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서초는 보수 ‘텃밭’ 중에서도 가장 상징성이 큰 곳이다. 수도권에서 보수 정당의 당선이 보장되다시피 하는 몇 안 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공천 단계 때부터 주목도도 크다. 의석 1석보다도 공천을 통해 전체 당의 선거 전략과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지역인 만큼 당 지도부도 콘셉트를 고민하고 있다. 지도부 관계자는 “‘이 사람은 강남은 절대 안 된다’는 기준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강남에 괜찮겠다’는 기준은 이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공천관리위원회는 공관위원 재적 3분의 2 이상 의결로 우선 추천(전략 공천) 지역을 선정할 수 있다.
그래픽=박상훈 |
실제 과거에도 강남·서초는 주로 당의 선거 구상에 맞춰 대부분 전략 공천이 이뤄졌다. 지난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강남갑에 탈북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을 공천하며 화제가 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탈북자를 강남에 공천하면서 다양성과 소수자를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강남 공천은 국민의힘의 정체성과 비전,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 특수성을 겨냥해 전문가 그룹의 맞춤 공천도 자주 있었다. 외교관 출신 심윤조(강남갑·2012)·김종훈(강남을·2012), 경제학자 출신 이혜훈(서초갑·2004)·윤희숙(서초갑·2020)·강석훈(서초을·2012), 변호사 출신 고승덕(서초을·2008), 통계청장 출신 유경준(강남병·2020) 의원 등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강남·서초는 90년대까지만 해도 거물급 정치인이 주로 공천을 받는 보수 정당의 ‘정치 1번지’였다”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누가 봐도 훌륭한 분들을 모셔와 대우를 좀 해줄 필요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김동길 전 자민련 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박찬종 전 한나라당 고문,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이 모두 강남·서초에서 의원을 지냈다.
강남은 보수 정당의 미래 자산을 키워내야 하는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시 방송으로 인지도를 쌓은 30대 오세훈 변호사를 강남을에 공천해 스타 정치인으로 키운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총선에서 서초갑 전략 공천을 받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윤희숙 전 의원은 “강남·서초는 정치적 기반은 없지만 우리 당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근래 강남을 사실상 보수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처럼 공천하는 사례들이 일부 나오면서 현장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강남 지역의 한 예비 후보는 “강남에 연고도 없는 사람을 당에서 찍어 보내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동네 정서를 모르고 지역과 유대감이 없다는 바닥 민심의 불평도 많다”고 했다. 실제 2016년 총선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이 치과의사·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전현희 후보에게 강남을 의석을 내주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강남을의 세곡동, 서초을의 양재동 등 일부 투표소의 경우에는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50%를 훌쩍 넘겼다.
공관위 관계자는 “강남은 주민들이 자부심도 강하고 사회 엘리트 계층도 많기 때문에 애매한 사람을 공천 주면 말이 나오고 그렇다고 비례대표처럼 운영하면 민심이 떠나는 딜레마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당내 후보들과 인재 영입 인사들을 포함해 강남의 전략 공천 콘셉트를 구상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결국 ‘한동훈’ 같은 인물을 강남에 공천해야 한다”며 “참신성과 화제성, 전문성과 미래 비전까지 담을 수 있는 이미지가 강남 공천의 필수 요건”이라고 했다.
[박국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