 풍자한 시선도 유쾌하다.

일본에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치고 지난해 키네마준보 ‘일본 영화 베스트 10’ 1위, 제78회 마이니치영화 콩쿠르 대상 등을 수상했다.



감독 "매너리즘 빠진 일본 영화계에 분뇨 폭탄 던지고파"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뤄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KT’(2002), 태국의 아동 장기‧성매매 현실을 고발한 ‘어둠의 아이들’(2008) 등 묵직한 사회파 영화를 해온 사카모토 감독이 초저예산 독립 제작 방식으로 만든 30번째 장편이다. 30년 차 미술감독 겸 프로듀서 하라다 미츠오가 4년 전 식도암 투병을 계기로 100년 후 지구에 남기고 싶은 ‘좋은 날’을 영화로 전하는 ‘좋은 날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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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키쿠와 세계'(21일 개봉)는 초저예산 규모로 제작됐다. 한 챕터씩 단편영화처럼 만들어나가면서 각 챕터 중요한 부분은 컬러 화면을 넣어 강조했다. 사진은 쿠로키 하루가 연기한 주인공 오키쿠의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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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똥’에 꽂힌 이유는 뭘까.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영화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카모토 감독은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영화계에 분뇨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고 답했다.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 건설 당시 땅을 뺏기게 된 농민 시위대가 경찰에 자신들의 ‘황금 폭탄’(분뇨)을 던진 이른바 ‘분뇨 투쟁’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일본 영화계는 시청률이 잘 나온 TV 시리즈물 극장판이나 흥행수입이 보장된 안전한 영화를 주로 만든다. 독립영화, 오리지널 각본 작품은 제작이 어려운 양극화가 심해지는 구조적 문제가 크다”면서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Q : -왜 에도 시대를 택했나.

“귀족‧무사들은 집에 지구본이 있을 만큼 ‘세계’란 의식이 있었지만, 서민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가난하게 지냈다. 영화처럼 대문도 안 잠그고 살며 자연 재해에 상부 상조하는 공동체적 삶이었다. 분뇨도 재활용할 만큼 물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썼다. 현대에 와서도 신문지를 구겨 뒤를 닦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낭비가 많은 요즘 느낄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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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키쿠와 세계'(21일 개봉)의 결말 장면은 주인공 세사람의 숲속 산책을 담았다. 하늘에서 숲 전체를 내려다본 화각으로 롱숏 촬영했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영화 속 승려가 '세계'라는 단어를 저쪽으로 가다 보면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설명한다. 세상의 순환이란 작품 주제와 부합한다"면서 "결말 화면을 그래서 원, 구체의 이미지로 구현해 인물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되돌아올 것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영화 렌즈로 쓰지 않는 어안 렌즈를 테이프로 카메라에 붙여 힘들게 촬영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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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대한 시각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흑백 영화를 택했나.

“아니다. 예전부터 흑백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저예산 느낌이 난다는 이유로 투자가 안 됐다. 아예 독립영화 형태로 간섭 없이 만들며 도전하고 싶었다. 투자가 쉽지 않아 4년 전부터 하라다 프로듀서가 사비를 털어 영화를 한 챕터 씩 단편처럼 만들었고 이를 파일럿판 삼아 영화계 바깥에서 어렵게 자금을 모았다. 총 12회차 촬영으로 장편을 완성했다.”

Q : -군데군데 컬러 장면도 나온다.

“단편 한편 씩을 완결할 때 결말부를 두드러지게 하려고 컬러를 넣었다. 또 이런 순환형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와도 연결되는 이야기란 걸 관객이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극 중 사건과 직업에도 순환이 강조된다. 감독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느낀 바를 녹여냈다. 야스케와 츄지는 더러운 똥 지게꾼이라며 천대 받지만, 폭우에 온 동네 뒷간의 똥이 넘쳐 아수라장이 된 날 누구보다 환영받는다. 생계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오키쿠는 원수 집안에 아버지와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지만, 승려들의 도움으로 붓글씨, 신체 언어를 통해 다시 교단에 선다.

수어가 없던 시절의 몸짓 표현은 주연 쿠로키 하루의 해석에 의지했단다. 사카모토 감독은 “표현을 더 하려고 하기보다 덜어내고 빼가며 연기하는 쿠로키의 스타일이 여백 많은 캐릭터에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영화 세트·의상 재활용품…100년 된 기모노 업사이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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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키쿠와 세계'가 지난 24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봉에 맞춰 내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와 봉준호 감독의 대담 행사를 열었다. 대담에서 봉 감독은 영화의 리듬감을 생성하는 컬러 장면을 기습적으로 삽입한 연출의도가 무엇인지, 3년 간의 긴 시간에 나눠 찍으면서 새로운 챕터를 써내려갈 때 어떤 리듬으로 이어갈지 고민했던 시간들, 영화 전체의 묘한 운율을 형성하는 듯한 아름다운 인서트 샷들을 어느 위치에 어떻게 배치했는지 등 영화 곳곳에 숨겨진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섬세한 연출에 대해 질문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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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에도 ‘친환경‧순환경제’를 적용했다. 하라다 프로듀서가 의상‧미술감독까지 맡아 오래된 것을 재활용했다. 촬영소 내 기존 건물을 낡은 소재로 꾸며 공동주택 세트를 만들었다. 극 중 기모노는 100년 전 다이쇼 시대 입었던 기모노 옷감을 풀어 업사이클 방식으로 제작했다. 염색 원료도 친환경 식물성 재료를 썼다.

영화 속 그 많은 똥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지난 25일 서울 용산 CGV 영화관에서 열린 ‘오키쿠와 세계’ 대담 행사에서 봉준호 감독의 첫 질문이기도 했다. 극 중 똥 소품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고 한다. 바닥에 쌓인 똥은 종이 박스를 물에 적셔 표현했고 배우가 뒤집어쓰는 똥은 먹어도 탈이 없는 식재료를 발효시켜 만들었다. 발효 냄새 덕에 갈수록 똥의 사실감이 커져 제작진끼리 ‘똥의 마에스트로(거장)’란 말까지 나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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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감독과 봉 감독은 24년 전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 각각 영화 ‘얼굴’(2000)과 ‘플란다스의 개’(2000)로 나란히 초청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서울독립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등 초기작부터 한국을 찾았던 사카모토 감독은 이후 한국에서 영화 ‘KT’를 찍고, 일본에 영화 개봉차 방문한 봉 감독, 박찬욱‧김지운‧이창동‧정윤철 감독 등과 만나며 친분을 쌓아왔다. 그는 “‘오키쿠와 세계’는 워낙 작은 영화라 일본 개봉도 어려웠는데 한국에서 개봉하는 게 인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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