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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전공의 병원 떠나자 암수술 줄취소…"환자방 텅 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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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00~200만 원씩 주더라도 '환자방' 구해 서울서 치료 받아야 했던 지방 환자들

기약없이 미뤄지는 치료 일정에 방 빼기도…"환자 목숨 걸고 파업하냐" 분통

대형 병원 관계자 "암 수술 뒷감당 어려워 일정 미뤄…문제는 응급실·분만실"

'환자방촌', 일반 매물로 돌리기도…"파업 때문에 수술 미뤄져 방이 텅텅 비었다"

노컷뉴스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김수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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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으로 의사 선생님 면담이 갑자기 이틀 미뤄졌어요. 진료 과정이 어떻게 잘 되고 있는지 들어야 하는데, 많이 기다렸는데 또 이틀 연기됐다니까… 그나마 서울 있을 때 면담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앞에서 만난 황수경(43)씨의 70대 아버지는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달 병원 인근의 이른바 '환자방'에 입주하기 시작했다.

경북 문경에 살던 황씨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환자방을 2개월 빌리는 데 400만 원을 냈다. 통원하며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버지를 위해 황씨는 "부담스러워도 한두 달 정도니까 편하게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환자방'은 대형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보호자가 병원 인근 다세대 빌라, 오피스텔, 고시텔 등에서 임시로 지내는 곳을 흔히 부르는 이름이다. 서울 내 주요 병원이나 국립암센터 등에 이런 '환자방'이 모여있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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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KTX 표를 알아보고 있는 암환자. 박인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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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6시쯤 국립암센터 본관 1층 외래약국 앞 대기석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50대 남성 A씨는 암 투병 중인 아내와 이른 아침부터 부산에서 집을 나섰다. KTX를 타고 정오 무렵에야 암센터에 도착한 A씨 부부는 평소 같으면 오후 1시쯤 진료 시간이 잡혔지만, 이날은 2시간 넘게 밀려 오후 3시쯤에야 진료 시간이 잡혔다. 그러고도 40~50분을 더 대기한 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갑자기 또 암이 재발해서 수술해야 되는 상황에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끝을 흐리다 "지금 상황이 장기화될까봐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암 환자인 A씨의 아내는 부산에서 국립암센터까지 이동한데다 대기 시간까지 합해 10시간이 넘자 기진맥진한 채 대기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당일 일정으로 오가기 어려워, A씨 부부는 이날 친척 집에 묵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처럼 항암치료의 대표적 부작용이 체력 저하다. 평소 생활에서 느끼는 흔한 피로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쉬거나 잠을 자도 팔다리에 힘이 없고 숨조차 쉬기 괴롭도록 기진맥진해진다. 건강한 사람도 오가기 힘든 장거리 여행을 견딜 수 없는 암환자들은 자연스레 환자방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부산에서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70대 전립선암 4기 환자 B씨는 "하루에 두 번씩 보통 30회 정도 방사선 치료를 한 달 반 정도 해야 한다"며 "요양병원에 들어갈지 방을 구할지 고민"이라고 전했다.

치료를 위해 단기로 계약하는 환자방 중에 비교적 깔끔한 방을 구하려면 월 100~200만 원까지도 든다. 항암 치료 중 면역력이 약해지기 쉽기 때문에 환자나 보호자들은 어떻게든 깨끗한 방을 구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경북 영주에서 온 이은순(55)씨는 두경부암 4기 환자인 20대 아들의 방사선 치료를 위해 수서역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이씨는 "(방 가격이) 2주에 145만 원"이라며 "싼 데는 너무 작다. 후유증이 심하면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야 할 수도 있어서 2주씩 단기로 계약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행동에 돌입해 수술·진료 등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이처럼 큰 돈을 들여가며 환자방을 구했던 중증 환자들은 환자방에 계획보다 더 오래 머물러야 하거나, 아예 일찌감치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가는 '양자택일'의 처지에 놓였다.

전남 담양에서 올라와 국립암센터 인근에 월세 100만 원짜리 환자방을 구한 80대 남성 C씨는 아내가 설암 투병 중이다. C씨는 "입원 환자가 많아서 그런지 20일 정도 지나면 병원에서 무조건 퇴원시키는데, 나이가 들어서 (집에서 병원까지) 이동하기 힘들어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하려고 방을 얻었다"며 "환자는 넘쳐나는데 의사 수를 늘려야지,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려고 파업한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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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암센터에 진료를 받기 위해 경남 거제도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올라온 고창용(55)씨. 환자방 비용이 부담스러워 암센터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쉼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통원하고 있다. 주보배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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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에서 올라온 고창용(55)씨는 간암 말기 환자다. 7년째 암 투병 중인 고씨는 치료비로 이미 "집 한 채 팔아먹었다"고 한다.

고씨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비로만 6500만 원을 썼다"고 했다. 그는 병원 인근 환자방 비용까지 부담할 수는 없어 매번 3박 4일 일정으로 서울에 올라와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이용한다.

고씨는 "진료를 못 받는다고 하면 다시 먼 길 내려가야 한다"며 "암 환자도 있고 응급환자도 있는데, 환자 목숨 걸고 (전공의 사직 등) 자기네들 먹고살겠다고 이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진료실을 떠나면서 병원마다 수술을 미루거나, 입원 치료를 외래 친료로 돌리는 등 일정을 조정하자 희망을 잃은 지방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경남 양산의 양산부산대병원에서는 글로벌 비영리법인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RMCH)가 장기입원 어린이를 위한 객실을 10개 운영 중이다. 이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공의 163명 중 15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RMCH 관계자는 "보통은 거의 만실 상태인데 현재는 전공의 파업 문제로 오늘(22일) 3명이 퇴실했다"며 "전공의들이 병실을 관리해줬는데 인력이 없어서 외래로 진료를 보게 되면서 (환자들이) 퇴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의료진은 "이비인후과·안과 등 비교적 간단한 수술만 가능한 상황이고, 암 수술 등은 뒷감당이 안 돼서 아예 줄인 상황"이라며 "지금 (병원마다) 가장 문제인 곳은 응급실, 분만실"이라고 설명했다.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귀향하면서 환자방으로 사용되던 곳을 다른 전세 매물로 내놓는 사례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삼성서울병원 인근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요즘 파업 때문에 수술이 미뤄지면서 단기 방이 몇 개 나와 있다"고 전했다.

국립암센터 인근 '환자방' 간판을 걸고 방을 내놓은 임대인은 "요즘 환자방이 텅텅 비었다"며 "모두 전세로 놓고 있다"고 했다. 다른 환자방 임대인도 "오히려 파업 때문에 공실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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