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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하루 1000만원 벌었는데…" '낚시 천국' 이 섬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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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 전 가볼 만한 부산 가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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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연대봉에서 바라본 섬 남쪽. 새바지(왼쪽)·대항(오른쪽)은 신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진다. 왼쪽 작은 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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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은 누가 만들었어요?”

부산 가덕도에 온 아이는 궁금해했다. 아빠가 답했다. “일본.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팠지….” 아빠도 궁금했다. 역사가 답했다. ‘한국인 손으로 팠지요.’

이 섬, 가덕도가 이름을 날리고 있다. 신공항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라지만, 파 들어가면 가덕도는 훨씬 전부터 유명세를 치렀다. 20세기 초반 일제의 전초기지이자 방어막으로, 조선 시대 왜구의 노략질감으로. 게다가 근처에 찰진 대구가 잡히는 곳으로도 이름났다.

신공항 착공이 12월로 잡혔다. 조만간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서둘러 그 섬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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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중 가덕도 대항마을에서 낚시에 빠진 강태공.신공항이 들어서면 볼 수 없는 풍경이 된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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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엔 ‘소나무가 잘 되는 땅’

그 섬에 사람 아홉이 사라졌다. 1508년 11월 2일이었다. 이 미스터리를 파헤치러 간 김근사(1466~1539)가 중종에게 아뢨다. “가덕도에서 재목을 취하던 자들이 왜적에게 피살됐습니다(중종실록 1509년 1월 5일).” 한데, 그 왜적들이 조선말을 했단다. 삼포(왜인들의 왕래·거주를 허용한 부산포·내이포·염포) 왜인의 소행으로 심증이 갔는데, 물증이 없었다. 미제사건이 됐다. 중종실록은 이를 ‘가덕도 왜변’으로 부른다. 가덕도 왜변은 2년 뒤 일어난 삼포왜란의 전조였다고 사가들은 말한다.

‘웅천(현재의 경남 진해) 현감 관사를 고치려 나무를 취하러 갔다’는 실록 내용으로 보건대, 왜적에게 피살됐다는 이들은 가옥에 많이 쓴 소나무를 찾으러 왔던 것 같다. 가덕도를 ‘소나무가 잘 되는 땅’이라고 세종실록은 적고 있다. 섬 남쪽 남산(189m) 곳곳 소나무의 굵고도 탄탄한 허리를 몇 번 끼고 돌면 가덕도등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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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 가덕도 최남단에 위치한 가덕도등대.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12월에 처음 불을 밝힌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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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동 외양포마을의 적산가옥. 일제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만든 포진지가 근처에 있는데, 당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면 이 건물도 사라진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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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등대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190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점등식을 가졌다. 전국 1800여개의 등대 중, 올해 115년 된 왕고참 등대다. 당시 관보에 이렇게 실렸다. ‘융희 4년(1910년), 가덕도등대의 신설건을 관세국에서 고시하다.’ 융희(隆熙)는 순종이 사용한 연호로, 1907년 8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 국권침탈 당일까지 썼다. 등대는 서구와 한·일 양식이 어우러진, 근대건축의 숨은 수작이라는 평이다. 등대 출입문 위 대한제국의 상징 오얏꽃이 보인다.

등대의 존재는 가덕도가 과거 해상 요충지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덕도는 ‘일본의 손을 많이 탄 땅’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왜구가 들끓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게 밀린 일본 수군이 역전의 기회를 노린 곳이자, 1597년 정유재란 때 원균이 처참하게 패한 곳이기도 하다. 러·일전쟁(1904)이 터지면서 가덕도에 일본군이 주둔했다. 러시아의 발트함대에 맞서기 위해 포대를 세우면서 주민들을 내쫓았다. 현재 가덕도 외양포마을에는 지름 3m가량의 280㎜ 유탄포 포좌 흔적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당시 쓴 목욕탕·우물·내무반·사령관실·무기고 등도 빛바랜 모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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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만들었지만, 관광지로 거듭나면서 조명으로 반짝이는 대항마을 해안가 포진지 동굴. 신공항 착공에 들어가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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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마을의 일본군 해안 포진지 동굴. 강서구에서 관광지로 조성했지만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질 운명이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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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은 미국의 상륙이 걱정됐다. 대항마을 해안가 포진지 동굴 6개는 일본의 이런 조바심이 만들어냈다. 한국인을 동원해 뚫고, 팠다. 이 중 동굴 3개는 안에서 이어진다. 국수봉(269m)에는 일본이 지은 포진지 관측소도 있다.

가덕도에는 이렇게 요샛말로 흑(黑)역사라 부를만한 곳이 꽤 있다. 흑역사는 ‘잊고 싶은 과거’라는 뜻인데, 이 말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아픈 역사에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펄떡이는 섬이다.

“가덕도 고기는 아주 찰지지요. 동해 쪽이랑 달라요. 탕을 해보면 단번에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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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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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에서 온 안원수(62)씨가 낚싯줄을 정리하며 말했다. “가덕도 하면 대구지요. 청어·숭어도 알아주고요.” 옛부터 그랬다. 500여 년 전 ‘가덕도 왜변’ 중, 김근사가 살인범을 잡는다며 삼포의 두왜(頭倭·우두머리 왜인)를 추궁했다. 두왜는 이렇게 답했다. “11~12월은 청어·대구를 잡는 때로서, 이 기회를 잃으면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낚시질, 그물질하기에 겨를이 없는데, 누가 집을 떠나 멀리 나가겠습니까? 그때는 본디 (가덕도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중종실록 1509년 3월 16일).” 이 두왜의 맨 뒷말은 확인할 바 없으나, 맨 앞말은 맞다.

대구는 시베리아 남쪽 연안에서 서식하다가 겨울에 가덕도 인근 진해만으로 돌아와 산란한다. 남해 특유의 ‘잘피밭(해초 군락)’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곳을 눈독 들였다. 초대 통감 이토오 히루부미(伊藤博文)의 절친 카시이 겐타로오(香推源太郞)는 1906년 가덕~거제 연안어장을 20년간 임차했다. 이례적으로 통감부가 의정부에 승인 요청을 했는데, 다름 아닌 압력이었다. 1899년 11월에는 일본 영사 노제 다쓰고로(能勢辰五郞)가 ‘가덕도의 금어(禁漁)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시 발생할 사태에 책임지라’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연대봉선 일출·일몰 모두 볼 수 있어

대구로 알아주는 가덕도였으니 대항마을에 축제도 생겼다. 하지만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2월의 5회 대구축제가 마지막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부산 강서구청 관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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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동 대항마을의 밤. 올해 안에 가덕도 신공항 착공이 들어가면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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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낚시꾼들도 대부분 사라진다. 안씨는 “성수기에는 낚시꾼들이 하루에 1000만원가량 쓸 정도로 가덕도의 큰 수입원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산 사상구에서 온 김모(45)씨는 “김해나 부산 서쪽 꾼들은 대부분 이쪽으로 오는데, 글쎄, 다른 데 알아봐야지”라고 했다. 대항마을의 해질녘, 김씨는 이제까지 자발적 고독을 택해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앞으론 반강제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일몰 보며 짐 풀고, 일출 보고 짐 싸면 돼요.”

전수경(54·경남 밀양)·이주영(49·부산 서면)씨는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연대봉(459m)을 자주 찾는단다. 전씨는 “밀양이 멀기는 하지만, 가성비가 좋아 올 만한 거죠”라고 했다. “오르는데 크게 힘들지 않죠. 백패킹을 하면 사방이 트여 있어 바다 너머 일몰과 일출을 한 번에 볼 수도 있죠. 주말에는 사람에 막히기도 해요.” 사람들은 어디선가 볼일 보고 온 듯 등산화·등산복도 아니고 목 짧은 구두에 양복바지 걸치고 느릿느릿했다. 연대봉은 이렇게 여차하면 오르는 산이기도 하다. 연대봉(煙臺峰)은 봉수대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부산 앞바다로 몰려드는 왜선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봉화를 올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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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남쪽 국수봉의 동백. 국수봉과 더 남쪽의 남산 사이의 동백 군락지는 신공항에 밀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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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원들은 “저쪽이 원래 봉수대”라며 남쪽을 가리켰다. 남쪽으로 국수봉·대항마을·새바지마을·외양포마을이 보인다. 주민 이성태(70)씨는 “이 세 마을이 모두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군부대에 있어 가덕도등대는 남겠지만, 포진지·해안동굴·관측소는 물론 국수봉과 남산 사이 100년 동백 군락지도 신공항에 깎이고, 밀어져 없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남아있다.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가덕도의 20㎞ 갈맷길도 시한부지만, 아직 온전히 살아있다. 이들이 사라지기 전, 가덕도에 가야 한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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