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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백혈병 아이 1분1초가 급한데…" 이런 환자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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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서 왔는데 다시 가라니"
파업 앞둔 빅5 병원 어수선
수술 연기·시술 차질 현실화
의협 2명에 '면허 정지' 통지

머니투데이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종양내과 접수 창구 앞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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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가 빠른 소아 환자는 1분 1초가 급한데…환자들에게까지 어려움을 전가해야 하나 싶네요."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소아암 병동에서 만난 A(43)씨는 유모차 속 아이를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의 자녀는 백혈병을 앓고 있어 소아암 병동에 입원 중이다.

그는 "오늘 소아암 병동 전공의 선생님들이 모두 나오지 않았다"며 "진료는 교수님들이 하지만 척수에 항암제를 투여하는 시술 같은 것은 전공의 선생님들이 담당하는데 혹여나 아이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어머니의 뼈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상경했다는 40대 남성 B씨는 "원주기독병원에서 정밀검사를 권유하면서 해당 병원엔 검사 장비가 없으니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의뢰해줬다"며 "어머니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에서 1차 검사 후 2차로 오늘 조직검사를 받는데, 그 결과에 따라 입원해 수술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모두 사직한다고 해서 다른 병원을 알아볼까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의대생 증원에 반대하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전공의들이 20일부터 진료를 보지 않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은 하루 앞선 19일 근무를 중단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속 전공의는 600여명으로 병원 전체 의사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환자들 사이에서 진료 차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부터 일부 수술을 연기한 데 이어 이날부터 전체 수술 건수를 평시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세브란스병원의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220여건이다. 암 수술과 중환자 수술 등 생명과 직결된 수술이 아니면 일정이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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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1층 의무기록복사 창구 앞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다./사진=김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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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환자들은 전원 조치됐다. 이날 오전 11시4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무기록복사 창구 앞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광주에서 왔는데 의료진이 다시 광주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더라"며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촌각을 다투는 문제를 이렇게 처리해선 안 되지 않느냐"고 불만을 내비쳤다.

파업을 앞둔 병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입원 환자는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14일 입원해 이날 뇌전증 진단을 확정받은 50대 C씨는 "오늘 오전 회진 때 레지던트에게서 '우리도 혼란스럽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불안했다"고 말했다.

외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전공의들이 진료를 직접 보지 않아 외래까지 파업 여파가 미치진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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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1층 수납 창구 앞이 환자와 보호자로 붐비고 있다./사진=김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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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1층 수납 창구 앞은 환자와 보호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납용 키오스크에는 21명이 대기 중이라는 표시가 떴고 직원은 "여기 대기가 많으니 2층 수납 창구로 가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외래 환자들도 향후 진료가 연기될까 불안함을 호소하긴 마찬가지였다. 소화기내과 외래 진료차 병원을 찾았다는 D씨(76)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인력에 의해 이렇게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빅5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수련 병원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충북대병원, 청주성모병원, 대전성모병원, 을지대병원, 강릉아산병원 등에서도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의사들의 집단행동 조짐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응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날 선 발언은 하지 않지만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다. 국민 생명을 담보로 잡는 의사 파업 등 극단적 행동에 더 이상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각오다. 파업이 현실화돼 국민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강력한 정부 대응이 예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절실함과 의사들의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도 다시 한번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의료개혁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 의대 증원의 시급함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35년이면 적어도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한데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10년 이상 걸리는 만큼 당장 '2000명 증원'도 오히려 모자란다는 입장이다.

한편 환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주 한국 암환자권익협회 회장은 "대형병원은 애초에 경증 환자를 다루는 곳이 아닌데 경증 환자, 중증 환자를 나눠 수술하겠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특히 암환자나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은 몇 달씩 대기를 하다가 수술을 하는데 이걸 연기하고 그 기간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은 난동을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남일 혈우병환우회 한국코헴회 간사도 "혈우병 환자들은 피가 잘 멎지 않아 위급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 한 분은 파업으로 아예 퇴원 조치됐고 인공관절 수술을 미룬 분도 있다. 의사라는 직종이 생명을 구하는 게 일인데 환자를 볼모로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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